박제순 2

을사오적 후손들은 어떻게 살고있나?

●을사오적 일제가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할 당시, 한국측 대신 가운데 조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다섯 대신으로, 박제순(외부대신), 이지용(내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이완용(학부대신), 권중현(농상부대신)이다. ▲을사조약 체결의 재현모습 ▲을사조약 체결 기념사진 ■2010년 8월 기사_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550811 이완용은 사망 직전 지금의 재산으로 환산할 경우 600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재산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술국치가 일어난 1910년 당시 이완용의 재산은 지금의 가치로 200억 원에 이르는 100만원을 갖고 있었는데, 1907년 고종 강제퇴위와 정미7조약의 대가로 10만원(20억원), 한일병합 조약 체결의 대가로 ..

'을사늑약' 외교책임자 박제순

■ 을사늑약 외교책임자 박제순(朴齊純, 1858년 12월 7일 ~ 1916년 6월 20일) "이 땅의 황국신민들"-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경학원 대제학으로 이어진 친일 가도 외교통의 관료로 성장 정4위 종1품 훈1등 자작, 조선총독부 고문, 경학원 대제학. 박제순이 사망했을 당시 공식적으로 지칭되던 직함이었다. 그가 이러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905년 이른바 '보호조약'을 체결했던 당사자로 '을사오적'이었던 덕분이었다. 박제순은 경기도 용인 상도촌 출생으로, 기호지방 관료층들의 학문적 배경이 되었던 유신환(兪莘煥)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특히 그의 아버지가 유신환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던 관계로, 같은 동문이었던 김윤식과 세숙세질(世叔世姪)의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