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고려 국자감시] ■ 고려 국자감시(高麗國子監試) 이는 곧 진사 시험인데 덕종(德宗)이 처음으로 설치하고 부(賦)와 6운(韻) 및 10운 시(詩)를 시험 쳤다. 그 후에는 이를 혹은 성균시(成均試)라고도 하고, 혹은 남성시(南省試)라고도 하였다. 충선왕이 국자감시를 폐지하였고, 충숙왕 4년(1317)에 구재(九齋)의 삭시(朔試 매월 초하룻날 실시)로 대신하였다. 충숙왕 7년에 이를 거자시(擧子試)라 하였다. 국자감시에서 뽑는 인원 수에는 제한이 없었다. 공민왕 17년에 왕이 경서에 정통한 자를 뽑아 시험관을 삼으려 했는데, 신돈은 감찰대부 손용(孫湧)을, 환자(宦者) 이강달(李剛達)은 판전교시사 이무방(李茂芳)과 권사복(權思復)을 추천하려고 하였다.공민왕이 이들이 다투는 것을 미워하여 말하기를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