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세거지 변천사. 오문(吾門)의 정묘보(丁卯譜'1987년)에 의하면, 경주이씨(慶州李氏)가, 오늘날 북측의 행정 지명으로 황해북도 장풍군 십탄리 서원촌(옛 지명 황해도 금천군 지금리)에 대대로 분묘(墳墓)를 썼던 사실이 나타나 있다. 이것으로 미뤄, 일찍이 15世 열헌공(悅軒公) 무렵부터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믿어진다. 그러다가 17세 규(樛)의 증손(曾孫), 석(碩)이 여말(麗末)에 벼슬을 버리고 지금의 전남 나주(羅州)로 이거(移居)한 뒤부터, 일부 그곳에 자리 잡았던 것을 비롯해서 대체로 23세, 절(節)의 대(代) 이래로 경기도 안성(安城), 경북 예천(醴泉), 안동(安東)·상주(尙州), 경주(慶州), 전남 함평(咸平) 등지에 나뉘어 살았던것 같다. 17세 관(琯)의 자손들은 21세 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