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소경 겸 집현전 제학공 묘단비명 (太常少卿 兼 集賢殿 提學公 墓檀碑銘) 옛날에 군자(君子)가 곤궁하면 홀로 그몸을 딲고 현달하면 천하(天下)를 구제하는 것이나직위가 높아지매 성만(盛滿)함을 경계하여 사직하고 물러와 휴양(休養)하는자(者)는 심히드물었으니 옛날 영능(英陵:세종의 능)때에 소재(少宰:참판)경주이공(慶州李公)은 자못 그러한 분이라 할것이다. 공이 젊었을때 부터 아름다운 자질이 있어서 마음을 딲고 학문에 힘써 널리 경의(經義)를 통하였고 효우(孝友)를 행하여 소문이 자자했다. 일찍이 발탁되어 여러번 좋은 벼슬을 지냈는데 자리에 있을때 마다 직분을 다하여 태상소경(太常少卿)에 승진하고 관례되로 겸직(兼職)하였다. 더욱 겸손하고 조심하니 당시에 어진 대부(大夫)의 풍도가 있다고 일컬었다. 정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