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소경공파 2

소경공 이지회 묘단비명/21世

태상소경 겸 집현전 제학공 묘단비명 (太常少卿 兼 集賢殿 提學公 墓檀碑銘) 옛날에 군자(君子)가 곤궁하면 홀로 그몸을 딲고 현달하면 천하(天下)를 구제하는 것이나직위가 높아지매 성만(盛滿)함을 경계하여 사직하고 물러와 휴양(休養)하는자(者)는 심히드물었으니 옛날 영능(英陵:세종의 능)때에 소재(少宰:참판)경주이공(慶州李公)은 자못 그러한 분이라 할것이다. 공이 젊었을때 부터 아름다운 자질이 있어서 마음을 딲고 학문에 힘써 널리 경의(經義)를 통하였고 효우(孝友)를 행하여 소문이 자자했다. 일찍이 발탁되어 여러번 좋은 벼슬을 지냈는데 자리에 있을때 마다 직분을 다하여 태상소경(太常少卿)에 승진하고 관례되로 겸직(兼職)하였다. 더욱 겸손하고 조심하니 당시에 어진 대부(大夫)의 풍도가 있다고 일컬었다. 정승 ..

이갑성(李甲成)

■ 이갑성(李甲成) [생졸년] 1889년(고종 26)∼1981년 [세 계] 17世 익재공후→21世 소경공후→32世 무실(茂實)공 후손임. 민족대표 이갑성 선생 한말의 독립운동가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연당(硏堂). 대구출신으로, 1915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최연소자로 청년층을 대표하여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민족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비롯한 각급학교의 학생중심의 시위운동을 주도하고 태화관(泰和館)을 중심으로 한 민족대표의 서명운동과 전단살포의 중책을 맡아 활약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옥고를 치렀다. 1924년 세브란스의약(醫藥)의 지배인으로 활동하고, 1926년 YMCA의 이사가 되어 항일청년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