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端錫 2

이단석(李端錫) - 전주인 청백리

■ 이단석(李端錫) [생몰년] 1625년(인조 3)∼1688년(숙종 14). [문과] 현종(顯宗) 1년(1660) 경자(庚子) 증광시(增廣試) 을과(乙科) 2위/합격연령>36세 [생원진사시] 효종(孝宗) 1년(1650) 경인(庚寅) 증광시(增廣試) 생원 3등(三等) 41위>합격연령>26세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유초(有初), 호는 쌍호당(雙壺堂). 종실 경명군(景明君)침(忱-성종의 아홉번째 아들)의 6대손으로,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從三品) 제형..

쌍호당 이단석 신도비명 병서(雙壺堂 李端錫 神道碑銘 幷序)

쌍오당 이단석신도비명 병서(雙壺堂 李端錫神道碑銘 幷序) (전주이씨로 청백리 녹선) 매산 홍직필 찬(梅山 洪直弼 撰) [1776년(영조 52)∼1852년(철종 3)] 오! 우리나라에서 청백리를 추천 선발하는 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대체로 온세상을 격려하여, 이 나라 국민들에게 은혜와 생기의 덕택을 받게 하자는 매우 훌륭한 법이다. 옛날 숙종 14년(1688)에 정승 민진장((閔鎭長). 이유(李濡). 이여(李畬). 김창집(金昌集). 조태채(趙泰采). 이이명(李頤命)이 연달아 임금께 글을 올려 말하였다. "돌아가신 참판(參判) 이단석(李端錫)은 청렴 결백하고, 고난속에서 지조를 굳히어 같이 있던 모던 신하들이 다 친찬하고 감탄하는 바이오며, 가난하여 초상을 치르지못하고, 처자가 생활할 방법이 없으며, 여러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