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卨 2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

보재 이상설선생(溥齋李相卨先生) (1870. 12. 7 ~ 1917. 3. 2) 김도형(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1. 학문과 관인생활 이상설 선생은 1870년 음력 12월 7일 충청북도 진천군(鎭川郡) 덕산면(德山面) 산척리(山尺里) 산직마을에서 이행우(李行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고, 아명은 복남(福男, 相男),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라고 하였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동(才童)-신동(神童)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총명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가 7세 때인 1876년 참의를 역임한 동부승지 이용우(李龍雨)에게 출계하여 그의 양자가 되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서울에서 이제촌(李濟村)이라는 스승으로부터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16세 무렵에는 박의암(朴毅菴)이..

勸業會 ㅣ 大韓光復軍政府

권업회(勸業會) 권업회 [勸業會] ...1911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 단체. 이종호(李鍾浩)·김익용(金翼鎔)·엄인섭(嚴仁燮) 등이 결성하고 초대회장에 최재형(崔才亨), 부회장에 홍범도(洪範圖)를 선임하였다. 본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 두었으며, 주요 도시에 지회와 분사무소를 두었다. 같은 해 12月 총회에서 회칙을 개정하여 조직을 의사부와 집행부로 나누고, 의사부의 의장과 부의장이 회를 대표하기로 하였다. 이에 의장에 이상설(李相卨), 부의장에 이종호가 선임되어 회무를 총괄하였다. 권업회라는 이름만 보면 정치적인 색을 띠지 않는 순수 경제단체인 것처럼 보이나 이것은 일제와 러시아의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붙인 위장명칭이고 실제는 항일구국운동이 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