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독립운동

이상의(李相義)/고령(高靈) 출신 독립운동가

야촌(1) 2022. 12. 21. 16:52

■ 이상의(李相義)

 

이상의(李相義)는 본관이 성산(星山)으로,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내상리에서 태어났다. 일명 이상희(李相羲)라고도 불렸다. 세칭 파리장서사건이라고 하는 제1차 유림단 의거는 서울에서 김창숙(金昌淑)·김정호(金丁鎬)·이중업(李中業)·유준근(柳濬根)·유진태(兪鎭泰)·윤중수(尹中洙) 등의 논의 끝에 시작되었고, 김창숙이 그의 스승 곽종석(郭鍾錫)을 만나면서 급진전되었다.

 

마침 충청남도 지역에서도 같은 일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그 지역 유림의 거두인 김복한(金福漢)과 그 계열의 인물들이 합류하면서 두 지역 대표를 비롯하여 137명이 서명한 독립청원서를 작성하였다.

 

독립청원서는 일제가 자행한 명성황후 시해와 고종의 시해 의도, 그리고 한국 주권의 찬탈 과정을 폭로하면서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김창숙은 3월 말에 독립청원서를 지니고 중국 상하이[上海]로 가서 번역과 인쇄를 한 뒤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로 파리에 가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보내고, 국내의 각 향교에도 우송하였다.

 

그런데 이 일은 경상북도 성주의 만세 운동과 관련하여 1919년 4월 12일 서명자의 한 사람이었던 송회근(宋晦根)이 체포되면서 발각되었다.

 

 

 

 

 

 

일제시기 고령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의(李相義) 시고(詩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