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한민족의 뿌리

추모경(芻牟鏡)

야촌(1) 2022. 12. 12. 19:47

작성일 : 2022. 2. 23.  18:43

 

 

 

芻牟鏡上(추모경상)

芻牟鏡 卷三 本紀 第一(추모경 권3 본기 제1)

 

壬午 春正月 以烏伊爲左大將 摩離爲右大將 賜金尺大綬章重各十五斤 陜父爲大主簿 扶芬奴爲大司馬 賜金尺小綬章重各十斤 末曷餘衆古斗西文等求救於北沃沮 得三千餘騎 屯於菰丘之原 聚其散衆 與柴吉共謀作亂  上使漢素芬奴率水陸軍進擊 大破之

 

壬午(임오, BC39년) 봄 1월, 烏伊(오이)를 左大將(좌대장)으로, 摩離(마리)를 右大將(우대장)으로 삼아, 金尺大綬章(금척대수장) 重各(중각) 十五斤(15근)을 하사하였다. 陜父(협보)를 大主簿(대주박)으로, 扶芬奴(부분노)를 大司馬(대사마)로 삼아, 金尺小綬章(금척소수장) 重各(중각) 十斤(10근)을 하사하였다.

 

末曷(말갈)의 나머지 무리 古斗(고두)와 西文(서문)등이 北沃沮(북옥저)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3천여 기병을 얻어, 菰丘原(고구원)에 屯(둔)을 치고, 그 흩어진 무리들을 모아, 柴吉(시길)과 공모하여 亂(란)을 일으켰다. 상은 漢素(한소)와 扶芬奴(부분노)로 하여금 水陸軍(수륙군)을 이끌게 하여, 進擊(진격)하여 그들을 大破(대파)시켰다.

 

*聚로 수정.

 

二月 荇人國天帝鮮存公薨 子文立 上遣再思吊之 漆公遣使來 請卽位 上辭以無德

2월, 荇人國(행인국)의 天帝(천제) 鮮存公(해존공)이 죽었다. 아들 文(문)이 즉위하였다. 상은 再思(재사)를 보내 조문하였다. 漆公(칠공)이 사신을 보내 와서 卽位(즉위)를 청하였으나, 상은 無德(무덕)하다며 사양하였다.

 

*漆公(칠공)이 맞다. 글자가 添(첨)이 아님. 漆公(칠공)은 다음해 癸未年(계미, BC38년) 9월에 사망.

 

 

 

三月 以漢素爲太師 賜金魚大綬章 以加菽公妃萱花公主 順奴王妃乙公主 武骨公妃仲室夫人爲天后 賜翟服金魚玉馬金尺大綬章重各七十斤 以奧爲順奴王 奧命比如候 奧春靑河伯 各賜金印玉章 是月 召西奴生女阿爾 與樂浪王柴吉定界 柴吉欲得奄東盖斯之地曰 "我本南沃沮也 願得沃沮故地" 上許之 烏伊諫曰 "吾等攘曷而得地 柴吉坐領此地可乎 不如伐之" 上曰 "柴吉小虜也 驕而無謀 姑安之而擒之未末曷雖喪其衆 必來報復 不可不備也 且黃龍荇人卒本沸流等皆是强敵也 不可與小虜先爭而損耗也 吾聞延陀勃病不能視事 其女召西奴代政 而年少自危 可以計取之 然後北定沸流西壓黃龍 則吾計可就矣" 烏伊服之

 

3월, 漢素(한소)를 太師(태사)로 삼아, 金魚大綬章(금어대수장)을 하사하였다. 加菽公(가숙공)의 妃(비) 萱花公主(훤화공주)와 順奴王(순노왕)의 妃(비) 乙旃公主(을전공주)와 武骨公(무골공)의 妃(비) 仲室夫人(중실부인)을 天后(천후)로 삼아, 翟服(적복)과 金魚玉馬(금어옥마)와 金尺大綬章(금척대수장) 重各(중각) 七十斤(70근)을 하사하였다.

 

奧健(오건)을 順奴王(순노왕)으로 삼았고, 奧命(오명)을 比如候(비여후)로 삼았고, 奧春(오춘)을 靑河伯(청하백)으로 삼아, 각각 金印玉章(금인옥장)을 하사하였다. 이 달, 召西奴(소서노)는 딸 阿爾(아이)를 낳았다. 樂浪王(낙랑왕) 柴吉(시길)과 경계를 정하였다.

 

柴吉(시길)은 奄東(엄동)의 盖斯(개사)의 땅을 갖고 싶어서 말하길 "저는 본래 南沃沮(남옥저)입니다. 沃沮故地(옥저고지)를 얻기를 원합니다." 라고 하였다. 상은 허락하였다. 烏伊(오이)가 간하길 "저희는 曷(갈)을 물리쳐서 땅을 얻었는데, 柴吉(시길)은 앉아서 이 땅을 차지하니 옳습니까? 그를 치는 것이 낫습니다" 라고 하였다. 상이 말하길 "柴吉(시길)은 小虜(소로)이다. 교만하고 無謀(무모)하니, 잠시 그를 안심시켜 사로잡아도 늦지 않다.

 

비록 末曷(말갈)이 그 무리들을 잃었다고 하나, 필시 報復(보복)하러 올터이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黃龍(황룡), 荇人(행인), 卒本(졸본), 沸流(비류)등은 모두 强敵(강적)이다. 小虜(소로)와 먼저 다툴 수 없고, 그러면 損耗(손노)하게 된다.

 

내가 듣기에 延陀勃(연타발)은 병으로 정사를 살필 수 없어, 그의 딸 召西奴(소서노)가 정사를 대신하지만, 나이가 어려서 스스로 위태로우니, 計(계)로서 그녀를 취할 만하다. 그런 然後(연후)에 북쪽으로 沸流(비류)를 평정하고, 서쪽으로 黃龍(황룡)을 누르면, 나의 계략은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烏伊(오이)는 승복하였다.

 

*不可與小虜에서 與로 수정.

*翟衣(적의) 옛날 황후(皇后)가 입던, 붉은 비단(緋緞) 바탕에 청색(靑色)의 꿩을 수놓고 깃고대 둘레에 붉은 선은 두르고, 선 위에는 용(龍)이나 봉(鳳)을 그린 옷

*損耗(손노) 써서 닳아 없어짐

 

夏 北沃沮末曷二千騎渡河向南 聲言報荻得古斗之 上命扶芬奴伏弩於河南 待其 登岸而射之 皆落水中 上又與漢素摩離擊其殘軍於河中 大破之 烏伊弟烏干芬奴弟?狗等自柵城來 言禮公主都夫人皆以聖母之命爲鮮弗之妻 上曰 弗弱而多疾 都美而好淫 禮健而緊靭 弗安能敵此二女乎 弗其不久 後果然

 

여름, 北沃沮(북옥저)와 末曷(말갈)의 기병 2,000명이 河(하)를 건너 남쪽으로 향하였다. 聲言(성언, 聲明)은 荻得(적득)과 古斗(고두)의 怨讐(원수)를 갚는 것이였다. 상은 扶芬奴(부분노)에게 명하여 河南(하남)에서 伏弩(복노)하게 하였다.

 

그들을 기다려, 언덕을 올라 활을 쏘았다. 모두 水中(수중)으로 떨어졌다. 상은 또한 漢素(한소)와 摩離(마리)와 함께 河中(하중)에서 그 殘軍(잔군)을 격퇴하여 大破(대파)시켰다. 烏伊(오이)의 동생 烏干(오간)과 扶芬奴(부분노)의 동생 ?狗(어구)등이 柵城(책성)으로부터 와서, 禮公主(례공주)와 都夫人(도부인) 모두 聖母(성모)의 명으로 鮮弗(해불)의 처가 되었다고 말하였다.

 

상이 말하길, "鮮弗(해불)은 약하고 질병이 많다. 都(도)는 이쁘고 음란함을 좋아하고, 禮(례)는 굳세고 緊靭(긴인)하다. 鮮弗(해불)이 어찌 이 두 여자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鮮弗(해불)은 오래지 않아, 후에 과연 그러하였다.

 

*而南 아니고, 向南이다. 원본 글자가 잘 안 보임.

*聲言(성언)= 聲明(성명), ①어떤 사실(事實)이나 문제(問題)에서 취(取)하는 입장(立場)과 태도(態度) 등(等)을 여러 사람에게 밝혀서 말함 ②세상(世上)에 공언하여 의견(意見)을 발표(發表)함

*()= 怨讐(원수)

*緊靭(긴인)= (속이) 차고 질김. 단단하고 질김.

堅靭(견인)= 단단하고 질김.

 

 

 

卒本延陀勃聞上之英豪 逐虎攘曷之威動於內外 遣使請見 上遣再思報聘曰 "兩君相見必相會於界上 今大王病不移席安可坐致吾主乎" 陀勃曰 "昔者人心淳厚各守其界禮讓而居 自末曷南侵以來 南沃順奴地方爲其魚肉 侵寇我邦 無年不兵 寡人身被重創 藥石無效 只有一女 年少沒識 欲得佳郞 而傳國 近聞聖人自東方來 歸者如雲 祥瑞日至虎負子而自逃焚窟而遠欲使兒女得此聖人以爲夫則一洽寡人之望而顧此爾小邦聖人抑欲來救乎" 再思曰 "自吾聖皇以三百之人屠曷八千(余衆)而救順奴於塗炭開沃沮於鎖束柴吉來服曷思懷恩遠震河北聲動汗西志在千里不殘邑然隣傍世豪莫不獻土子來歸附沓至大王欲以公主作親何不厚幣崇禮至誠來陀勃乃使仇都奉牛馬千匹虎皮百張劒十柄黃金百兩而來請和婚上見其使來手額而喜天以卒本賜我餘無可慮乃引見仇都殷勤致禮曰孤以客踪偶得一戰非所大能大王許以公主致此厚禮實感我心自此兩國爲一統合天下以副大王子我之恩仍把仇都之手而勸酒曰汝亦我臣也勿辭而醉仇都曰公主命臣勿醉而失禮於夫皇故臣不敢力醉。

 

 

 

上許其不飮而送之 初卒本候乙足娶其叔鯤淵伯乙宋之女旒氏生子乙音而卒 國相延陀勃七國之亂有功於社稷故委以妻子 陀勃遂娶旒爲妻 而生女貫貝召西奴 丁丑之年 以運鹽貿鐵之事與松讓交戰于汗濱 而敗 旒氏膝行而乞和遂以貫貝妻松讓 召西與仇台情好生女阿爾 仇台以卒本世族美而無勇 遂至愛衰 召西奴欲改嫁于芻牟 使人勸仇台自殺 而稱喪夫 時年十七 上使漢素購錦綾色絹色 紗金花玉佩之物以爲幣 使摩離陜父爲報聘之使 召西奴親自神而待酒食曰 自我定婚以來晝夢想唯在夫皇膝上 汝等歸語夫皇不必具備禮數爲先早早合使妾洽然然後徐徐備之 摩離歸告于芻牟曰 公主年雖少 艾華澤充溢 美如秋花 潔如銀鱗察機之智近於細明容物之德似或不足陜父巧笑納流眄意似是好淫之性不聖人之配 烏伊曰 聖上此計全爲天下大事君等何以毁主妨婚乎 上曰 刑山之玉非無小瑕 亦足以爲璽天 以主爲我之璽 雖有小欠 君子居之何陋之 有七月之望 上齊戒沐浴 與烏伊吉士(丹公之子) 蒸豚脂鯤淵 祭玄武之神 仍以西南行至卒本川(一作牛首川 今小綏芬河)

 

 

 

觀其土壤肥沃山河固而嘉之曰吾妻之國果如是乎少焉 公主以紫衣白馬引率從者依山而來上手額曰吾妻來矣天賜我歟天賜我歟乃抱公主於馬上而移于巨婁之上幷騎而歡主見聖上之凜凜神風不覺心醉顚于上懷燕轉香血雀躍乃入東城展雲衾而醮焉公主再拜且拜曰妾以小邦之主世襲此邑輓近以來北辱於末曷東屈於樂浪北有松讓南有涉羅無年不兵無日不戰國弊民疲無以支存況今新喪于台國無所主妾以孤寡不知所伏乞夫皇矜此可憐使妾執主此邦民上遜辭再三避之不得 乃與公主設宴三日 合二夜 雲雨巫山二聖歡喜萬民謳歌百僚山呼 上抱后而喜曰 吾妻之國山河固 土壤肥沃 進可以取退可以守牛羊魚鼈不可以勝食秦稷豆梁亦足以富民有何可憂不知所圖皇后依懷而奏曰女雖賢仰于犧王母雖聖依於穆王從古女主皆守牝禮妾以小國事我夫皇從玆以往事無大小唯夫主之妾當隨之 上曰 諾先是卒本有駿牝無牡不與常牡交之至于東域有黑驪自東而來交之生駒故居人異之名東城曰紇升骨城矣 至是上與后合于此 故國人以爲天定

 

 

①구식 혼례식()의 절차()의 하나. 신랑 신부()가 잔을 주고 받는 일 ②혼례식()을 지냄

 

 

紇升骨者交騰谷也上與皇后進牛壤謁父母陀勃大喜曰我得佳以傳國何憂之有死無恨矣旒氏亦聖上不可形言上親自調藥以治其創大有果卒本之臣莫不神之上自是居于卒本王宮與皇后朝兩國之臣決兩國之事陀勃與旒氏退居別宮於是卒本國兵馬盡歸芻牟上命扶尉厭鍊其精銳又選順奴卒本豪族之子女親授弓劒之術

 

九月 上與皇后謁屋因祠與三天后相見於好陵之前好陵定后位於萱花之下乙之上 上如汗濱賜漢素鄭共馬黎等田宅奴婢妻以豪族之女漢人之以技來歸者日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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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未 春正月 以萱花爲天太后 召西奴爲天皇后 后爲地皇后 仲室氏爲人皇后

癸未(계미, BC38년) 봄 1월,

 

二月 鍊兵二千於汗濱 水師八百於河中 命丹公相都於岺湖上(西湖景) 飭諸將毋奪民貨色以安其生

 

五月 曷賊雪敬等一千余騎來侵靑谷[敖其]摩離擊破之其舟楫兵伏多是沸流國物也上命奧春與松讓相詰

 

七月 上與召皇后如汗南與桓那國女主桂婁夫人定界上見桂婁美而有勇其志高尙恨不得早見桂亦見芻牟之聖有欽仰之色其國界一從召后之言而割與卒本桓那之臣多不平桂婁曰天下從當皆歸於芻牟汝等何爭尺寸之地乎

 

 

 

八月 柴吉來襲牛山 上親征 大破之 仍復鯤淵以南失地 又取奄東盖斯之地 屬於卒本 命柴吉來朝 柴吉稱病 遣使來獻主襲者五人 謝罪 萱后生元陽公主 鮮卑王豪全遣使來獻土物 賀復順奴故地 箕東守于眞來降 后也

8월, 柴吉(시길)이 牛山(우산)을 습격하여 왔다. 상은 친히 정벌하여 大破(대파)시켰다.

 

九月 漆公薨 遺命其妻事芻牟 以其子爲芻牟子 盖馬王燕音之子與其左大將胡丘右大將呂哲自立爲盖馬王 以漆公之妻秋氏爲其妻 秋氏使人來告 陜父請伐之 不許

9월, 漆公(칠공)이 죽었다. 그의 처가 芻牟(추모)를 섬길 것을 遺命(유명)하니, 그의 아들을 芻牟(추모)의 아들로 삼았다. 盖馬王(개마왕) 燕音(연음)의 아들 ?(의)는 左大將(좌대장) 胡丘(호구)와 右大將(우대장) 呂哲(려철)과 함께 自立(자립)하여 盖馬王(개마왕)이 되었다. 漆公(칠공)의 처 秋氏(추씨)를 그의 처로 삼으니, 秋氏(추씨)가 사람을 시켜 告(고)하여 왔다. 陜父(협보)가 그들을 칠 것을 청했으나, (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十月 上親率獵騎渡汗水 獵于箕丘(老岺)之東 歸路 又與桂婁相逢 上得一香麝 桂婁得一羚羊 請換之 上喜許之曰 "羊大而麝小得無損乎" 桂婁曰 "麝雖高 非男子之用也 妾當自淨而以待陛下之招後宮" 上知其意 遂入野人家 相歡 自是使臣往來不絶 皇后生奧花公主

10월, 상은 친히 獵騎(렵기)를 이끌고 汗水(한수)를 건너, 箕丘(기구, 老岺)의 동쪽에서 사냥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또한 桂婁(계루)와 相逢(상봉)하여, 상은 香麝(향사) 하나를 잡았고, 桂婁(계루)는 羚羊(영양) 하나를 잡으니, 이를 교환하기를 청하였다.

 

상은 기뻐하며 이를 허락하며 말하길, "羊(양)은 크지만, 麝(사)는 작으니, 손해는 없겠군요." 라고 하였다. 桂婁(계루)가 말하길, "麝(사)는 비록 가치가 높지만, 男子(남자)의 용도는 아닙니다. 妾(첩)은 마땅히 自淨(자정)하고, 後宮(후궁)에서 陛下(폐하)의 초대를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상은 그 뜻을 알고, 마침내 野人(야인)의 집으로 들어갔다. 서로 즐거워하니, 이때부터 使臣(사신)의 往來(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皇后(전황후)는 奧花公主(오화공주)를 낳았다.

 

출처 : 망가와 라디오

글쓴이 : 라디오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