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한민족의 뿌리

신라 진한6부의 기원 - 유전자와 언어로 추적

야촌(1) 2022. 12. 12. 19:00

작성일자 : 2021. 7. 1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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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Patika . 2018. 5. 16. 14:20

 

1. 신라 진한 6부 촌장과 성씨 유래(新羅辰韓六部村長姓氏由來)

 

 

진한 6부도

 

신라 수도 서나벌(徐那伐)은 범어(梵語)인 소나푸르(Sonepur = Goldtown)로서 황금 도시다.

 

[삼국사기]의 서나벌과 금성(金城), [삼국유사]의 서라벌과 금성은 각각 따로 언급되었지만 실제는 산스크리트어의 소나푸르(Sonepur)를 발음으로 음차(音借)하여 서나벌(徐那伐)이라 했고, 의역(意譯) 하여 금성(金城)이라 한 것이다.

 

신라는 금이 많아서 당나라와 조공할 때도 금을 보냈고, 일본에도 황금의 나라로 알려졌는데, 신라의 황금은 어디서 나왔을까?

최근 연구에는 형산강의 사금(砂金)이 많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실제 경주의 금광(金鑛)이 적지 않으니, 경주를 지나는 고대 형산강에 사금이 많아서 눈에 띄고, 신라 경주에 Gold Rush가 일어나 건국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먼저 6부족과 부족장을 소개했다.

진한땅에 육촌이 있었다.

 

첫째는 알천양산촌이고 촌장은 알평이다.

둘째는 돌산고허촌이고 촌장은 소벌도리다.

셋째는 무산대수촌이고 촌장은 구례마다.

넷째는 자산진지촌이고 촌장은 지백호다.

다섯째는 금산가리촌이고 촌장은 기타다.

여섯째는 명활산고야촌이고 촌장은 호진이다.

 

6촌을 검토하니 다 하늘에서 내려온 듯하다. <이 하늘이 천축국(天竺國)이었다.>

辰韓之地 古有六村

一曰 閼川楊山村 長日謁平

二曰 突山高墟村 長日蘇伐都利

三曰 茂山大樹村 長曰俱禮馬 ...又牟梁部

四曰 觜山珍支村 長曰智伯虎

五曰 金山加利村 長曰祈沱

六曰 明活山高耶村 長曰虎珍 按上文 此六部之祖 似皆從天而降 / 三國遺事

 

첫째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알(閼)은 범어 아루(aru = sun in sanskrit)에서 유래한다.

즉, 알천(閼川)은 태양천(太陽川)이다.

 

양산촌(楊山村)의 양(楊)도 태양 양(陽)을 대신한 것이라 태양촌(太陽村)이 된다.

촌장 알평(謁平)은 범어(梵語: 고대 인도 아리안어) 알아파나(Alapana= conversation in Sanskrit)에서 유래한 대화자(對話者) 의미로서 회의(會議) 의장(議長)으로 보인다.

 

처음에 표암봉에 내려왔고 급량부 이씨(李氏) 조상이 되었다고 하였다.

파잠, 동산, 피상, 동촌이 속한다.

初降于瓢嵓峰 是爲及梁部 李氏祖. 波潛 東山 彼上 東村屬焉/ 三國遺事

 

산스크리트어(인도의 고전어)에서 리(ri = gold)는 금이다.

또한 이(李)는 관리, 심부름꾼의 의미가 있다. 행정수장(行政首長)이다. 알평이 맡은 일이다.

 

파잠(波潛)은 파진(vazin = ruler in sanskrit)으로 보아서 정부에 속한 관리들의 부서를 말하고, 신라 관등 파진찬(波珍飡)과 관련되어 보인다.

급량부(及梁部)는 양(梁)을 탁(涿) 발음으로 읽어서 굽타(gupta=protector, governer in sanskrit)가 되고 뜻은 정부(政府), 궁청(宮廳)이 된다.

경주시 형산강에서 나오는 사금(砂金)은 경주시 15개소의 금광산(金鑛山) 광맥과 연결될 것이다.

 

6부족이 모두 각각 금광을 소유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나라의 기틀에는 무기 재료인 철(鐵)이 반드시 필요한데, 현곡면에서 공급이 되었고, 굽타부에서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최초 통일제국인 마우리아 제국(maurya empire, 공작왕조)를 세운 찬드라굽타(Chandragupta Maurya, 321–298 BCE) 왕이 있었다.

그의 수도는 갠지스강의 파트나(patna)다.

 

찬드라굽타는 고아로서 스승 샤나키아(Chanakya)에게 8년간 배웠고 그곳이 파키스탄 탁실라(taxila)였다.

탁실라는 잘라진 바위(cut stone)라는 뜻으로서 경주 단석산(斷石山)과 같은 뜻이고. 박혁거세가 떠나온 곳이 바로 탁실라다.

찬드라굽타는 탁실라에서 알평의 선조를 낳았을 수 있다.

 

신라 형성 당시 탁실라를 지배하던 대하인(大夏人, scythian) 들은 스스로 찬드라굽타의 후예인 아쇼카(Ashoka)왕의 추방된 아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애초 찬드라굽타의 출신을 모른다. 찬드라굽타부터가 중앙아시아의 스키타이인이었을 수 있다.

 

박혁거세는 스키타이인(scythian)으로서 탁실라의 왕자였고 신라로 왔다.

알평은 탁실라에서 박혁거세와 함께 신라로 온 것이다.

 

알평의 후손인 경주이씨 남성 Y유전자 중에 N1a2a-M128이 나타난다.

한국에서는 드물다.

 

m128의 분포는 중앙아시아 기원인 것을 알려준다.

박혁거세와 같이 스키타이안(scythian)으로 추정된다.

 

 

 

둘째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의 돌산(突山)은 돌(dauleya = tortoise) 즉 자라(鰲)에서 유래한다.

고허촌(高墟村)의 고허는 고하(goha = gold)에서 유래하니 고허촌은 금촌(金村)이다.

 

촌장(村長) 소벌도리(蘇伐都利)는 소벌이 스바르나(svarna= gold), 황금(黃金)에서 유래하고

도리(都利)는 역시 도리(dauleya = tortoise)에서 유래하니 소벌도리를 해석하면 황금자라(金鰲)이다.

 

즉, 경주 남산(南山) 금오봉(金鰲峰)이 황금자라봉이고 소벌도리가 지배한 곳이다.

남산 고위봉(高位峰)은 역시 고하(goha = gold)에서 유래하여 금봉(金峰)이 되고,

 

그 아래 진평왕(眞平王)때 세워졌던 고허성(高墟城)도 역시 금성(金城)이라는 뜻이다.

내남면에 금광이 3곳인데, 남산을 따라 흐르는 형산강변에서 금을 많이 채취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형산에 내려와 사타부라 하였다.

初降于兄山 是爲沙梁部(梁讀云道 或作涿 亦音道)

양(梁)을 탁(涿)로 읽어서 사타(sata = riches)는 부유하다는 뜻이다. 금이 많이 났을 것으로 보인다.

 

범어에서 사타(sArtha = wealty, = troop)는 부유함 외에 군대라는 뜻이 있다.

소벌도리는 박혁거세의 장수(將帥)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씨(鄭氏) 조상으로 남산부라 했고, 구량벌, 마도오, 도북, 회덕 등 경주 남쪽이다.

鄭氏祖今曰南山部 仇良伐 麻等烏 道北 廻德等 南村屬焉

 

구량벌(仇良伐)의 벌(pur = town)은 고을을 의미하고, 구량(kura = boiled rice)은 밥이 되니 구량벌은 밥고을이다. 마등오(麻等烏)는 마-돌, 즉 마석산으로 보인다.

 

소벌도리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최씨(崔氏) 조상으로 나오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정씨(鄭氏) 조상으로 서로 바뀌어 있다.

 

삼국사기 기록이 틀리고 삼국유사 기록이 맞는 이유는

1. 정씨 시조묘의 위치가 내남면 노곡리로서, 남산의 고허성 아래라서 소벌도리 고허촌이기 때문이다.

 

2. 최씨 조상이 자(觜)산 진지촌의 지백호(智伯虎)인데, 자(觜)는 취(嘴)와 같아서 닭의 부리(鷄脣)를 의미하는데 최(崔)라는 글자 상형은 닭벼슬과 같다.      새(隹; 갑골문에서 새의 형상 ) 위에 벼슬 모양의 산(山)을 얹어 높을 최(崔)인 것이다. (隹 + 山 = 崔) 그리고 자(觜), 취(嘴)와 최(崔)의 소리값이 비슷하

    니 최씨(崔氏)가 적절했던 것이다.

 

3. 삼국유사에서 지백호(智伯虎)는 최치원(崔致遠)의 조상이라 하였다.

 

4. 소벌도리 자라(鰲)의 형체와, 달의 소리값으로 정(鄭)씨를 채택한 것이다.

   소벌도리가 정동충(鄭東冲)과 동일인이다. 없던 성을 만들었으니, 정과 동은 같은 소리값으로 나온 것이고 충(冲)은 허(墟)를 대신한 글자다.

 

5. 감문왕(甘文王)이라는 추증(追贈)에서도 감(甘)은 금(金)과 소리값이 비슷하고, 문(文)은 말(村)의 차자다.

일본에서 촌(村)을 무라 라고 발음한다. 즉,  감문왕(甘文王)은 금촌왕(金村王)이고, 소벌도리의 고허촌(高墟村)과 같은 의미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의 아들 김중돈이 장군 정중부의 수염을 태워서 정중부에게 구타당했고 그후 김부식의 원한을 샀다. 김부식이 정씨에게 보복한 것일 수도 있다.

 

소벌도리 후손인 경주 정씨의 남성 유전자는 C-M217 형으로 알려졌다.

바이칼호 주위에 가장 많고 북미에도 나타난다. 하지만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했고, 인도 동남아 해안으로 해서 일본까지도 나타난다.

 

인도 메갈라야(Meghalaya)에 사는 가로(Garos)부족에서 C-M217 유전자가 많이 나타나고 그들은 머리 위에 닭깃 장식을 한다.

이들은 bc.400 년경에 티벳에서 이주해 왔다고 한다.

 

범어에서 메가(megha)가 구름(cloud)이다. 메갈라야(meghalaya)는 구름의 집( the abode of cloud)이라는 뜻이다. 메갈라야는 인류 최초로 야생벼를 재배벼로 종자 개발한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메갈라야 가로 부족

 

인도 천축인이 신라를 쿠쿠타의설라(矩矩吒䃜說羅) 라고 불렀는데 쿠쿠타는 닭이고 설라는 귀(貴)의 뜻이라고 하였다. 또 신라는 닭신을 경배하여 머리위에 닭깃을 꽂고 다닌다고 하였다.

 

天竺人呼海東云 矩矩吒䃜說羅 矩矩吒 言雞也 䃜說羅 言貴也 彼土相傳云 其國敬雞神而取尊 故戴翎羽而表飾也 / 三國遺事 범어(梵語)에서 쿠쿠타(kukkuta)는 닭, 닭벼슬을 의미하며 한국의 꼬꼬닭(kokotak)의 유래다. 지금 메갈라야 부족의 모습이 오래전 신라인의 모습이다.

 

 

단석산(斷石山)의 공양자(供養子)상...머리 모자에 닭깃을 꽂고 손에도 닭꼬리털을 들었다.

 

메갈라야 가로족의 위치

 

3대 유리왕의 어머니가 운제부인(雲梯夫人)이다. 경주 포항 사이에 운제산(雲梯山)이 있다.

운제(雲梯)는 메갈라야(Meghalaya)를 한자로 바꾼 것이다.

 

메갈라야(Meghalaya)를 음역하면 명활산(明活山)이고, 의역하면 운제(雲梯)가 된다.

경주 명활성 주위로 명활산이 있고, 경주 보문 동쪽 포항시 경계에 운제산이 있으니, 역시 명활산이다.

 

특이한 것은 메갈라야 가로부족이 아직도 모계사회(母系社會)라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닭을 가이(kai)라고 한다. 가로족의 어원으로 보인다.

가로는 닭신(鷄神)을 의미할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를 계림(鷄林)이라고 불렀던 어원이 된다.

 

박혁거세 왕비인 알영(閼英)이 계룡(鷄龍)으로부터 태어났다고 했고, 신라를 계림(鷄林)이라고 불렀다.

가로족의 가로(Garo)와 계림(鷄林), 계룡(鷄龍)이 언어적으로 연결이 있는 것이다.

 

비슈누신이 타고 다닌 신조(神鳥)를 가루다(garuda) 라고 한다. 가루다 항공이란 회사도 있다.

일본에서는 가루라라고 한다. 아래는 일본 흥복사(興福寺)의 가루라상이다. 닭신으로 보인다.

 

 

일본 흥복사 가루라 상

 

알영은 발천(撥川)에서 계자(鷄觜)를 치료했다고 했다. 발(撥)은 발라내는 것이니 칼로 베어낸 것이다.

唇似鷄觜 壯浴於月城北川 其觜撥落/ 三國遺事

 

알영은 가로국의 여왕, 계림국의 거서간이었고, 소벌도리에게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

알영은 경주 발천 전투에서 패하여, 머리 위에 닭깃으로 장식한 거서간 왕관을 빼앗기고, 박혁거세에게 거서간 칭호를 넘기고, 박혁거세 일가와 결혼하여 종족을 보전했을 수도 있다.

 

소벌도리 유전자 C-M217는 한반도 선주민이 아니라 인도에서 건너온 이주민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결혼식때 닭을 날리던 우리 풍습이 이들로부터 비롯되었을 수 있다.

 

정씨 유전자로 보아서 소벌도리 조상의 출신은 티벳이고,  bc400년경에 인도 메갈라야주 가로힐에 이주해서 살다가 갠지즈강 하구로 나와, 바다를 통해 신라까지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박혁거세 도래 이전으로 고려된다.

 

셋째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의 촌장 구례마(俱禮馬)는 구르마(kurma = turtle) 즉, 거북이에서 유래했다.

비슈누신(Vishunu)이 타고다녔다는 영물이다.

 

처음 내려온 곳은 이산인데 점량부 혹은 점탁부라 하였다.

初降于伊山(一作皆比山) 是爲漸梁(一作涿)部 又牟梁部 孫氏之祖 今云長福部 朴谷村等 西村屬焉

 

점탁(漸涿)은 친테(chintte = cut off in Sanskrit), 즉 돌을 깍는다는 뜻에서 유래되고, 참탁부(漸涿部)에는 탁실라(taxila)에서 유래한 단석산(斷石山)이 있다.

 

박혁거세가 불상을 조각하기 시작하고, 그의 후예가 박곡촌(朴谷村)에 살며 마애불 조각을 대대로 이어나갔을 것이다. 모탁부(牟梁部)는 석고(石鼓)를 두드려 울리는 것과 관련되어서 장의(葬儀)와 관련되고 훗날 장복부(長福部)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례마와 비슷한 발음인 구마(kuma= son, child)의 아들 딸 의미로부터, 후손(後孫)을 의미하는 손(孫)씨로 성을 정했는데, 구마는 우리말 꼬마의 어원이다. 손씨 남성 유전자에 N1a1a3 이 있다. 이 유전자는 오르도스에 살던 오르첸족과 거란의 후예인 다우르족에서 나타난다.

손씨는 박혁거세 이전에 진한 지방에 선주하던 북방 유래 선거주민으로 추정된다.

 

넷째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은 자산(觜山)은 차(chada = lip in Sanskrit)에서 유래한다.

외동읍(外洞邑) 입실리(入室里)가 입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입실리에서도 금,은이 산출된다.

진지(珍支)는 범어 진자(jineza = arhat in Sanskrit)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아라한, 성불자의 의미가 있다.

우리말 잔디(jhanti = kind of grass)도 범어에서 왔다.

 

촌장(村長) 지백호(智伯虎)는 범어(梵語)의 자파카(japaka = priest who mutters prayer in Sanskrit)에서 유래한다.

주술하는 기도자라는 뜻이니, 염불하는 승려도 되고 또한 역사(歷史)를 구술(口述)하는 고대(古代)의 역사가(歷史家)일 것이다.

 

본피부(本彼部)라 하였는데 범어(梵語)에서 반디(bandi= buddhist pupil in Sanskrit)는 불교 승려를 말한다.

따라서 본피부(本彼部)는 승려부(僧侶部)에 해당한다.

 

지백호는 최씨(崔氏) 조상이다.

자(觜)는 취(嘴)와 같아서 닭의 부리(鷄脣)를 의미하는데 최(崔)라는 글자 상형은 닭벼슬과 같다.

 

새(隹) 위에 벼슬 모양의 산(山)을 얹어 높을 최(崔)인 것이다. (山 + 隹 = 崔)

그리고 자(觜), 취(嘴)와 최(崔)의 소리값이 비슷하니 최씨(崔氏)가 적절했던 것이다.

 

신라 석학 최치원(崔致遠)이 본피부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初降于花山 是爲本彼部崔氏祖 今曰通仙部 柴巴等東南村屬焉 致遠乃本彼部人也

 

경주 최씨 남성 유전자는 O2a2b-F444가 나타난다.

북방에서 유래한 한반도 선거주민이었을것으로 고려해 왔다.

 

그러나 인도에서 불교를 전하기 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박혁거세가 탁실라에서 떠나올 때 스승으로 지백호를 모셔왔을것이다. 

경주 최씨 유전자는 본피현(本彼縣)이라 했던 성주(星州) 배씨 남성 유전자와 비슷하다.

 

다섯째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은 가리(kalya=blessi, strong)가 축복의 뜻이 있고 촌장 기타(祈沱 gita=Song of the Lord)는 신을 찬양하는 노래의 의미다.

 

처음에 명활산에 살다가 금산으로 옮겨간 것이고, 그후 한지부라 하다가 가덕군이 되었다.

初降于明活山 是爲漢岐部 又作韓岐部 裵氏祖 今云加德部 上下西知 乃兒等東村屬焉

 

고을 이름 나아(乃兒)는 나우(nau = boat, ship)가 배(ship)를 의미하므로 배씨(裵氏)를 받은 것이다.

경주시의 바닷가 감포(甘浦)에 갈골산, 나산, 나아골, 나아해변 있다. 양북면, 양남면 곳곳에서 금이 산출된다.

 

경주배씨, 흥해배씨와 관련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략 배씨 남성 유전자는 O2b1b로서 소위 한반도 대표 남성 유전자다.

즉 본래 진한인(辰韓人)으로서, 경주 명활산에 일찍부터 살다가 스키타이 신입세력에 밀려서 경주시에서 외각 동해바닷가로 밀려난 세력으로 보인다.

한지부(漢岐部, 韓岐部)도 진한(辰韓)에서 유래한 한씨(韓氏) 부족의 의미다.

 

당시 산스크리트어를 가지고, 뜻과 소리가 비슷한 한자로 적당히 잘 바꾼 한학 학문 수준이 매우 높다. 바로 이 배씨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며, 본래는 진한(秦韓), 즉 한기부(漢岐部)라서 한자(漢字)에 능통했을 수가 있다.

 

여섯째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이다.

고야촌의 어원은 고야(koya)어를 사용하는 인도의 고야(koya) 부족에서 유래한다.

 

그들이 많이 사는 곳은 인도 남부의 텔랑가나(Telangana) 주인데, 그곳에서 Telu의 복수형인 텔룽가(telunga)라는 말은 흰 피부족(white-skinned people)이라는 뜻이라고 하고 그들의 땅을 텔랑가나(Telangana)라고 부르게 된다. 따라서 텔루(telu)가 신라의 설씨(薛氏)로 바뀐 것이다.

 

촌장 호진(hasin= laughing, smile)은 웃음의 뜻이 있고, 하사나(harsaNa = happiness)는 행복의 뜻이 있다.

그래서 명랑(明朗)한 명활산(明活山)이 된다.

 

명활산의 어원인 인도의 메갈라야(Meghalaya)는 연강수량이 12000mm로서 “구름의 집”이라고 한다.

운제부인(雲梯夫人)도 명활산 부인인 것이다.

 

경주 보문의 동쪽 운제산(雲梯山)이 본래 명활산일 것으로 본다.

소금강산과 운제산 사이에 위치한 보문 지역이 습비부 위치가 된다.

 

처음 금강산(金綱山, 慶州)에 내려왔고 습비부(習比部)라 하여 설씨(薛氏)가 되었다.

初剛于金綱山 是爲習比部 薛氏祖 今臨川部 勿伊村 仍仇旀村 闕谷(一作葛谷) 等東北村屬焉

 

습비(習比)는 소비, 주비(zubh= light, bright)에서 유래하여 밝다는 뜻으로서 명(明)에 해당한다. 그래서 맑은 설(薛)씨가 된 것으로 보인다.

진한 땅에는 6부중에 배씨등 북방계 선거주인이 있었고,

우연히 메갈라야의 모계부족 가로인들이 나타나 금을 발견하여 명활산에 자리잡고 계림국을 세워 운제성모시대를 열었고, 성년이 되면 모계사회 가로족을 떠나야 했던 소벌도리가 인도로 되돌아가서 골드러시를 내세워 스키타이 박혁거세, 아리안족 알영 등과 함께 다시 돌아와 신라가 건국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출처] 신라 진한 6부의 기원/ 유전자와 언어로 추적|작성자 pati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