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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극단적 상황’선 핵무기로 선제 타격방침

야촌(1) 2022. 3. 31. 23:14

[조선일보] 국제 미국

 

바이든, ‘극단적 상황’선 핵무기로 선제 타격방침

 

‘소극적 핵사용’ 전략 폐기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입력 2022.03.31 22:37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적국의 핵 공격에 대한 억지와 보복 목적으로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이른바 ‘단일 목적’ 공약을 사실상 폐기했다.

 

지난 30일(현지 시각) 미 국방부는 의회에 제출한 ‘핵 태세 보고서’(NPR)와 ‘미사일 방어 보고서’(MDR)의 기조에 대한 보도자료에서 “미국은 미국과 동맹, 파트너의 근본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극단적 상황에서만 핵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극단적 상황’은 핵보유국의 대규모 재래식 무기 공격, 생화학 무기 사용, 사이버 공격 같은 ‘비핵(非核) 전략 위협’을 포괄한다.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도 각각 2010년과 2018년 의회에 제출한 핵 태세 보고서에서 사용했던 표현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든 대통령이 선거 공약에서 물러서서, 핵 위협 외에 재래식 무기와 다른 비핵 위협을 억지하기 위해서도 잠재적인 핵 대응을 위협할 수 있다는 미국의 오랜 접근법을 받아들였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유사시 적국이 미국을 핵 공격하려 할 경우 선제 공격 등의 방침을 계속 유지하게 됐다. 미국은 핵무기 사용 요건에 대해선 ‘의도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EPA 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의 핵 태세 보고서에는 미국 민주당 일각에서 바랐던 ‘핵무기 선제 사용 금지 선언’도 담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핵무기 선제 사용 금지 선언은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이 약속한 것이다.

 

바이든은 2020년 포린어페어스 기고를 통해 “미국 핵무기의 단일 목적은 핵 공격을 억제하는 것으로 필요시 핵 공격에 보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바이든의 대선 공약으로 이해돼 왔으며, 이 때문에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10월 바이든의 핵 태세 보고서에 핵무기 선제 사용 금지 선언이 담길 것을 우려한 동맹국들이 기존 핵 정책을 바꾸지 말라고 미국 정부에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이 적에 대한 선제 핵 공격을 포기하고 보복 핵 공격에만 나서겠다고 밝히면 미국이 동맹들에 제공하는 ‘핵우산’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인 1994년 시작된 핵 태세 보고서는 통상 대통령 취임 초기에 한 차례만 작성하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에서 ‘단일 목적’이나 ‘핵 선제 사용 금지’가 다시 논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 국방부는 “이런 전략적 검토의 완료와 함께 대통령은 미국 핵 억지 전략에 대한 비전을 표현했다”며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미국 핵무기의 근본적 역할은 미국, 동맹, 파트너에 대한 핵 공격을 억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2009년부터 8년간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일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핵 없는 세상’을 추진하는 데 일조했던 바이든은 핵무기 사용 목적을 ‘핵 공격 억지’로 제한하고 싶었지만 ‘근본적 역할’이란 표현을 쓰는 데 그친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핵과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중국과 북한 등이 극초음속이나 다탄두 미사일 개발로 미국의 미사일 방어를 무력화하려 하자 핵무기 관련 기존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동맹에 대한 확장 억제에 충실하겠다는 뜻으로, 북한에 대한 압박은 더 커질 전망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미·북 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기 직전인 2018년 2월 발표한 핵 태세 보고서에서 전임 행정부들이 30여 년간 유지해온 평화·군축 기조를 전면 폐기하고 핵 재무장을 공식화한 바 있다.

 

당시 보고서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발(發) 핵 위협 요인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미국은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 이후 핵무기 비축을 85% 이상 줄였고, 20년간 신규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았지만, 이 같은 방침에도 잠재적 적으로부터 점점 더 노골적인 핵 위협을 받고 있다”며 핵 무장 당위성을 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