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민석 입력 2022. 03. 06. 05:00
K9A1 자주포 첨단 고반응 화포장치 단독 공개
누적 850문 수출, 세계 자주포 시장 69% 점유
K9A1 자주포, 첨단 고반응 화포장치 단독 공개
세계 최강자 등극, 국제 자주포 시장 69% 점유
버튼만 누르면 포탄과 장약이 자동으로 포신에 장전돼 사격이 이뤄진다. 로봇의 손이 자주포의 포탑에 가지런히 세워진 채 정렬된 포탄을 집어 옮기면 자동으로 포신에 쑥 들어갔다. 포탄을 수십㎞ 쏘아 보내는 장약도 거의 동시에 옮겨져 포탄에 이어 포신에 채워졌다.
한화디펜스가 개발한 고반응 화포 기술이다. 국내 최대 방산업체 가운데 하나인 한화디펜스가 지난달 17일 창원공장에서 고반응 화포 장치를 중앙일보에 전격 공개했다. 이 장치는 곧 본격 개발에 착수될 구경 155㎜ 국산 자주포 K9A2에 적용될 예정이다. 현재 우리 군은 K9 기본형과 개량형인 K9A1을 운용하고 있다.
K9A2는 사격할 표적의 좌표 등 제원만 주어지면 포탄과 장약을 자동으로 고른다. 표준화된 크기로 만들어진 단위장약은 사거리에 맞게 몇 개를 포개면 그만이다. 새로 개발된 단위장약은 충격 등에 둔감해 폭발 사고도 적다.
이렇게 고반응 화포 장치로 시범적으로 적용한 K9A1은 1분에 9발을 쐈다. 분당 6발을 사격하는 기존의 K9A1에 비해 1.5배나 더 쏜다. 고반응 화포체계는 한화디펜스가 2016년부터 개발해 지난해 8월 통합성능시험평가까지 마친 상태다.
K9A2에 적용될 포탄 자동 이송장치. 로봇암이 포탄을 집어 포신에 넣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한화디펜스]
고반응 화포체계가 적용된 K9A2 형태는 K9A1에 비해 포탑 뒷부분이 약간 커졌다. 자주포는 차체 위에 포탑이 얹힌 구조로 돼 있다. 한화디펜스 신사업팀 박광수 부장에 따르면 현재 운용 중인 K9A1은 포탄을 자주포 아랫 부분인 차체 안에 탑재했지만, A2형은 위에 있는 포탑에 포탄을 가지런히 세워 적재한다.
그래서 포탑이 커진 것이다. A2형은 차체에 포탄을 싣지 않다 보니 차체 내부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그래서 그 빈 공간에 에어컨과 자동 소화장치를 넣는다. A2형은 에어컨 덕분에 한여름 땡볕에 차체 내부가 섭씨 44도로 올라 찌는 더위를 없애준다.
자주포 승무원이 여름에도 시원하게 지낼 수 있게 된다. 또 적의 공격이나 내부 사고로 차체 내부에 불이 났을 경우에는 자동 소화장치가 작동해 곧바로 불을 끈다. 승무원의 생존성이 크게 향상된다.
한화디펜스가 개발한 고반응화포 장치에 의해 탄약과 장약이 자동으로 장전된 모습. [한화디펜스]
탄약과 장약 장전이 자동화되면서 K9A2 승무원은 현재(A1) 5명에서 2~3명으로 준다. A2형 포탑 위에 달린 K6 중기관총은 사수가 내부에서 원격으로 통제할 수 있는 RCWS(Remote-Controlled Weapon System)가 장치돼 있어서다.
이 RCWS 덕분에 K9A2 승무원은 자주포 안에서 적외선 카메라로 주간은 물론, 야간에도 4㎞ 이내에 숨어있는 적을 찾아내 K6 중기관총으로 정확하게 사격한다. 지금처럼 사수가 K6 중기관총을 쏘기 위해 포탑 위로 머리를 내밀다가 적으로부터 저격당할 위험도 없어진다.
A2형은 포신 내부를 크롬으로 도금해 수명이 훨씬 길어진다. A1형의 포신의 포탄 발사 수명은 1000발이지만, 크롬 도금한 A2 포신은 1500발로 늘어난다. 포탑 상부는 특수방탄강으로 돼 있어 북한군 152㎜ 포탄이 20m 상공에서 터져도 끄떡없다.
한국에 배치된 K9A1 국산 자주포. 기존의 K9에서 사격통제장치, 위치 확인, 조종수 잠망경 등 여러 부분을 개량하고, 보조동력장치를 추가했다. [한화디펜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등 군 당국은 이런 장치와 기술이 적용된 K9A2에 대한 소요검증을 벌이고 있다. 올해 안에 사업타당성 조사와 함께 예산을 편성하면 내년부터 K9A2의 체계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2027년쯤에는 실전에 배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체계 개발은 새로 개발된 장치와 기술을 적용해 K9A2 본체를 만드는 과정이다.
한화디펜스는 K9A2의 핵심 기술과 장치를 들고 미국과 영국의 야포 개량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영국은 AS90 자주포를 대체할 1조원 규모의 신형 자주포(MFP: Mobile Fires Platform) 사업을 추진 중인데 K9A2의 개발 일정과 유사하다.
이미 MFP 사업에 K9A2 솔루션을 제안한 상태다. 미국도 사거리 연장 자주포(ERCA: Extended Range Cannon Artillery)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한화디펜스는 이 사업에도 K9A2의 자동화 포탑 솔루션을 제안할 계획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사업타당성 조사와 예산 반영이 늦어지면 미국과 영국의 야포 사업에 참여하지 못할 우려도 있다.
K9 자주포의 진화 스토리는 이게 다가 아니다. 박 부장은 앞으로 K9 자주포의 3차 개량(K9A3) 사업을 추진하면 사거리를 70~100㎞로 늘어나고, 분당 최대 발사속도는 10발로, 포신도 현재 8m에서 9m로 길어질 전망이다.
포신이 길면 포탄이 포신 안에서 가속되는 시간이 늘어나 사거리도 길어진다. 포탄의 속도(V)가 포신 내에서의 가속도(a)와 가속되는 시간(t)에 비례하는 원리(v=at)다. K9 운용도 유무인 복합으로 추진된다. K9A3가 실전에 배치될 시기는 2030년대로 보고 있다.
K9A3 개량을 마치면 곧바로 차기 자주포 개발이 필요하다고 한다. 최대 사거리를 130㎞ 이상으로 늘이고, 인공지능(AI)를 접목해 자주포 사격 자체를 원격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자주포의 자율주행과 무인화도 이뤄진다. 전시에 포격전을 할 때엔 자주포 승무원은 K9A3에서 나와 안전한 벙커에 대피한 뒤 원격으로 사격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한화디펜스가 이처럼 K9의 완전 무인화를 구상하는 이유는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들이 이미 사거리 100㎞ 이상, AI 적용 및 무인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선진국이 현재는 K9의 위세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지만, 두 단계 점프해 무인화하면 K9이 오히려 불리한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탈냉전 이후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155㎜ 대구경 야포의 필요성이 크게 줄어 관심이 없어졌다. 그러다가 러시아의 2014년 크름반도 침공을 보고 대구경 포인 155㎜ 자주포에 다시 눈을 돌렸다.
크름반도 침공 당시 우크라이나의 인명 피해 70%가 러시아의 야포 공격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155㎜ 자주포 시장을 한국이 독차지했지만, 미국 등 선진국들이 다시 자주포 개발에 나서면 한국이 뒤처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고반응화포가 적용된 K9의 포탄 발사. 이 자주포는 기존의 K9A1보다 포탑 뒷부분이 커졌다.
자주포의 아랫부분인 차체에 적재하던 포탄을 상부의 포탑으로 올리면서 포탑 뒷부분이 튀어나왔다. [한화디펜스]
지금까지는 한화디펜스가 이집트 정부와 올 2월 1일 K9 자주포 200문 수출 계약을 체결하면서 K9은 세계 자주포 시장에서 최강자임을 증명했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판매된 구경 155㎜ 자주포 시장의 69%를 선점했다.
사실 최근엔 K9만 팔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9이 국산무기 가운데 명품으로 이름이 나긴 했지만, 미국과 독일 및 프랑스 등 선진국은 물론, 군사강국인 러시아와 중국까지 물리치고 단독 선두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높은 성능과 신뢰성, 그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독일 등 선진국 제품 가격의 절반 이하) 덕분이다.
K9A1을 이집트에 수출하기 위한 현지 사격시험에서 K9A1이 해상 표적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실제 현지에선 선박이 아니라 40mX40m 크기의 부표를 해상에 띄워 놓고 맞히는 사격시험을 실시했다. [이집트 국방부]
이집트가 K9에 꽂힌 것은 15㎞ 밖 해상에 떠 있는 부표(40×40m)를 정확하게 타격하는 능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박광수 부장은 “K9 자주포는 가로세로 40m 크기의 표적 정도는 거의 정확하게 맞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고속정은 길이가 40m, 초계함은 100m가량 된다.
세종대왕함과 같은 구축함은 166m다. 지중해와 홍해를 접하고 있는 이집트 입장에서 기존의 해안포보다 정확도가 높은 K9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K9을 지상 포병작전으로 활용하다가 필요 시엔 해안방어에까지 투입될 수 있으니 양수겸장인 셈이다. 심지어 이집트 현지 시험에선 1㎞ 떨어진 전차 크기의 작은 표적을 맞히는 시현도 있었다.
K9이 전차가 쏜 포탄처럼 네모 표적을 명중했다. 적 전차나 벙커 등을 조준해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K9A1을 이집트에 수출하기 위한 사격시험 과정에서 K9A1이 전차처럼 1km 떨어진 네모난 표적을 정확하게 맞히고 있다. K9A1의 정확도가 높다는 점을 확인해줬다. [한화디펜스]
K9 자주포의 또 다른 최대 강점은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군이 1200문이나 실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격도 싸지만, 성능과 정비의 신뢰도는 다른 나라의 자주포는 비교가 되지 않게 우수하다.
K9이 뜨거운 여름과 눈 덮인 겨울, 평지와 산악 등 모든 악조건을 갖추고 있는 한반도 지형에 맞춰 개발한 점도 강력한 경쟁력이다. 전 세계 어디서든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악조건의 기후와 지형에서 경쟁을 벌인 첫 번째 사례가 노르웨이 수출이었다.
눈 덮힌 산악지형에서 기동하는 K9A1. 국산 자주포 K9A1이 노르웨이에서 독일 지주포 PzH2000과 성능을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독일제는 설원의 산악에서 고장이 났으나 K9A1은 생생했다. [한화디펜스]
2014년 겨울 한화디펜스(당시는 한화 테크윈)는 노르웨이에 K9을 수출하기 위해 미국, 독일, 프랑스 등과 경합을 벌일 때다. 세계 최상급 무기 생산국들이다. 우리 K9과 독일 PzH2000 자주포가 마지막으로 남았는데 눈이 쌓인 노르웨이 산악에서 기동하고 사격하는 시험을 했다.
그런데 PzH2000은 엔진에 과부하가 걸려 고장이 잦았다. 유럽의 평지에 맞춰 개발한 PzH2000은 눈이 쌓여 미끄러운 노르웨이의 가파른 산악에선 맥을 추지 못했다. 급기야 독일은 예비로 가져간 PzH2000 자주포를 투입했지만 또 고장났다.
반대로 한국의 겨울과 여름에 적응한 K9A1은 고장 없이 생생했다고 한다. K9A1은 노르웨이와 유사한 한국의 겨울 산악지형에서 수 없는 훈련을 해왔기 때문이다. K9A1이 노르웨이 입찰을 따내자,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등에서도 연이어 수출 실적을 올렸다. 그 결과 지금까지 K9 계열은 8개국과 850문을 수출계약을 맺었다.
K9 자주포 부대가 전방 사격훈련장에서 표적 지역에 집중 사격을 벌이고 있다. [한화디펜스]
K9의 전투력은 북한 포병에 비해서도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K9의 정확도는 40m 이내인 데 비해 북한군 152㎜ 및 122㎜ 야포는 150m가 넘는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때 북한군이 쏜 포탄 170발 가운데 절반은 바다에 떨어졌다. 지상에 떨어진 포탄도 30%는 불발탄이었다. 북한 야포가 형편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북한 야포는 대부분 완전 수동이다. 포탄과 장약 장전은 물론, 포신의 방향을 표적을 향해 돌리는 것도 사람 손으로 해야 한다, 그러니 초탄 사격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사격할 표적도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아니면 특수부대를 보내 정찰하거나 어림짐작으로 할 수밖에 없다.
반면 K9은 사격할 좌표만 입력하면 포신이 자동으로 돌아간다. 포탄과 장약은 반자동이다. 무거운 포탄을 손으로 들어 포신에 넣지 않아도 된다. 표적은 대포병레이더와 무인정찰기 등이 찾아내 사격통제소로 실시간 전송하고, 지휘소의 명령을 받으면 그 사격 데이터가 K9에 자동으로 보내진다.
이런 장치 덕분에 K9은 정지 상태에선 사격명령을 받고 30초 이내에 사격이 가능하다. 이동 중에도 1분 안에 초탄을 쏠 수 있다. 따라서 K9이 먼저 사격한 뒤 곧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리면 북한군 야포는 어디로 대응사격을 해야 할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 북한군 야포는 다시 K9의 포격을 받는다.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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