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관찰사 시절(71歲)에 그린 초상화로 보물제 872호이다.
조선 전기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시조작가인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년(세조 13)∼1555년(명종 10)의 초상화(肖像畵)이다. 이현보(李賢輔)의 본관은 영천(永川)으로. 자는 비중(菲仲), 호는 농암(聾巖)·설빈옹(雪鬢翁)이고. 예안(禮安: 오늘날 안동시 예안면 지역) 출신이다. 아버지는 참찬 이흠(李欽)이고. 홍귀달(洪貴達)의 문인이다.
1498년(연산군 4년)에 문과에 급제한뒤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춘추관기사관·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1504년(연산군 10) 38세 때 사간원정언이 됐다. 이때에 서연관의 비행을 탄핵했다가 안동에 유배됐으나 중종반정으로 지평에 복직된다.
밀양부사·안동부사·충주목사를 지냈고, 1523년(중종 18)에는 성주목사로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이후 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 등을 거쳐 대구부윤·경주부윤·경상도관찰사·형조참판·호조참판을 지냈다.
1542년(중종 37)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됐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둔다. 이황(李滉)·황준량(黃俊良) 등과 교유했으며 고향에 돌아와서는 시를 지으며 한가롭게 보냈다. 저서로는 『농암집』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전하여오던 「어부가(漁父歌)」를 장가 9장, 단가 5장으로 고쳐 지은 것과 「효빈가(效嚬歌)」·「농암가(聾巖歌)」·「생일가(生日歌)」 등의 시조작품 8수가 전한다.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문학사에서 강호시조의 작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많은 저서 중에서『어부가』등의 시조가 특히 유명하다.
이 그림은 가로 105㎝, 세로 126㎝로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위가 뾰족한 패랭이를 쓰고 붉은색이 감도는 옷을 입은 모습으로 허리에는 물소뼈로 만든 각대를 두르고 있으며 오른쪽을 바라보며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손이 나타나지 않는데 비해 한 손에는 지휘봉 모양의 불자를, 다른 한 손은 책상을 잡고 있다.
책상 아래로는 검은 가죽신이 보인다. 이 그림은 선생이 관찰사로 있던 중종 32년(1537)에 대구 동화사의 승려이자 화가인 옥준상인(玉俊上人이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 후 순조 27년(1827)에 훼손을 우려한 후손들에 의해 이 그림의 모사본이 만들어졌다.
▲농암 이현보 간찰/크기: 20.5(폭)×30.0cm(가로), /농암종택 소장
이현보(李賢輔) 선생이 타계하기 1년 전인 1554년(朝鮮 명종 9)에 사돈 김유(金綏, 1491~1555)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의 자식 혼사에 참석하고 돌아온 다음날, 혼사를 다시 한 번 축하하고, 전날 잔치 자리에서 감기를 염려하여 일찍 빠져나온 것에 대한 해명도 하고 있다. 아직 미혼의 자손이 있음을 안타까워하는 감정을 상대방에게 웃으며 밝히는 모습이 예의 시원 시원한 농암의 성품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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