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필자 종보 기사

경복궁 신무문 편액 유필과 고성 현령 선정비 소개 글

야촌(1) 2021. 6. 1. 22:15

경복궁 신무문 편액

고성현령 선정비

 

경복궁 신무문 편액 유필

‘고성현령 선정비 소개 글’

 

오늘날 경복궁의 신무문(神武門)을 밖으로 나가면 바로 청와대(靑瓦臺)가 마주 보입니다.

신무문은 1433년(세종 15)에 건립되고 이름은 조선전기 좌찬성(左贊成)을 지낸 서거정(徐居正)이 작명한 건축물인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전소되면서 사라졌다가 1865년(고종 2) 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경복궁 중건과 함께 다시 세워졌습니다.

 

이곳은 원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왕 또는 문관들이모여 글을 지으며, 연회를 하였던 융문당(隆文堂)과 그리고 무과 과거시험의 활쏘기경연, 군사들의 교체훈련 및 사열 때, 사용하였던 융무당(隆武堂)을 비롯하여 옥련정(玉蓮亭) 등의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농재(慶農齋)와 그 주변 건물 앞에는 왕이 직접 농사를 지었던 내농포(內農圃)도 있었고, 또 그 윗부분 높은 지대 즉 경무대(景武臺)는 왕이 친히 군사훈련을 점검하기도 하고, 연회를 베풀기도 했던 곳입니다.

 

일제는 이를 모두 철거하고 이곳에 식민통치를 상징하는 총독 관저를 세웠습니다.

이후 총독 관저는 이승만 대통령 때, 대통령 관저로 쓰이면서 경무대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4.19혁명이후 청와대로 다시 바뀌었습니다.

 

신무문의 편액은 오문의 국당공 후 지퇴당(知退堂)공의 8대손인 34世 이현직(李顯稷) 선조께서 1866년(고종 3) 어영대장(御營大將)과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역임하면서 경복궁 중건을 감독하였는데 이듬해인 1867년(고종 3) 경복궁 중건이 완성되면서 이 편액 글씨를 썼습니다.

 

이현직『李顯稷, 1797년(정조 21)∼1876(고종 13)』 선조의 자(字)는 백형(伯衡), 호(號)는 오산(梧山)으로, 종숙(從叔)에게로 양자를 갔는데, 1769년(영조 45) 무과에 올라 총관(摠管)을 지낸 이격『李格, 1748~1812/조선 천주교도 광암(曠庵) 이벽(李蘗)의 형님』공(公)이 양부(養父)이고 양모는 안동김씨(安東金氏, 1748~1820) 입니다.

 

생부(生父)는 이욱「李稶, 1763(영조 39)~1807(순조 7)」공이고 생모는 연안이씨(延安李氏)이며. 공(公)은 1823년(순조 23)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1829년(순조 29) 12월 25일 고성현령(固城縣令)에 제수되고. 1830년(순조 30) 2월에 부임하여  1831년 8월에 중죄인이 옥에서 달아 난 일로 파직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1846년(헌종 12)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營)와 1848년(헌종 14) 전라도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를 지냈으며, 1854년(철종 5) 삼도수군통어사(三道水軍統禦使)· 함경북도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를 역임 했습니다..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난 뒤 전국에 암행어사(暗行御史)를 보내 주로 변방 방비를 사찰하도록 하였는데, 그 결과 통제사들의 죄가 드러나 중신(重臣)인 그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水軍節度使)에 특별히 임명 했었습니다.


그러나 1869년(고종 6) 호포전(戶布錢)을 걷기 위하여 작성한 호적에 향리들의 부정이 있어 일어난 고성민란으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형조판서(刑曹判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거쳐, 신미양요(辛未洋擾)가 거의 끝나갈 때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서울 시장)에 임명되었습니다.

 

공이 세상을 하직하기 한해전인 1875년(고종 12) 6월에 고성 읍민들이 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비(行縣令李顯稷善政碑)를 고성 객사(客舍) 길옆에 세웠는데, 1972년 개천절 날 당시 고성군수 허직(許稙)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한곳으로 모어면서 지금은 고성의 남산공원 입구 비석거리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외 공의 유적은 1839년(헌종 5년) 부산 첨사로 재직 시 양산 통도사(通度寺) 선자바위[이름바위]에 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행여 고성의 남산 길을 오르시거나 청와대 정문 앞을 지날 때나 통도사를 들릴 때면.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며,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한 옛 선조의 얼을 한번 되새겨 보시길 앙망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