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2. 01. 02
■죽포 이규현(竹圃 李圭鉉, 1848~1935)-항일 의병운동가
이규현(李圭鉉)선생은 고려조의 명신 국당 문효공 휘 천(菊堂 文孝公 諱 蒨)의 후손으로, 자는 인집(仁執), 호는 죽포(竹圃)이다, 그는 1905년 일제가 조선의 대신들을 총칼로 협박해 을사늑약을 맺자, 면암 최익현(崔益鉉,1833.12.5~1907.1.1) 선생과 함께 항일의병전쟁을 일으켰다. 면암 선생이 남긴 무장 항일운동 동지들의 이름을 적은 동맹록(同盟錄=의병에 참여한 지사들의 명단)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규현(李圭鉉). 자는 인집(仁執), 호는 죽포(竹圃), 본은 경주이고 벼슬은 참의이며 무신(1848)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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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현 선생은 의병전쟁 당시 병조참의로 ‘지리산 호랑이’로 불리던 석상용의 무장 항일투쟁을 돕기 위해 가족을 동원해 총포를 쌀 뒤주에 숨겨 전달했고, 이를 알게 된 일제는 노구의 이공 대신 장남 이종순을 죽이려 했다.
이에 셋째아들 이종식이 나서서 일본군대를 꾸짖으며 장남대신 자기가 죽기로 하자. 일본군은 이종식을 처형하기 위해 남원 실상사(南原 實相寺)로 끌고 갔다.
그 곳에는 다른 사형수 네 명이 더 있었고, 모두 심한 고문으로 병색이 완연했다. 일본군은 실상사 마당에 잘 차려진 점심 밥상을 놓고, 총으로 겨누며 "이승에서 마지막 밥이니. 귀신도 배가 불러야 길을 떠나지. 서러워말고 많이 먹어라"면서 조롱했다.
그러나 이들 부자의 의(義)를 아는 마을사람들의 지혜로운 도움으로 죽음 앞에서 이종식은 사형 직전에 구사일생 목숨을 구했다. 장남 대신 죽으려했던 셋째아들 이종식은 그 후 일본군 감시를 피해 지리산 금계에 은둔해 살았으며,나이 50세에 첫 아들을 낳았으니, 호(號)가 적선(謫仙)인 이윤우(李尹雨)공이다.
그리고 이윤우공 또한 조부의 유언대로 김제 원평으로 이거해 터를 잡고 살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막내아들을 두었는데, 그가 바로 이스타항공 회장으로서 전북 전주시 완산 을구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제19대. 제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상직의원이다. 즉 이상직 의원은 죽포 이규현선생의 증손자가 된다.
죽포장구소(竹圃杖屨所)/소재지 :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중리 마을
경주이공규현(慶州李公圭玹)
갑진 삼월 일(甲辰 三月 日, 1964년 3월에 세운 듯)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중리 마을/마을 행정명으로는 금계+ 의중+ 의평을 합하여 의탄리라고 한다.
↑경주이씨세천(慶州李氏世阡) 비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중리 마을에 있는 이 ‘경주이씨세천(慶州李氏世阡)’ 비가 의중리 마을에서 지리산 둘레길의 의정표 역활을 단단히 해준다.
천(阡)이란 본래의 뜻은 밭 사이에 남북으로 난 좁은 길을 뜻하는 글자인데, 오늘 날엔 농토의 두덕길로 의역(意譯) 되기도 하고, 논밭(田地)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천맥(阡陌)의 준말이기도 한 이 천(阡)은 千과 百의 많음을 나타내는 말도 된다.
그러니 경주이씨 논밭이란 말도 되고 경주이씨들의 세거지란 말도된다. 허지만 비문의 뜻은 경주이씨 세거지란 뜻으로 봐야한다.
↑이상직(1963. 01. 30~) 국회의원의 앨범에 있는 큰 형님의 대학 졸업기념 사진
좌측으로 부터 어머니와 아버지 이윤우공. 다음이 졸업하는 이상직의원 큰형님이시다. 어머니가 안고있는 아기
가 이상직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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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의탄리 덕암(德巖)과 성혈
덕암(德巖) : 지리산 둘레길 3구간 마천면 의탄리 새별들에 자리하여 접근성이 용이합니다.
덕암(德巖)
홀로 우뚝 선 큰 바위에 덕암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사람은 누구이며 의미는 무엇일까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구절이 검색됩니다.
그렇다면 명문을 새긴 두 사람의 성품이 미루어 짐작됩니다.
이진우(李璡雨)
이보우(李輔雨)
계유 칠월 일(癸酉 七月 日), 1,933년
은계(隱溪) 이진우(李璡雨.1897~1945)
탄수 이종식 선생의 장형 이종순(1,866~1,913)의 아들이며, 탄수 선생의 장조카로 마천초교를 개교한 분입니다.
탄수 이종식((灘叟. 李鐘植. 1871~1945) 선생의 '비결 명문 논집'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의병 관련 기록에 의하면 탄수공의 아버지. 죽포 이규헌(竹圃. 李圭玹.1848~1935)선생과 장형 이종순(李鐘純.1866~1913) 선생이 정미(1,913) 년에 의병장 석상용 의진에 무기와 군자금을 지원했다가 발각되어 고초를 겪었으며, 탄수 선생이 장형 대신에 인질로 잡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집안 내력을 되새겨 보면 덕암(德巖)이 함축하고 있는 상징성과 의미를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죽포선생 집안의 독립운동 관련 사료를 발굴하여 심도있게 규명 후 현장(顯章)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덕암 상부 성혈(性穴)
공식 명칭이 바위구멍이라고 하지만 승탑 보다는 부도가 익숙한 것처럼 성혈이 익숙합니다.
주지하듯
성혈은 암각화와 더불어 청동기 시대의 산물로, 지석묘 상부, 산과 강가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며 하늘의 별자리로 천문을 관찰하고, 그 자리는 제의를 올리는 신성공간이기도 합니다.
덕암과 성혈
별자리를 나타낸 성혈이 가장 먼저 자리 잡은 이후 주변에는 별자리와 관련된 지명이 지어졌습니다.
멀리보이는 금마산(대), 그 아래 탄수 이종식(탄수대 암각문 참조) 선생이 입향한 금계(金鷄) 마을의 어원도 샛별의 별칭인 계명성(鷄明星, 啓明星)에서 유래된 것 같습니다. 또한 한문 표기는 다르지만 인근 추성동, 칠성동 등의 지명도 천문지리와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동행한 민병태(개인적으로는 지리산과 주변에 관한 백과사전으로 생각)님은 새벽별(금성)은 '개밥별'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시골 마을 주민들이 새벽에 일어나 개한테 밥을 줄 때 뜨는 별에서 유래된 재미진 우리말이지요.
덕암, 성혈
새벽들 건너 채석장의 부처님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불상(조각자가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출처 : 옛님의 숨결. 그 정취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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