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근현대 인물

고광선(高光善) - 개화기 유학자

야촌(1) 2020. 5. 15. 16:55

현와 고광선 선생 영정/영정의 크기는 56.5 × 94cm이고 족자의 크기는

63.5 × 105.5cm로 당히 큰 편이다. 이 영정은 석지 채용신(탈렌트 채

시라의 조부) 화백이 1926년 6월에 그린 이다. <사진출처 : 시민의 소리>

 

■ 고광선(高光善)

    개화기 유학자

 

1855년(철종 6) 12월 23일 ~ 1934년 12월 25일 개항기 때의 유학자로 본관은 장택(長澤).자는 원여(元汝),호는 현와(弦窩). 복헌(復軒) 고정헌(高廷憲)의 후손이다. 조부는 고재열(高濟說)이고, 아버지는 호은(湖隱) 고박주(高璞柱)이고 어머니는 행주기씨(幸州奇氏) 기우진(奇禹鎭)의 딸로 광주 복촌(復村)에서 태어났다.

 

1862년(철종 13)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송독(誦讀>글을 소리 내어 읽음)에 능하였다.

1864년(고종 1) 10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세 살 나이 동생을 보살피며 계모 광산김씨(光山金氏)를 친모(親母) 처럼 섬기니 향인들의 칭찬이 자자 했다.

 

덕암 나도규(德巖 羅燾圭. 1826~1885)의 문인으로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널리 익혔다.

또한 노사 기정진(蘆沙 奇正鎭),1798~1879)의 문하(門下)에도 출입하면서 천인성명(天人性命) 뜻과 예법의 본질을 배웠다. 당시 교유한 인물로는 설진영(설진영(薛鎭永)이다.

 

1905년(광무 9)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엄이재(掩耳齋)를 지어 그곳에서 .숨어 지냈다.

1934년 이질에 걸려 현와정사(弦窩精舍)에서 12월 25일 80수(壽)로 세상을 마감했다.

이듬해인 1935년 1월 20일 현와정사의 남쪽 산록 사자원(巳坐原)에 안장(安葬) 되었다.

 

저서로 현와유고(弦窩遺稿)가 전하는데 1962년 박하형(朴夏炯) 등 문인들이 16권 8책으로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송재직(宋在直)의 서문, 권말에 박하형의 발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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