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유적. 유물

문호사(汶湖社)

야촌(1) 2019. 10. 3. 08:53

문호사(汶湖社)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817-1

 

관란 이선생 창의비(觀瀾李先生倡義碑)

 

 

 

 

 

 

 

 

문호사는 경주 첨성대 바로 뒷편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로 조선중기(1515~1599)의 성리학자 관란(觀瀾) 이승증(李承曾) 선생의 서원으로 공 의 충효정신을 받들기 위하여 제향하는 사우(祠宇)이다.

 

선생은 신라(新羅) 좌명공신(佐命功臣)인 이알평(李謁平)의 후손으로, 1515년(中宗 10)에 경주부 중리에서 출생하였다. 공의뛰어난 충효를 기려 세인들은 그의 시묘(侍墓) 살던 지명(地名)을 충효(忠孝) 마을로 불렀다.

1542년(중종 37)에 보문보(普門洑)를 막아내 한발에 대비한 공덕이 오늘날까지 빛나고 있다. 1558년(明宗 13)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고도 명리(名利)에 뜻이 없어 전 후 일곱 차례나 관작(官爵)의 제수를 사양하여 세칭(世稱) 칠징사(七徵士)로 존칭(尊稱)되고,

오직 후학 양성에만 전념하시다가 1592년(宣祖 25) 임진왜란이 발발(勃發)하자 78세의 노령임에도 경산 자인(慶山 慈仁)에서 창의(倡義)하여 적진(敵陣)을 크게 무찔렀다.

이어 대구지역 사림(士林)에 격문(檄文)을 보내 '무릇 선비는 충성과 효도가 있을 뿐이니 어찌 나라가 이토록 위급한데 대구에 의기(義氣)가 적연(寂然)한가' 하니, 이를 본 대구 청도 등지의 선비들이 뒤따라 일어나 향토를 지키는데 함께했다.

1599년(宣祖 32) 85세로 고종(考終)하시니, 나라에서 정려(精閭)를 내리고 사림(士林)은 사우(祠宇)를 지어 제향(祭享) 하였다.순조(純祖) 21년(1821)에 후손들은 공의 유고를 모아 관란 이선생문집(觀瀾 李先生文集)을 발간하였다.

현재 공의 유적인 이곳 문호사(汶湖社)엔 정효각(旌孝閣)과 창의비(倡義碑)가 있다.

공의 저서로 관란집(觀瀾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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