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족보관련문

한산이씨 족보 서(韓山李氏族譜序)-신익성 (申翊聖)

야촌(1) 2019. 5. 26. 12:20

한산이씨 족보 서(韓山李氏族譜序)

 

신익성 (申翊聖) 撰/ 영의정 신흠(申欽)의 아들

「1588년(선조 21) ~ 1644년(인조 22)」

 

사람들이 자신을 낳은 조상을 명칭하지 못하다가 천대, 백대를 지나는 동안 세상에 공덕이 있는 한 사람을 얻어 그를 존숭하여 비조(鼻祖)라 하고 씨족을 구별하여 족보를 찬수하면 이는 자손들이 어진 선조를 가려서 존숭하는 것에 가깝지 않은가라고 나는 매번 의심하였다.

 

세상에 공덕이 있으면 종조를 높이고 종족을 비호할 수 있다. 종조를 높이면 천대, 백대 위 조상이 모두 그 영예를 누리고 종족을 비호하면 천대, 백대 위 조상의 후손이 모두 그 복을 받으니 그를 존숭하여 비조로 삼는 것을 또 어찌 의심하겠는가. 한산 이씨(韓山李氏)의 족보를 보고나서 예전에 의심하던 것이 더욱 풀리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원래 세족(世族)을 중요하게 여겨서 신라의 육부(六部)와 고려의 육태사(六太師)의 후손들이 우리나라에서 높은 벼슬을 얻었다. 그 나머지 족보를 만들 만한 이름난 성씨들 또한 모두 벌열 가문이었는데, 한산의 적관(籍貫)은 고려 말에 시작되어 대대로 높은 관직을 지내 성대하게 명성 있는 가문이 되었다.

 

그 족보에서 존숭하여 비조로 삼는 사람을 상고하면 가정(稼亭 이곡(李穀)) 선생이다. 가정(稼亭)에서 한 세대 내려오면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이니, 이른바 종조를 높이고 종족을 비호할 자가 아니겠는가.

 

한 사람이 남긴 업적으로 안팎으로 지파(支派)를 나누어 몇 천, 몇 백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 가운데 인재(麟齋 이종학(李鍾學))와 음애(陰崖 이자(李耔)가 선대의 훌륭한 덕을 계승하고 절의를 드러내어 집안의 덕업을 계승하였으며 그 밖에 이름난 공경과 명성 있는 인사가 대대로 기록이 끊이지 않아 정승이 된 자들도 몇 사람이다.

 

이는 당(唐)나라와 송(宋)나라의 역사책에서도 대서특필하는 경우이니 이 족보의 간행은 한 지역에서 행해질 뿐만 아니라 또한 국가의 보첩(譜牒)에도 오를 만한 것이다.

 

그 후손인 관찰사 덕수(德洙)가 일찍이 승평(昇平 순천)을 다스릴 때 목은의 전집(全集)을 중간해서 세상에 내놓았고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또 세보(世譜)를 간행하면서 내게 서문을 요구하였다.

 

내 일찍이 목은 선생의 글을 읽고 수백 년 이전의 선생을 함부로 안다고 여겨서 때때로 책을 덮고 탄식하였다. 아! 선생은 칠척의 작은 몸으로 오백 년의 왕조가 망해가는 국운(國運)을 만나 감히 내뱉지 못할 말을 내뱉고 지탱하지 못할 형세를 지탱한 것이 어찌 선생이 어찌 흥폐의 운수를 알지 못해서이겠는가.

 

그런데도 이와 같이 한 것은 다만 그 뜻을 변치 않으려 한 것이었다. 그 뜻을 변치 않고 세상을 떠나 비록 인간 세상에서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마땅히 하늘의 뜻은 얻은 것이니, 하늘이 여기에 보답하여 베풀어 준 것을 이 족보에서 징험할 수 있다.

 

[원문]

 

韓山李氏族譜序

 

余每疑人不能名生民之祖。而歷千百代。得一人有功德於世者。尊之曰鼻祖。別其族而修其譜。則不幾於子孫揀擇祖先之賢否而尊之也。有功德於世則能亢其宗而庇其族矣。亢其宗則千百代之祖皆享其榮矣。庇其族則千百代之祖之孫皆受其福矣。尊之爲鼻祖。又奚疑焉。洎閱韓山李氏之譜。余之所嘗疑者益釋然矣。我東方素重世族。羅之六部。麗之六太師之裔。冠冕海東。其餘著姓之可譜者。亦皆閥閱。而韓山之籍。肇於麗季。圭組相襲。蔚爲名家。攷其譜之尊而祖之者。稼亭先生也。稼亭一傳而爲牧隱先生。則非所謂亢宗庇族者耶。以一人之遺。分派內外。不知其幾千百。而麟齋,陰崖趾美著節。能世其德。名卿聞人。代不絶書。而作相者幾人。此唐宋史筆所特書者。則是譜之行。不亶行於鄕邦。而且登於國牒矣。其裔孫觀察使德洙甫。曾宰昇平。重剞牧隱全集。布於世。按嶺東又刻世譜。問敍於余。余嘗讀牧隱先生書。猥謂知先生於數百載之上。有時掩卷而發嘆也。噫。先生以七尺眇然之身。當五百垂亡之運。發其不敢發之言。支其不可支之勢。豈不知興廢之數。而其所爲若是者。特不欲變其志爾。不變其志而死。雖不得於人。宜得之於天。天之報施。足徵於斯譜。

 

樂全堂集卷之六 / 序

 

[주01] 한산이씨족보 서문 : 이 글은 저자가 이덕수(李德洙)가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적에 간행한 《한산이씨족보(韓山李氏

           族譜)》에 서문을 쓴 것이다.

 

[주02] 신라의 …… 육태사(六太師) : 신라는 양부(梁部)ㆍ사량부(沙梁部)ㆍ점량부(漸梁部)ㆍ본피부(本彼部)ㆍ한지부(漢

          祗部)ㆍ습비부(習比部) 등 육부(六部)의 체제로 정비하고 이들 육부에 각각 이(李)ㆍ최(崔)ㆍ정(鄭)ㆍ손(孫)ㆍ배(裵)

        ㆍ설(薛) 등의 육성(六姓)을 주었다. 고려의 육태사는 고려 태조의 창업을 도와 태사를 증직 받은 홍유(洪儒), 신숭겸

         (申崇謙), 배현경(裵玄慶), 복지겸(卜知謙), 유금필(庾黔弼), 최응(崔凝) 등 6인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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