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교지(敎旨)

이경한(李景漢) 처(妻) 오씨(吳氏) 증직교지(贈職敎旨)

야촌(1) 2019. 5. 13. 22:54

이경한(李景漢) 처(妻) 오씨(吳氏) 증직교지(贈職敎旨)

 

 

 

[교지원문]
敎旨吳氏贈貞敬夫人者順治九年四月初九日贈崇政大夫判中樞府事兼判義禁府事 五衛都摠府都摠管李景漢妻依大典 從夫職
 
[작성 시기] 1652년(효종 3) 4월 9일
[수량] 1장
[크기] 91㎝(가로) x 59㎝(세로)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 경주 양월 경주이씨 양월문중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양월리.
◇현소장처 :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이경한(李景漢/경주이씨 26世) 처 오씨(吳氏) 증직교지(贈職敎旨)


1652년 4월 9일에 효종 임금의 명을 받아 이경한의 처 오씨를 정경부인에 증직하는 문서이다. 

정경부인은 조선시대 외명부인 문무관의 처에게 내리는 정·종1품 작호이다.


『경국대전』의 규정에 의해 이경한이 ‘증 숭정대부 판중추부사 겸 의금부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증직되고, 그 처인 오씨에게도 증직이 내려졌다. 이경한이 종1품에 증직되었기에 그의 처도 종1품에 증직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28世 이구징(李耉徵)의 문집인 『죽헌집(竹軒集)』과 『경주이씨세보』에도 보인다. 오씨의 본관이 『죽헌집(竹軒集)』에는 선산(善山)으로 기록되어 있고, 『경주이씨세보』에는 일선(一善)으로 되어 있다. 일선은 선산의 옛지명이다.


또한 『죽헌집(竹軒集)』에서는 오씨의 아버지가 벼슬 없이 일찍 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세보』에서는 경주부윤을 지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경주이씨세보』, 경주이씨종친회,
『죽헌선생문집』(한국역대문집총서2362), 이구징, 경인문화사, 1997
『역사와 현실』 59, 박재우, 한국역사연구회, 2006
『古文書硏究』 30, 유지영, 한국고문서학회, 2007
『古文書硏究』 31, 박준호, 한국고문서학회, 2007
<정명수>
 -------------------------------------------------------------------------------------------------------------------------------------

[상세정보]
1652년 4월 9일, 효종이 이경한의 처 오씨를 정경부인에 증직하는 문서


 
● 내용 및 특징.
    1652년(孝宗 3) 4월 9일에 이경한(李景漢)의 처 오씨(吳氏)를 정경부인(貞敬夫人)에 증직(贈職)하는 문서이다. 정경부인은 조선시대 외명부(外命婦)인 문무관의 처에게 내리는 정·종1품 작호이다.
 
증직 사유는 贈 崇政大夫判中樞府事 兼 判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 이경한의 처이기 때문에 『경국대전』의 남편의 관직을 따르도록 한 규정을 따른 것이다. 『경국대전』에는 외명부(外命婦)의 봉작(封爵)은 남편의 관직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경한이 종1품 숭정대부에 추증됨에 따라 이경한의 처도 종1품계에게 내리는 정경부인을 증직한 것이다.
 
연호 왼쪽 옆에 작은 글자로 쓴 것이 바로 이 문서를 발급한 이유이다. 이경한의 추증 교지는 현재 보이지 않는다. 임명관련 교지의 경우 정기적인 인사를 통한 임명이 아닌 경우 그 사유를 문서 왼쪽에 연호보다 한 자 내려서 쓰는데, 이경한의 처 오씨의 경우에도 남편 관직의 변동으로 인한 증직이기 때문에 그 사유를 왼쪽에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서는 4품 이상의 관원을 임명할 때 쓰이는 고신(告身)이다. 이 문서를 발급받는 대상이 문관 1품의 관직을 가진 자의 처이기 때문에 역시 4품 이상의 관원에게 내리는 고신을 발급한 것이다.
 
문서 서식도 4품 이상 관원에게 내리는 고신식과 마찬가지로, 왕의 고유 임명권한을 밝히는 ‘교지(敎旨)’를 첫머리에 쓰고, 본문에 ‘인명+증(贈)+품계(品階)+자(者)’의 순으로 임명 내용을 기입한다. 행을 바꾸어 중국연호와 발급 일을 쓰고 연호 왼쪽에는 증직 사유를 소자로 쓰며 반드시 대전(大典)에 따라 발급한다는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호 위에 ‘시명지보(施命之寶)’를 찍어 임명당사자에게 발급한다. 4품 이상 관원에게 내리는 고신식과는 ‘위(爲)’ 대신에 ‘증(贈)’을 쓰고, 품계는 있는데 관직명은 없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보물 제1474-1-23호로 국가지정문화재이다.

 

아들 이구징[李耉徵, 1609년(광해군 1)∼1688년(숙종 14)]의 『죽헌집(竹軒集)』에는 오씨의 묘지명이 실려 있다. 

오씨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고조의 휘는 식(湜)으로 경주부윤을 지냈고, 증조의 휘는 침(琛)으로 청도군수를 지냈고, 조의 휘는 희윤(希尹)으로 벼슬하지 않고 처음 선산에서 경주 안강현의 양좌 촌으로 옮겼고, 고의 휘는 언린(彦麟)으로 불행하게 일찍 죽었으며 모(母)는 영천최씨로 종부시 주부를 지낸 승항(承沆)의 딸로 1568년(선조 1)에 출생하여 16세에 시집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648년(인조 26)에 80세의 나이로 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주이씨세보』에는 오씨의 ‘본관은 일선(一善), 부윤을 지낸 언린의 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씨의 본관과 부에 대한 정보가 두 문헌 간에 차이점이 있다. 이것은 선산(善山)의 옛 지명이 일선(一善)이기에 각자 집필자 당시의 지명을 달리 불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古文書硏究』 9·10, 鄭求福, 한국고문서학회, 1996
『古文書硏究』 30』, 유지영, 한국고문서학회, 2007


<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