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문집

눌헌집(訥軒集) - 이사균(李思鈞)

야촌(1) 2019. 4. 28. 00:23

 

 

 

 

 

 

 

 

 

 

 

 

눌헌집(訥軒集)

 

대흑구 흑어미 목판본으로 선명하게 간행된 눌헌 이사균(訥軒 李思鈞. 1471년~1536년) 선생의 여러 文, 書, 詩 등을 수록 [눌헌난고(訥軒亂稿)] 單冊이다. 상당한 희귀본이다. <크기> 20.5 × 35.5cm


저자 눌헌 이사균(訥軒 李思鈞. 1471년∼1536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경(重卿), 호는 눌헌(訥軒), 시호는 문강(文剛)이다. 희(嘻)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계반(繼潘)이고, 아버지는 판관 식(埴)이며, 어머니는 부사 김숙(金潚)의 딸이다.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2등 4위)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承文院權知)로 등용되었다. 1500년(연산군 6) 홍문관정자 겸 경연전경(弘文館正字兼經筵典經)이 되고, 1503년(연산군 9) 저작ㆍ부사과를 거쳐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가 되었다.

 

1504(연산군 10)년 부수찬(副修撰)으로 폐비(廢妃) 윤씨(尹氏)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보은(報恩)에 부처(付處=유배)되었다가 곧 곤양(昆陽)으로 옮겨졌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종6품인 부수찬(副修撰)으로 기용되고 이듬해 중종(中宗) 2년(1507)에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을과(2등 2위)로 급제하여 이조정랑 겸 춘추관기주관(史曹正郞兼春秋館記注官)이 되었다.

 

1509년(중종 4) 교리를 거쳐 부응교가 되고, 이듬해 전적을 거쳐 집의(執義) 겸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이 되었다. 그 뒤 승문원참교(承文院參校)ㆍ사성 겸 지제교ㆍ장악원정ㆍ우승지ㆍ첨지ㆍ장악원판결사를 역임하고, 1513년에 도승지(都承旨)가 되었다. 1514년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517년 공조와 형조의 참의가 되었다.

 

그 해에 중궁책봉주청사(中宮册封奏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18년 전주부윤(全州府尹)을 거쳐, 1519년 부제학으로 있을 때에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사류(新進士類)가 축출된 뒤 조광조 일파라는 모함을 받아 좌천되었다. 그후 다시 공조참판(工曹參判)이 되고, 이어서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되었다.

 

1534년 참찬으로 승직되었으나, 나세찬(羅世纘)을 구하려다가 경기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뒤에 다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이사균은 시를 빨리 짓는 데 능했던 중종 시절의 시인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눌헌집(訥軒集)’이 있다. 시호는 ‘문강(文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