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보재이상설선생.

[단독]1910년 ‘성명회선언서’ 탄생한 이상설 선생 거주지 찾았다.

야촌(1) 2019. 4. 22. 17:08

[단독]1910년 ‘성명회선언서’ 탄생한 이상설 선생 거주지 찾았다.

 

[동아일보]유원모 기자 입력 2019-04-22 03:00수정 2019-04-22 03:29

 

‘더채널’ 김광만 PD, 당시 러시아 경찰 비밀보고서에서 확인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인근 위치… 연해주 독립운동 세력 중심지 역할
한인 8,624명 서명 성명회 창립… 일제 방해공작으로 한 달만에 해체
이후 권업회-대한광복군정부 거쳐 1919년 임시정부 한축으로 발전

 

↑1910년 8월 23일(화) 한일 강제병합 소식을 들은 직후 러시아 연해주에 거주하던 한인 8,624명이 서명한 ‘성명회선언서’(왼쪽). 일제강점기 최초의 독립선언서로 평가받는 이 선언서가 작성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시의 이상설 거주지가 처음 확인됐다. 

 

러시아 국립극동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당시 러시아경찰의 보고서에는 “항일조직을 결성하고, 유인석(성명회 회장)의 의지를 집행하는 조언자가 이곳에 거주 한다”고 적혀 있었다. 김광만 PD 제공

 

“장차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진정한 한국국민은 자신의 자유와 국가의 광복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1910년 한일 강제병합을 규탄하기 위해 러시아 연해주한인들이 세계에 독립운동 의지를 천명한 ‘성명회(聲明會)’선언서. 일제강점기 우리민족의 첫 독립선언서인 성명회 선언서가 작성된 책원지(策源地)인 이상설 선생 거주지가 처음 확인됐다.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석형)는 “최근 근대사 다큐멘터리 제작사 ‘더 채널’의 김광만 PD가 러시아 국립극동문서보관소에 있던 1910년 러시아 경찰의 비밀보고서를 입수해 성명회선언서를 작성한 이상설 선생(사진)의 거주지를 찾아냈다”고 21일 밝혔다. 22일은 이상설 선생의 순국 102주기 추모일이다.

 

이번에 확인된 성명회선언서 책원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시 신한촌 인근의 팔리가야 거리에 있다. 러시아의 부동산 등기 문서 등을 확인한 결과 1904년에 지은 2층 벽돌 건물로, 1970년 난방기와 실내 화장실 등이 대거 확충된 후 현재까지도 1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지금은 구도심의 평범한 낡은 건물에 불과하지만 109년 전에는 연해주 한인독립운동세력의 중심지였다. 1910년 8월 23일 일제가 한일 강제병합을 발표하자 당시 연해주 한인 사회의 지도자였던 이상설은 격문 1000장을 인쇄해 러시아와 만주 각지의 동포들에게 배포하고 영어와 프랑스어 등 각국 언어로 성명회 선언서 초안을 작성한다.

 

1907년 고종의 헤이그 특사로 네덜란드 현지에 파견된 이상설은 1894년 조선의 마지막 과거에 급제한 인물이자 7개 외국어를 구사한 신지식인이었다. 성명회 선언서에는 연해주 한인 8624명이 서명했다. 당시 연해주 거주 한인은 5만여 명으로 한 가구가 5, 6명으로 구성된 점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한인 가구가 참여한 거족적인 운동이었다.

 

일제는 즉각 탄압에 나섰다. 주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영사관은 러시아 정부에 항의하고 한인들의 동요를 제압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러시아 경찰은 성명회의 주도자인 이범윤 이상설 홍범도 등의 거주지를 압수수색했다.

 

이번에 확인된 문서는 당시 작성된 러시아 경찰의 비밀 보고서다. 이 문건에는 이상설이 소지한 브라우닝식 연발 권총 1점을 압수했다는 내용과 거주지 주소 등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성명회는 1910년 9월 일제의 방해로 결국 해체됐다. 하지만 연해주 한인들은 성명회 조직을 기반으로 1911년 권업회와 1914년 대한광복군정부로 확대 개편한다.

 

1919년 3·1운동 직후에는 대한국민의회를 만든 후 그해 9월 11일(목) 상하이임시정부, 한성정부와 합쳐져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 축을 이룬다. 연해주 독립운동사 권위자인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100주년을 맞은 임정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10년 성명회 활동이 자리한다”며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연해주 독립운동사 연구에 새로운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상설의 고향인 충북 진천군의 송기섭 군수는 “한국 독립운동사의 기념비적 인물인 이상설 선생에 대해 연구하고 선생을 기억하기 위해 올해 안에 ‘이상설기념관’을 착공할 계획”이라며 “국가보훈처 등과 협의해 새롭게 확인된 이상설 선생의 러시아 거주지를 보존하기 위해 나서겠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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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회]

 

성명회’는 '헤이그 특사(特使)의 정사(正使)'로 유명한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1917)과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한 유인석(柳麟錫)을 비롯해 이범윤(李範允), 김학만(金學萬) 등이 함께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성명회’는 1910년 8월 일본의 강제병합이 전해지자 같은 달 27일(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학교에 모인 한인들은 '성명회'를 결성하고 이상설(李相卨)이 사흘 뒤 성명서 초안을 완성했다.

 

이 선언서는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인 8,624명이 서명해 '3·1독립선언서'에 버금가는 가치를지니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이들은 선언서에 11명씩 7줄로 된 112매의 서명록에 차례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유인석이 성명회장 명의로 친필 사인을 남긴 선언서와 서명록 등으로 이뤄져 있다.

 

‘성명서’는 보재 이상설이 집필한 것으로 미국 국립문서보관청에서 첨부한 표지 서류에 '1910년 10월 미국 국무장관 앞으로 도착한 자료'란 설명이 붙여져 있다.

 

글 : 이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