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근현대 인물

한문학자 조철제 선생-경주

야촌(1) 2016. 9. 25. 23:02

<인향천리 <32>

한문학자 조철제 선생> 경주의'가려진 얼굴'… 漢文學으로 드러내다 조선시대 경주를 체계적·통합적으로 연구하는 단체와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분야를연구하는 후진들이 드물어 아쉬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6년 09월 22일(목) 16:03

 

↑소당(素堂) 조철제(趙喆濟) 선생은 남달리 '조선시대의 경주'에 대해 일찍이 주목

했고, 2012년 교직 은퇴 후 더욱 활발하게 조사와 연구, 저술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에게 직함을 묻자 그냥 '전 경주고 한문선생'으로 불러주길 바란다.

그는 평생 남들이 하지 않고 있는 외길 인생을 걸어왔기에 특별한 직함도 끝내 마다

했다.

 

↑그의 서재 한편에는 그가 저술하고 국역한 '경주문집해제(慶州文集解題)',

'경주선생안(慶州先生案)', '경주읍지(慶州邑誌)' 등이 소담스레 자리하고 있다.

 

↑조철제 선생이 옥산서원에서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한문학자이자 역사학자인 그는 고희를 바라보면서 경주의 인문학자로 자리한다.

 

↑그는 젊은 시절 헌책방을 샅샅이 뒤지며 경주의 고서들을 찾아나섰다.

빛바랜 고문서 한 쪽부터 낡은 종이 한 장까지 소중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문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소당(素堂) 조철제(趙喆濟) 선생(전 경주고 교사·경북도 문화재전문위원)은 고희를 바라보면서 자연스레 경주의 인문학자로 자리한다.

 

천년고도 경주는 금관처럼 화려했던 번성기와 더불어 사상 최악의 파멸과 굴욕의 시기는 물론, 비주류로 침잠됐던 중세의 일들 모두가 역사이다.

 

그러기에 그는 남달리 '조선시대의 경주'에 대해 일찍이 주목했고, 2012년 교직 은퇴 후 더욱 활발하게 조사와 연구, 저술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저술과 활동의 원동력은 경주와 경주인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대한민국 문화와 정신의 발상지이자 수도인 경주와 경주인에 대한 사랑은 곧 보편적 인류애가 된다.

인사(人史)가 모여 역사(歷史)를 이룬다고 한다.

예부터 경주에 터를 잡고 살아온 경주인들은 남다른 유적·유물은 물론 수많은 문헌들을 남겼다. 왕과 귀족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힘을 합쳐 이룩한 소중한 문화재들이다.

 

그러나 그동안 왕조가 몇 차례 바뀌며 수많은 전란과 재난이 스쳐갔고, 수많은 유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주요한 유적지가 고증이 안 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수백 년간 황무지로 방치되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와 문화는 맥이 끊기기 전에, 잊혀지기 전에 보듬고 가꾸어야만 한다.

문명을 세우는 것은 선대의 몫이지만, 그것을 지키고 가꾸는 것은 후대의 몫이다.

 

34세에 늦깎이로 교사가 된 조철제 선생은 재직 때부터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다른 학자들이 어려워하거나 도외시한 '조선시대 경주 찾기'로 청춘을 보냈다.

 

그에게는 헌책방에 숨어 있던 경주의 빛바랜 고문서 한 쪽부터 낡은 종이 한 장까지, 대학자의 문헌부터 작은 선비의 비망기까지 소중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 헌책방을 샅샅이 살펴 온 청춘시절


조철제 선생은 경주 문화인의 한사람으로서 30여년 이상 해오던 활동들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경주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의 동료 위원들은 어쩌면 가족 이상으로 가까운 벗들이 됐다.

 

경주향교의 경서 강론도 주1회 진행하고 있다. 틈틈이 옥산서원과 양동마을을 다니며 전문가 그룹을 위한 인문학 강의도 한다. 2014년 11월 25일, 퇴임 3년 차인 그에게는 매우 뜻 깊은 날이었다. 정든 교정을 명예퇴직한 후 그간 공들여 온 두 권의 책이 드디어 출간돼 그의 손에 전달됐다.

 

그 책들은 깊은 한문 지식과 더불어 경주의 문화유산을 수없이 답사하고 고문헌을 샅샅이 읽지 않고는 시도할 수 없는 집필로서 화제를 모았다. 한 권은 '동경잡기(東京雜記, 도서출판 민속원)'를 국역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극한 노력의 결실인 '또 다른 경주를 만나다(출판사 선)'이다. 그 책들은 힘든 집필과정에서 저자의 집념과 지혜가 곳곳에 배어 있었기에 학계와 경주사회에 감탄과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그는 자신을 유명인의 위치에 올려놓은 이 책들의 출간에 대해 "주요 고서들이 안동의 국학진흥원에 보관돼 있고, 흩어진 고서 모으기도 고서라는 이유로 값이 높았다"며 "지방에서 책 내기가 참 어려웠다"고 말했다.

 

평론가들은 "저자가 경주에 살면서 향토의 역사와 문화의 편린부터 뿌리까지 찾아 연구하고 올바른 사실을 밝혀 놓은 책, 눈에 띄지 않는 고도의 자취들이 저자의 폭넓은 지식과 통찰을 거쳐 온전히 되살아났다"고 평가를 내렸다.

 

2016년 2월 25일 경주시와 경주문화원이 공동으로 펴낸 '경주의 옛지도(慶州古地圖, 편집 ; 꿈과 놀다)' 또한 그의 역작이다. 경주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지도들의 집대성이 요구됐다.

 

그는 전국에서 주요 자료 75본을 모아 한권의 책에 담아냈다. 젊은 시절부터 헌책방을 샅샅이 뒤지며 고서들을 찾아냈던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철제 선생에게 직함을 묻자 그냥 '전 경주고 한문선생'으로 불러주길 바란다.

 

그는 평생 남들이 하지 않고 있는 외길 인생을 걸어왔기에 특별한 직함도 끝내 마다했다.

3년 전부터는 그가 나왔던 동국대의 한문학과도 폐지가 돼 마음을 아프게 한다.

 

◇ 외유내강, '조선시대의 경주' 집대성


그가 전공하고 연구해 온 한자, 수천 년간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써내려왔던 한자는 이제 박물관에 보내야할 형편이다. 요즘은 마치 한자가 우리의 것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한자가 원래 어려운데다 시대적 유행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우리의 것을 스스로 부정하고 잘라내 버리는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우를 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것은 문물과 제도만이 아니었다.

2011년 6월 어느날 그는 故 이근직 박사(경주대 대학원장)의 갑작스런 비보에 하염없는 눈물을 쏟았다.

 

이근직 박사는 자신보다 12살 아래였지만 그는 그를 학문적 벗으로 여겼다.

그는 "학문은 뜨거운 열정과 지속적인 의지가 없으면 성취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그대와 함께 공부하던 많은 문화인과 제자들은 가장 권위 있는 신라학의 스승을 잃었다"고 그를 애도했다.

 

이근직 박사가 떠난지도 5년이 훌쩍 흘렀다. 백발이라도 남았으면 했지만, 그의 이마에는 지혜의 상징인양 상당 부분 머리칼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요즈음 '조선시대의 경주'를 큰 주제로 해 글쓰기에 여념이 없다.

경주읍성 안에 있었던 관아, 향교, 사마소를 비롯해 옥산·서악서원과 양동마을, 교촌 최부자집 등 종횡으로 얽혀있는 유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는 "이 분야를 연구하는 후진들이 드물어 아쉬움이 있다.

경주시에 조선시대의 경주를 체계적·통합적으로 연구하는 단체와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문화사업은 다양한 자료와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므로 사심 없는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오랜 지기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의 최영기 원장은 선생의 교직 명예 퇴임에 부쳐 "어렸을 적 아픔을 딛고 교우유신, 주경야독의 만학정신, 온화한 후학지도로 제자들의 표상이었다"며 "온화하고 인자함은 만천하가 알지만 주장이 분명하고 외유내강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강병찬 기자 jameskang65@kbyn.co.kr

◇ 조철제 선.....


1951년 경주시 외동읍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3월부터 경주고 교사로 재직하다 2012년 2월에 퇴임했다.

 

경주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 소장, 경주시사 편찬위원, 경북도문화재전문위원을 역임했다. 2005년도에 제17회 경주시문화상(학술부문)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또 다른 경주를 만나다(2014)', '경주문집해제(慶州文集解題, 2004)', '돌에 새긴 백성의 마음(朝鮮時代 慶州府 善政碑, 2010)', '경주유교문화유적(慶州儒敎文化遺蹟, 2010)', '경주의 옛지도(慶州古地圖, 2016 편저)' 등이다.

 

국역한 책은 '경주선생안(慶州先生案, 2002)', '경주읍지(慶州邑誌, 2003)', '운암실기(耘庵實紀, 2005)', '춘포유고집(春圃遺稿集, 2009)', '동경잡기(東京雜記, 2014)'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