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재 서문(四友齋序文)
余晩生偏荒而慵懶。爲不可解之痼疾。常以孤陋寡聞自嘲。且自悔也。偶讀鄒書至嘐嘐然之語。雖老矣。若慨然1)有志於斯也。
내가 만년에 편벽되고 황폐한 곳에 살아서 게을러빠진 것이 풀 수 없는 고질이 되었으니 늘 고루하고 견문이 적은 것을 스스로 비웃고 또 스스로 후회하였다. 우연히 <맹자>를 읽다가 '효효연(嘐嘐然)하다'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비록 늙었지만 개연히 마치 여기에 뜻을 두는 듯했다.
夷考古之人之或可希而友者。孔孟顔曾2)之聖賢。天不可階也。莊騷遷固3)之文章。學不能至也。駕又不得焉。則臯夔稷卨4)。尤非吾事業也
옛 사람 중에 혹 희구하여 벗할만한 사람이 있을까 하고 깊이 생각해보았는데 공자(孔子)․맹자(孟子)․안자(顔子)․증자(曾子)와 같은 성현은 하늘과 같아서 오를 수 없고, 장자(莊子)․굴원(屈原)․사마천(司馬遷)․반고(班固)와 같은 문장은 배워도 이를 수 없다. 노력을 해도 될 수 없겠지만 고요(皐陶)․기(夔)․직(稷)․설(卨)과 같이 되는 것은 더욱 내 사업이 아니다.
◇夷考(이고):공평하게 생각해 보다.
◇皐陶 : 중국 고대의 전설상의 인물. 순(舜)임금의 신하로, 구관(九官)의 한 사람이다. 정치가로 법리(法理)에 통달하여
법을 세우고 형벌을 제정하였으며, 옥(獄)을 만들었다고 한다.
◇夔 : 순임금 때의 음악
◇后稷 과 卨 : 요순 임금 때 명 신하
周流上下俱莫之得於是乎。頹然自沮。瞿然自失。仍心語口曰。咄吾誰與之爲友乎。亦將從今人而友之乎。今人之心不與吾心同。其焉能友。古之人旣不敢與之友。今之人亦不能與之友。其將離群而索居者獨行而無徒也哉。
위아래를 두루 살펴보아도 전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다. 이에 맥이 풀려 스스로 주저하고 소스라쳐 스스로 말을 잃었다. 이에 마음먹은 것을 입을 통해 말하기를 “쯧쯧, 나는 누구와 더불어 벗을 한단 말인가?
또한 장차 지금의 사람을 따라 벗을 해야 하는가? 지금 사람의 마음은 나의 마음과 같지 않은데 어찌 벗할 수 있겠는가? 옛사람은 이미 감히 더불어 벗할 수 없고, 지금의 사람 또한 벗할 수 없으니 장차 무리를 떠나 쓸쓸히 살면서 무리 없이 홀로 다녀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旣自奮曰。我非農也工也賈也。而呻其佔畢4)者雖謂之士可也。士尙志志苟不衰。俶儻慷慨猶可幾也。況貧與賤之安若命哉
얼마 있다가 스스로 분을 내어 말하기를 “나는 농사꾼도 아니요, 공장이도 아니요, 장사꾼도 아니다. 글을 읽는 사람이니 비록 선비라 일러도 괜찮다. 선비는 뜻을 숭상하는 자인데 뜻이 진실로 줄어들지 않으면 척당강개(俶儻慷慨)한 사람과 오히려 가까이 할 수 있다. 하물며 가난하고 천함을 운명처럼 편안히 여김에랴.
以此而求之。於六國得魯仲連。於晋得陶淵明。於宋得胡邦衡。於新羅得百結先生。玆四人先獲其志。實可則也。企而羨者奚啻蓬蒿之於松栢也。
이를 가지고 그와 같은 이를 구하여, 여섯 나라(六國:초․연․제․한․위․조)에서는 노중련을 얻었고, 진에서는 도연명을 얻었으며, 송나라에서는 호방형을 얻었고, 신라에서는 백결선생을 얻었다. 이 네 사람은 나보다 먼저 그 뜻을 얻었으니 진실로 본받을만하다. 기대하고 부러워하는 것이 어찌 다만 쑥대가 소나무와 잣나무에 대한 것과 같을 따름이겠는가?
韓退之云。事有曠百世而相感者。人有古今而心或相同。時有前後而事或相似。遭相似之時而感相同之心。古之人卽今之我也。今之我亦古之人也。是果謂莫逆之交。而不但朝暮遇之也。世常說古今人不相及。豈知言也。只就其跡而論之耳。
한유가 이르기를 “일은 백대를 지나서도 서로 느껴지는 것이 있고, 사람에게 고금이 있으나 마음은 서로 같을 수 있으며, 때엔 전후가 있지만 일은 서로 같을 수 있으니, 서로 같은 때를 만나 서로 같은 마음을 느낀다면 옛사람이 곧 지금의 나이고 지금의 내가 또한 옛사람이다.
이것은 과연 막역지교라 이를 것이니 다만 아침저녁으로 만날 뿐이 아니다. 세상에서 늘 옛사람과 지금사람은 서로 미칠 수 없다고 말하나 어찌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이겠는가? 다만 그 발자취에 나아가 논했을 따름이다.”라고 했다.
然則亞聖所謂禹稷顔回 同道者非耶。向使魯仲連不居圍城之中。而不發蹈海之言。胡邦衡不在主和之時。而不有封疏之擧。則人或莫之知焉。
그렇다면 맹자가 이른바 “우(禹)와 직(稷)과 안연(顔淵)은 도가 같다.”라고 말한 것은 그른 것인가? 이전에 노중련으로 하여금 포위된 성안에 있지 않아서 동해에 빠져죽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했거나, 호방형이 화친을 주장하는 때에 있지 않아서 상소를 봉하여 올린 일이 없도록 했다면 사람들이 아마 그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淵明之改字元亮9)。百結之碓樂自娛。人亦等閑視也。惜其不幸而遇屯艱困阨。以其心所蘊之大。終未免一節之歸。而使余徒景仰千載之上。而尙友焉。又抱無窮之恨也。雖然微四人吾誰與歸。遂揭四友扁吾齋而序之。
도연명이 원량으로 자를 고치고, 백결이 대악을 가지고 스스로 즐긴 것을 사람들 역시 등한시했다. 애석한 것은 그들이 불행히도 어렵고 곤궁한 때를 만나 그 마음에 쌓아둔 큰 뜻을 가지고 끝내 한 가지 절개를 지킨 데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부질없이 천 년 전을 우러러 사모하여 그들을 벗으로 삼도록 하고 또 무궁한 한을 품게 만들었다. 비록 그러하나 이 네 사람이 아니면 내가 누구와 함께 돌아갈 것인가?”하고는 마침내 사우의 편액을 나의 집에 걸고 서문을 쓴다.
국역 : 현와 12대손 이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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