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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것들(Mary Hamilton)-Joan Baez(1963)

야촌(1) 2018. 6. 17. 12:24

 

멕시코인 아버지를 둔 중년시절의 조안 바에즈(Joan Baez)

 

[생년] 1941년 1월 9일 ~ 현재

            미국 뉴욕의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서 출생

[활동기간] 보컬(1950년대 ~ 2010년대)

[데뷰년도] 1959년ㅣ학력:보스턴 대학교

 

●조안 바에즈(Joan Baez)

 

1960년대 포크 음악의 중심에 서 있는 Joan Baez(조안 바에즈)는 40여년 음악 생활을 반전과 인간 평등에 바친 저항적 지성인으로서, 또 아름다운 목소리를 대표하는 서정적 보컬의 소유자로서 이러한 포크의 장르적 가치를 모두 대변하고 있다.

 

어느 문화인 보다 공격적인 자세로 거친 세상에 맞서는 동시에 따스한 목소리로 대중의 가슴을 달랜 조안 바에즈는 포크의 전설로서 손색이 없다. 1941년 1월 19일 뉴욕의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서 태어난 Joan Baez(Full-name: Joan Chandos Baez)는 핵물리학자이면서 무기 개발에 끝까지 반대한 의식 있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인권을 최우선에 두는 의식 있는 젊은이로 성장해 나갔다.

 

아버지를 따라 뉴욕에서 이라크의 바그다드, 다시 미국의 캘리포니아를 거쳐 메사추세스(Massachusetts)에 정착하기까지 겪은 다양한 경험은 그녀가 세상을 다른 시각에서 보고 다른 태도로 풀어 나가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아버지로부터 전쟁이라는 것이 인류에게 끼치는 죄악을 배웠으며, 멕시코인 아버지를 둔 덕에 백인과 다른 인종으로서의 부당한 대접을 경험 했다.

 

이라크에서 생활하면서 문화적 이방인의 삶을 경험했으며, 캘리포니아의 비트, 히피 젊은이들을 겪으며 인류애와 평화에 대한 인식을 키우고, 마틴 루터 킹과 간디의 사상을 익혔다. 어린 시절 경험들이 그녀의 사상적 배경을 마련해 주었다면, 마지막으로 정착한 메사추세스는 그녀에게 음악적 길을 열어준 곳이었다.

 

15살에 이미 기타를 잡고 학교 합창단에서 노래한 경력이 있지만 그녀가 포크 음악에 자신의 인생을 맡기게 된 것은 당시 포크의 전설적 인물들이 자리했던 캠브릿지(Cambridge), 보스톤(Boston)이라는 지역적 환경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보스턴 대학에 진학, 연극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포크 음악에 경도된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포크 음악이 연주되는 커피하우스에서 보내고 있었다. 합창단 생활을 하며 보컬을 다졌고, 기타 연주도 할 수 있었던 그녀는 가슴 속에 끓고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크 음악에 싣기로 결심하고 1959년 캠브릿지에 위치한 포크 클럽(Club 47)을 통해 가수로 데뷔한다.

 

그 해 Joan Baez은 클럽에서 만난 빌 우드(Bill Wood), 테드 알레비조스(Ted Alevizos)와 함께 보스턴의 지역 레이블을 통해 자신의 첫 레코딩인 「Folksingers 'Round Harvard Square」를 선보이기도 했다. 역대 포크 싱어 중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대접 받고 있는 만큼 그녀의 매력은 금새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곧 시카고의 큰 클럽으로 옮겨 노래하던 그녀는 2주 만에 밥 깁슨(Bob Gibson)이라는 포크 싱어의 눈에 뛰었고, 그의 권유로 포크계의 등용문 뉴포트(Newport) 포크 페스티벌에 함께 참여, 새로운 포크 스타로 떠올랐다. 이듬해 정식 솔로 뮤지션의 자격으로 다시 한 번 뉴포트 무대에 오른 그녀는 곧 포크 전문 레이블인 뱅가드(Vanguard)와 계약을 체결하고, 12곡의 트래티셔널 커버 곡을 채운 데뷔 앨범 「Joan Baez」를 발표했다.

 

앨범의 성공은 물론, ‘타임’지의 커버를 장식하는 등 내면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포크 씬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지만 조안 바에즈는 상업성을 철저히 거부하고 포크를 대하는 초심을 견지, 이후 1971년까지 뱅가드를 통해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저항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대학가 위주의 공연활동을 꾸준히 펼치면서 앨범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그녀는 1961년 「Joan Baez, Vol. 2」, 1963년 콘서트 앨범인 3, 4집 「 Joan Baez in Concert, Pt. 1」, 「 Joan Baez in Concert, Pt. 2」, 1964년 완전한 통기타 어쿠스틱으로 만들어 진 마지막 앨범 「Joan Baez 5」등을 꾸준히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국내에도 그녀의 이름을 전한 ‘Donna Donna’, ‘Mary Hamilton’, 1960년대 프로테스트 정신의 핵심으로 대접 받는 ‘We Shall Overcome’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발표된 노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