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 나누며] "구조 기다리던 그날의 나처럼....위험 빠진 이들 돕고파"
[세계일보] 김영석입력 2018.02.05. 20:53
응급구조사 꿈꾸는 세월호 생존 학생 장애진 씨
세월이 흘러서였을까. 세월호에서 살아남아 대학생이 된 장애진(20·여·동남보건대2)씨는 생각보다 밝은 표정으로 기자를 맞았다. 학교 측의 동의 아래 어렵사리 만난 과정과는 달리 장씨는 여느 스무살의 여대생처럼 발랄했다. 짙은 밤색 가죽점퍼와 청바지 차림으로 지도 교수와 함께 학과 강의실 겸 실험실에 모습을 드러낸 장씨는 마스크를 쓴 채였다.
↑장애진씨가 세월호 참사 당시 극적으로 탈출한 상황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얼굴에 미용 시술을 해 쓴 것뿐”이라며 긴장감을 해소한 장씨는 “천성이 한곳에 얽매이지 않고 활동적이어서 밝은 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장씨는 세월 호 탈출 과정과 동남보건대 응급구조학과에 입학한 이유에 관해서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직도 저녁이면 배에 갇혔던 친구들이 생각난다.”는 장씨는 “세월 따라 세월호가 잊히는 게 안타깝고 세월 호를 기억하는 기념관 건립은 빨리 진행돼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졸업반인 장 씨가 원하는 직업은 ‘응급 구조 사’다. 세월 호에 갇혔던 자신처럼 구조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빠른 손길을 내밀자는 게 이유다. 장씨는 “단원 고 시절 ‘보육교사’를 꿈꿨지만 세월 호 탈출 후 진로를 바꿨다”며 “응급구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는 기다리지 않아도 바로 구조의 손길을 잡을 수 있도록 하 기 위해 택했다”고 말했다.
세월 호 참사 당시 장 씨는 다인 실 객실인 ‘SP-1’에서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장씨는 “식사 후 친구 7명과 함께 휴대전화를 꺼내 이것저것 검색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배가 좀 기울더라고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도 있었고 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는데, 캐비닛이 움직이며 배가 점점 더 기울고 급기야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사고 당시를 설명했다.
이어 “친구들과 함께 구명조끼를 입고 해경의 구조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칸막이 대용으로 설치된 캐비닛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벽이 바닥으로 내려가고 출입문은 천장으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는 “쏠린 캐비닛이 객실로 들어온 바닷물까지 몰고 오면서 높아진 수위가 구명조끼를 입은 몸을 천장이 돼버린 출입문까지 올려줬고, 다행히 객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장씨는 이 때문에 ‘세월 호 구조’라는 표현을 거부하고 ‘탈출’이 맞는다고 강조했다. 극적으로 몇몇 친구들과 함께 탈출했지만 큰 충격 탓에 그 이후의 구조 사항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진도의 서거차도에 발을 딛고 난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 장 씨 곁을 지켜준 이가 119 응급구조 대원이었다. 따뜻한 담요와 걱정 어린 대원의 말에 장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고교 때 품었던 ‘보육교사’의 꿈을 접는 계기가 됐다.
장씨는 “아직도 해가 지고 나면 중학교 때부터 친자매처럼 지냈던 민정 이와
민지생각이 떠오른다.”며 울먹였다.
그는 당시 단짝 2명을 포함해 반 친구 18명과 담임 선생님을 잃었고, 세월호가 인양된 뒤에야 맞이한 친구도 있었다.
그런 장 씨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계기가 찾아왔다. 촛불집회였다.
장씨는 지난 1월 세월 호 참사 1000일이 되는 날 광화문광장의 집회에 처음 참가했다.
집회 참가에는 세월호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 팀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장씨는 “저희는 구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탈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3차례 더 집회에 참가했고, 그때마다 세월호의 아픔을 몸으로 전했다.
세월 호 참사의 증인으로서 촛불집회의 무대에 선 그의 용기는 세계적 인권재단인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수여하는 ‘에버트 인권상’의 대표 수상자가 되게 했다. 그는 올 연말쯤 응급구조사가 되기 위한 국가시험 응시 준비를 하고 있다.
장씨는 “세월 호 때 제가 받은 도움을 나눠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가장 크다”며 “세월 호와 관련된 아픔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수원=김영석 기자 lovek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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