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성씨별관향

일본의 장주이가(長州李家)

야촌(1) 2017. 12. 31. 01:54

일본의 장주이가(長州李家)

 

일본명(日本名) 리노이에-모또히로(李家元宥)가 1세로 되어있다.

원유(元宥)는 전라병사 이복남 장군(全羅兵使 李福男 將軍)의 아들이다

 

정유재란 당시 이복남(李福男) 장군의 셋째아들인 이경보(李慶甫)는 7세의 나이로 왜군에게 볼 모되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야마구치(山口) 번주(藩主)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 장군에게 인도 되었고, 그의 부장(副將) 하키[추(萩)]번의 기조[寄組 : 기병대로 번주(藩主)의 가노(家老)에 이은 상급실무자] 아증소가(阿曾沼家)의 아증소원신(阿曾沼元信)에게 교육을 받은 후 번주인 모리휘원(毛利輝元)에게 와서 주방국웅모군승마 (周防國熊毛郡勝馬村)에 백석(百石)의 지행(知行 : 작은 지역의 농지를 수여 받아 살 수 있는 권한으로 일종의 작은 벼슬)을 얻게 되었다.

 

또한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의 명으로 삭발하고 데루모토(휘원 輝元)의 이름 한자를 따서 이가원유(李家元宥 : 리노이에 모토이로)이름을 개명하였다. 데루모토(輝元)와 히데아리(수취 秀就)의 이대에 걸쳐 가중(伽衆 : 이야기의 상대역, 자문역 등으로 유추되는 벼슬의 일종) 역으로 지냈다.

 

1674년(정보 4년) 11월 27일 59세로 사망하였다. 그는 3남 4녀를 두었고, 장남 여유(如宥 : 유키히로), 차남 취암(就菴 : 나리시게), 삼남 등화(等和) 등을 두었다. 그들은 각각 일가를 이루어 조선이가(朝鮮李氏)로서 이복남(李福男)의 혈통을 이어 갔다. 성은 이가(李家 : 리노이에)의 성을 허락받았다.

 

이후 모토히로(원유元宥)를 시조로 하는 李家의 적자의 가계는 기조(寄組)로, 다른 형제들은 번의(藩醫)로 작은 벼슬을 얻어 모리가의 가신으로 일본에 정착하였다.

 

1982년 문학박사(文學博士)이며 역사학을 전공한 리노이에 마사후미(李家正文)씨가 자신의 성씨인 이가 씨(李家 氏)라는 성씨에 의문을 품고 80여년을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증하여, 자신의 선조가 정유재란 때 순절한 조선의 이복남(李福男)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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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장주이가 1世 원유(元宥)는 한국의 우계이씨(羽溪李氏) 17세(世) 충장공(忠壯公) 이복남(李福男) 장군3남이

  고 우계이씨(羽溪李氏) 시조(始祖) 휘 양식(陽植)의 18세손이다
  

◇소재지 : 일본 산구현 추시(日本山口縣萩市)

 

 

 

 

↑장주이가(長州李家) 시조(始祖) 이가원유(李家元宥)의 차남 취암(就庵=慶受) 係집안묘역(墓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