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국조공신록

임진왜란의 공신록.

야촌(1) 2008. 7. 20. 20:12
임진왜란 공신록
명칭 책정사유 등위 이름 총수
  호성공신
(扈聖功臣)
선조의 피난 시
호종했던 공로

 
1
(2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
(效忠仗義迪毅協力宣武功臣)
이항복(경주) 정곤수(청주) 86
내시:24
이마:6
의관:2
별좌:2
사알:2
2
(31) 
  충근정량효절협책호성공신
(忠勤貞亮効節協策扈聖功臣)
신성군 이우(선조의 4),
정원군 이부(선조의 5),
이원익(전주), 윤두수(해평),
심우승(청송),이호민(연안),
윤근수(문화), 유성룡(풍산),
김응남(원주), 이산보(한산),
유근(진주), 이충원(전주),
홍진(남양), 이국(광주),
유영경(전주), 이유징(정선),
박동량(반남), 심대(청송),
박숭원(밀양), 정희번(청주),
이광정(연안), 최흥원(삭녕),
심충겸(청송), 윤자신(파평),
한연(청주), 해풍군 이기
(전주), 이경온(전주), 이경검(전주), 신잡(평산), 안황(광주),
구성(능성)
3
(52) 
 충근정량호성공신
(忠勤貞亮扈聖功臣
정탁(청주), 이헌국(전주),
유희림(진주), 이유중(덕수),
임발영(장흥), 기효복(행주),
최응숙(양천), 최빈(해주),
여정방(함양), 이응순(원주),
송강((여산), 고희(제주),
강인(진주), 유조생(전주),
최세준(경주), 홍택(남양).

내시(內侍) : 김기문(삼척),

최언순(경주), 민희건(여주),
김봉(김해), 김양보(삼척), 
안언봉(탐진), 박충경(경주),
임우(울진), 김응창(개성),
정한기(하동), 박춘성(밀양),
김예정(이천), 김수원(김해),
신응서(당진), 신대용(영월),
김새신(경주), 조구수(횡성),
백응범(수원), 최윤영(탐진),
김준영(김해), 정대길(봉산),
김계한(연안), 박몽주(고성),
이사공(경주), 유조생(전주),
양순민(홍주), 경종지(청주).
이연록(교동)
의관(醫官) :
허준(양천), 이공기(한산).
이마(理馬) : 김응수(김해),
오치운(해주), 전용(안동),
이춘국(교동), 오연(석성),
이희령(해주).
  선무공신
(宣武功臣)
전쟁에서 공을세
웠거나 후방지원
에 대한 공로
 
1
(3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
(效忠仗義迪毅協力宣武功臣)
이순신(덕수), 권율(안동),
원균(원주)
18
2
(5
 효충장의협력선무공신
(效忠仗義協力宣武功臣)
신점(평산), 권응수(안동),
김시민(안동), 이정암(경주),
이억기
3
(10) 
 효충장의선무공신
(效忠仗義宣武功臣)
정기원, 권협, 유사원, 고언백, 이광악, 조경, 권준, 이순신(李純信), 기효근, 이운룡
  청난공신
(淸難功臣)
임란 중 발생한
이몽학의 난을
진압한 공로

 
1  분충출기합모적의청난공신
(奮忠出氣合謀迪毅淸難功臣)
홍가신(영월):연창군에 봉해졌다.영월군에 봉해지고, 형조판서를 지냈다 5
2  분충출기합모적의청난 공신
(奮忠出氣合謀迪毅淸難功臣)
박명현(죽산), 최호(경주):계성군에 봉해지고, 충청병사를 역임했다.
3  분충출기청난공신
(奮忠出氣淸難功臣
신경행(영산):벼슬은 병사를 지냈다.임득의(평택):평성군에 봉해졌다.

 

임란공신책봉의 문제점.

 

선조 임금께서 살아계실 때, 임진왜란과 관련해서, 두 종류의 공신이 책봉된적 있었다.

하나는 전장터에서 공을 세운 선무공신과 다른 하나는 선조를 모시고 피난길에 올랐던 호성공신인데, 아시는 바와 같이 선무공신은 오늘날 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유인적, 이순신, 권율, 원균이 나란히 선무공신 1등에 올라있는 반면, 진주대첩의 주역인 진주목사 김시민과 곤양군수 이광악은 선무공신 2등에 올라있어, 김시민과 이광악의 공이 원균만 못하단 말인가?

 

더욱이 곽재우 같은 의병장은 왜 선무공신의 명단에 들어가 있지도 않은가?

한마디로 말해, 선무공신 선정은 공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정도에서 그친다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선무공신은 1, 2, 3등을 모두 합쳐 18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호성공신은 1, 2, 3등을 모두 합치면 86명에 이른다.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면 뭐하나?

국왕의 피난길을 모신 공로만큼 인정받지 못하는데....게다가 호성공신 2등에는 선조의 아들인 신성군과 정원군이 들어가 있어서 더욱 사람의 혈압을 상승시킨다.

 

왜냐하면 공신은 그냥 이름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시 노비와 토지를 비롯해 이런 저런 특혜가 주어졌는데, 선조는 자기 자식들에게 특권을 앞장서서 보장해 주었던 것이다.

 

태조 이성계의 경우, 자기 아들 들을 단, 한 사람도 개국공신의 명단에 올리지 않았다.

태조와 비교해 보면, 선조의 그릇이 너무도 작게 느껴진다.

 

언제부터 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역사적인 인물을 재평가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린것 같다.

억울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당연히 재평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