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반교문(頒敎文) - 정인홍에게 내려진 판결문

야촌(1) 2016. 5. 7. 12:42

반교문(頒敎文) - 정인홍에게 내려진 판결문

 

뱀과 같은 교활한 성품과 도깨비 같은 역적 괴수 정인홍은 처음에는 선비들 사이에서 명망을 도둑질했지만 한낱 권세나 뽐내는 벼슬아치였던 것이다. 중간에는 의병이라는 핑계로 향촌을 힘으로 눌렀으며 모질고 둔한 무리들을 긁어모아 괴이한 학문을 퍼뜨렸다.

 

이언적 · 이황이 우리나라의 큰 현인인데도 유감을 품고 상소를 올려서 배척했다.

정온 · 이대기는 곧은 말로 죄를 입었는데도(선조의 계비이며 영창대군의 어머니인 인목대비의 폐비를 반대한 일로 죄를 받음) 돌을 던지며 조금도 구하지 않았다.

 

이에 선비들이 모두 분한 마음을 품고 제자들 또한 모두 떨어져 나갔다.

역적 괴수 이이첨과 안팎으로 서로 도우면서 추천했고 산림의 학자라고 꾸며서 정승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어두운 임금을 형벌과 옥사를 벌이는 길로 이끌었고 저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아첨을 가르쳤다.

사사로운 어머니(선조의 후궁이요, 광해군의 어머니인 공빈 김씨를 말함)를 종묘에 모시자는 의논을, 예조에서 여러 해 반대하여 말렸는데도 한마디로 찬성하여 임금에게 알리도록 권했다.

 

경연(經筵, 임금 앞에서 경서를 강론하게 하던 일이나 그 자리)에 올라서는 먼저 풍수설을 내세워 궁궐 짓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서울 궁궐이 임진왜란으로 불타자 광해군 때 교하 천도역사를 벌인 일이 있다).

 

계축의 옥사(영창대군의 외조부인 김제남의 옥사) 때에는 상소문을 올려 영창대군을 가리켜 ‘우리 속의 불알 깐 돼지’라고 했다. 인목대비를 폐하자는 논의가 일어날 때에는 먼저 폐하고 뒤에 중국에 알리자는 논의를 주장하면서 인목대비를 지난날의 간악한 여자로 비유하고 원수라고도 말하여 유폐가 그의 말에서 결정되었다.

 

이토록 사람의 도리가 막히게 했으니 사람으로 악독함이 누가 이보다 더하랴?

늙어서도 죽지 않은 것은 천심이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리라.

 

자료문헌 : 《연려실기술》 제23권〈인조조 고사본말〉 계해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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