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선현들의 묘.

추강 남효온선생 묘

야촌(1) 2016. 1. 9. 16:49

■남효온(南孝溫)


[생년] 1454년(단종 2)

[졸년] 1492년(성종 23)
[본관] 의령(宜寧)
[관련사건] 무오사화, 갑자사화

[진사] 성종(成宗) 11년(1480) 경자(庚子) 식년시(式年試) [진사] 2등(二等) 15위(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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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백공(伯恭), 호는 추강(秋江)·행우(杏雨)·최락당(最樂堂)·벽사(碧沙). 영의정 남재(南在)의 5대손으로, 할아버지는 감찰 남준(南俊)이고, 아버지는 생원 남전(南恮)이며, 어머니는 도사 이곡(李谷)의 딸이다.

 

남효온은 세조의 왕위 찬탈로 인한 단종 복위운동 실패 이후 관직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절개를 지킨 생육신 6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 김굉필, 정여창 등과 함께 수학하였다..

 

1478년(성종 9) 관리등용제도의 개선, 내수사의 혁파, 불교의 배척 등 국정 및 궁중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을 복위할 것을 요구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소릉 복위 주장은 세조 즉위와 정난공신의 명분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어서 훈구파의 심한 반발을 샀다. 그 이후 그는 세상에 뜻을 두지 않고 유랑생활로 나머지 삶을 마쳤다.

 

또한 사육신의 절의를 추모하여 <육신전>을 저술했다. 스스로 죽림거사를 자처하고 노장의 이론을 높이 여겼으며, 사회적인 체제에서 벗어나 비판적 발언과 분방한 행동을 했던 이른바 방외인문학의 입장에 섰다.

 

 

▲사진>ⓒ개미실사랑방 l 소재지>경기도 하성면 석평로 515(후평리 산4번지)

 

 사후 한강에 버려 졌던 그의 시신을 거둬 경기도 고양시 대장동에 무덤이 있었으나. 1987년 일산 신도시가

개발되면서현재 이곳으로 옮겨졌다. 하성면 석평로 515에 위치한 재실 수정재(守正齋) 위로 증조부 남간의

묘가 있으며, 그 뒤로 남효온의 묘가 있다.   마을입구에 버스 202번, 201번이 다닌다.

 

▲위의사진 2점>ⓒ삽초,중동문회카페

 

▲묘역 이장 헌성비" 1987년 11월 26일(목)

 

▲추강 묘의 후경 / ⓒ한국의 묘지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