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역대 대통령 자료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야촌(1) 2013. 7. 25. 02:04

도끼만행으로 사망한 미 육군의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

 

   도끼만행으로 사망한 미 육군의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의 대한민국에 대한 희생과 용기

   에 감사드리며,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희생된 미군 보니파스 소령(33살)과 바레트 대위(25세)에게 한국정부는

    보니파스 소령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을 바레트 대위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졌던 미루나무자리는 콘크리트로 마감되어 비석이 세워져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지도

 

이 사건은 일명 북한군 도끼만행 사건이라고 불려진다.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 45분에 일어난 사건이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남쪽 국제연합군(UN군)측 제3초소와 그 아래 5초소의사이가 여름날 무성해진 나뭇잎으로 초소 간 시야를 가리자 미루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던 중 발생하였다.

 

사건이 일어나기 몇 주 전까지도 북한군은 자기 측의 나뭇가지 치기를 거리낌 없이 하였기에 UN군도 가지치기는 문제될 것이 없다 판단하고 1차로 8월 6일경 작업을 하려하였으나 북한군의 제지로 작업을 못하였다.

 

2차로 8월 18일 오전 10시경 한국인KSC소속 노동자5명과 작업을 지휘 보호하던 UN군 미군소속 장교2명 미군병사4명, 한국인장교1명과 한국인 병사4명 등 총 16명이 가지치기작업을 재 시도하던 중 북한군장교와 북한군 약10여명이 다가와 시비를 걸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우호적이다 갑자기 돌변해 왜 나무를 자르느냐!!! 나무 가지치기를 하면 큰일이 있을거라고 협박하기 시작하였다 UN군은 그들을 무시하고 작업을 다시 시작하였고, 북한군은 이젠 그만 잘라!!!.....UN군은 더 잘라!!! 하는 고성이 오가고 작업자들은 이도 저도 못하던 도중 북한군한명이 다리를 건너가 다른 북한군들을 데려왔다.

 

10시 45분경 북한군 중위박철(대좌)은 손목시계를 풀어 주머니에 넣으면서 외쳤다.

야 죽여!!! 이 소리와 함께 약 30여명의 북한군들이 도끼와 곡괭이 각목 등으로 달려들어 폭행을 시작하였고 도망치던 UN군 중 미군소속 장교 두명을 붙잡아 수풀 속에서 도끼로 얼굴과 머리를 수십 차례 찍어 현장에서 사망케 하고 중상9명과 UN군 트럭3대 그리고 초소를 파괴하고 트럭을 타고 도주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현장에서 보니파스대위와 바레트중위는 도끼에 찍혀 사망하였고 얼굴의 형체를 알아 볼수가 없었다. 도끼살인에 걸린 시간은 단 3-4분 사이였다. 판문점 공동 경비구역 안에서 일어난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미국은 분노하였고

 

그다음날인 8월 19일 판문점에서 군사정전협의회가 열려 UN과 미국 측은 북한에 다른 초소에서 찍은 증거사진을 보이며 항의하였으나 북측은 발뺌 하려하였다...

 

오히려 미군이 먼저시비를 걸어와 자위권에서 조치를 취한 것으로 이 사건은 UN사 고위직이 가담해 조작된 사진을 찍는 등 계획적인 사건임으로 유엔사 주동자들을 처벌하라고 적반 하장 식으로 요구를 하였다.

 

그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은 일본에 휴가중이였는데 전투기를 타고 복귀하였다.

이 사건을 접한 박정희대통령은 3사관학교 방문연설에서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라는 유명한말을 남기며 북한에 강경한 대응을 다짐하였고. 미국 측에 즉각적인 보복을 요구하였다.

 

미국은 워싱턴대책반을 결성하였고 스틸웰의 제안으로 문제가 된 미루나무를 절단하기로 계획하였다.

결국 미군과 한국군은 "폴 버니안"(미국의 유명한 벌목꾼이름)이라는 작전명으로 확전을 피하기 위해 미루나무만을 제거하기로 결정하였고 미루나무 절단시 혹시 모를 북한의 또 다른 도발을 막기 위해 함재기65대를 포함한 미드웨이항공모함전단과 F-111전폭기 20대, B-52폭격기3대, F-4전투기 24대, 그리고 주한 연합군전력 등 사상 최대의 전력을 동해에 급파하여 대기토록 하였다....

 

그렇게 사건발생 일주일내에 미국항공모함전단의 해상시위 속에 한미연합군에서는 데프콘3(예비경계태세)에서 데프콘2(공격준비태세)가 발령된 상태였고, 북한군에서는 북풍1호(준전시상태)가 발령된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판문점미루나무 벌목이 시작되었다.

 

벌목작전은 미군공병대와 경비병만 있었고. 미군의 카투사로위장한 한국군공수부대원 64명과 제1사단수색대는 외곽경비를 서고 있었다. 미루나무가 다 절단되고 작전이 종결되는 시간에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다.

 

작전은 당연히 미루나무만 절단하고 끝이 나는 것이였으나 동행했던 한국군공수부대원 64명이 갑자기 중화기(M16, 크레모어 .수류탄 등)로 중무장을 한 채 북한군 초소를 공격파괴하기 시작한 것이였다.

 

동행했던 미군들도 무슨 일인지 몰라 깜짝 놀랐다.

비무장지대 공동경비구역은 화기를 들고 들어 갈수가 없는 곳이였기때문이다.

 

공수부대는 북한군 초소병들을 폭행하면서도 살인은 하지 않았다.

그들이 먼저 총을 쏘기를 기다리며 북의 도발을 유발시키려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도발하지도 도발을 유도해도 걸려들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북한군은 맞고 도망만 치고는 도발하지를 않았다.

 

한국공수부대가 북한군 초소 4개(5번 6번 7번 8번 초소)를 폭파시키고 나서야 이작전은 끝이났고 작전에 걸린시간은 45분정도였다.

 

북한의 김일성은 인민최고사령관 명의로 유엔사사령관에게 유감의 메세지를 전달하였고 미국은 자국내 대통령선거이슈 등으로 인해 사건은 일단락 하게 된다.

 

북한의 김일성의 유감성명은 정전 후 처음 이였으며, 이 사건을 통해 1978년 9월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에서 UN군과 북한군이 분할경비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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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저지른 도끼만행사건은 여기까지다.

고의적이든 우발적이든 북한군의 잔혹함이 들어난 사건 이였고, 남북한이 팽팽히 맞서던 낸전 시절 작은 충돌로도 제2의 6.25가 발발 할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당시 현장에서 노무자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했던 곽희환씨는 1998년 언론인터뷰에서 북한군들이 작업자들이 들고 있던 벌목용 도끼를 빼앗아 미군대위 머리를 내려찍는걸 보았다면서...사람이 어떻게 그런 잔인한 짓을 하느냐 그들은 야수보다 못한 것들이라고 하였다.

 

그런 짓을 하고도 유유히 북으로 가는 모습을 인간이라고 할수 있느냐며...그때의 충격에 제대로 일할수가 없었다고 한다...사건당시 북한군의 장교로서 죽여라고 외치며 살인을 주도했던 북한군 박철 중위는 이사건 몇 년 후 러시아인 관광객이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귀순을 할 때, 일어난 쌍방 총격전 끝에 한국군에 의해 사살 되었다고한다.

 

우리정부는 사망한 미군 보니파스 대위와 바레트 중위에게 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그리고 미국뉴욕과 사우스캐롤라이너에 살고 있는 그들의 미망인과 가족들에게. 대한민국의 조의를 보내고 박정희대통령이 직접 친서를 써보내 가족들을 위로하였다.

 

이 보복작전은 당시 전두환 청와대경호실 작전차장보와, 박희도 제1공수여단의 개입아래 펼쳐졌는데 이 작전의 임무수행을 위하여 박정희대통령은 당시 박희도 제1공수특전여단장에게 50만원의 거사자금을 주었고 제1공수특전여단장은 64명의 대원(보복조)을 차출하여 그들의 유서와 손톱을 받았다.

 

참고로 현재 미군전쟁사 기록에 보관된 내용을 보면 작전에 참가한 공식적인 부대는 다음과 같다.

◇8th United States Army(주한 미 8군)

I Corps (ROKUS) Group(주한 미 1군단)

51st Signal Battalion, I Corps(미51 통신대대)

2nd Infantry diuision(미 2사단)

Task Force Brady(당시 미 2사단장 Morris J. Brady 명칭을 딴 해당 작전 지휘부)

Armored Task Force - 1st Battalion, 31st Infantry; 1st Battalion, 72nd Armor(미 31보병연대 1대대,

미 제72기갑연대 1대대 - 응징대기 병력)

2nd Aviation Battalion(미 2 항공대대)

52nd Aviation Battalion(미 52 항공대대)

1st Battalion, 9th Infantry(미 보병 9연대 1대대 -무장 대기병력)

2nd Battalion, 9th Infantry(미 보병 9연대 2대대 -무장 대기병력)

4th Squadron, 7th Cavalry(제 7기병대 소속 항공강습 4분대-헬기탑승대기)

2nd Battalion, 17th Field Artillery(미 야포 17연대 2대대)

1st Battalion, 38th Field Artillery(미 야포 17연대 1대대)

6th Battalion, 37th Field Artillery(미 야포 37연대 6대대)

Task Force Vierra(당시.sjA 경비단장, 중령 Victor Vierra 의 이름을 딴 미루나무 절단팀)B

Company, 2nd Engineer Battalion(미 공병 2대대 B중대)

D Company, 44th Engineer Battalion(미 공병 44대대 D중대)

1st ROK diuision Reconnaissance Company(한국 보병 1사단 수색중대)

1st Battalion, 32nd Infantry(미 보병 32연대 1대대)

1st ROK Special Forces Brigade(한국 1공수특전여단)

38th ADA Brigade Various US Air Force units (F-4s, F-111s, B-52s)

US Navy 7th Fleet & the aircraft carrier USS Midway(미 7참대 미드웨이 항공모함 전단)

 

위의 사건내용은 그냥 있는 사실이지만 이 사건에는 비사가 있다는 애기다.

한 가지 여기서 특의 할 점은 박정희대통령 사후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이제는 말할수 있다와. 여러 증언 정 보들이 나옴에 따라...비사가 있었음을 생각하게해주는 면이 있다.

 

1) 미루나무만 제거한 것이 아닌 미군과 사전협의도 없이 단독적으로 한국군 공수부대원이 자체 계획적으로 북

     군초소를 폭파 시켰다는 점

 

2) 한국군과 미군은 미루나무제거 때 북의 도발이 발생하면 황해도 사리원까지 진격계획을 갖추었으며 최후엔

     무기도 사용 할 수 있음을 고려 했다는점(우발계획)  위의 두 가지를 연상시켜보면 해답이 나온다.

 

우선 미국은 자국장교가 도끼로 살해당한 사건이며 전 세계언론에 알려진사건이니 덮어 놓을 수 만은 없는 사건 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한미관계 남북관계를 고려 할 때 또한 월남전(베트남전쟁)의 휴유 증 또 사건내용상 전면전을 하기엔 무리가 있는 상태니만큼 무력시위 후 나무만을 잘라내려 했을 것이다.

 

1)박정희대통령은 이번기회(최강 미군전력이 한반도에 있을 때)가 북한공산당을 제거하고 대한민국을 통일시킬

    수 있다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미국과 사전조율도 없이 북의 도발을 유도해내기 위해 공수부대(현재의 특전사)

    가 북한초소를 파괴시키도록 비밀작전을 지시 했다는점.

 

2)공수부대가 자신들의 초소를 파괴시켜도 도발해 오지 않는다면, 박정희대통령 말 그대로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라는 것을 알게끔 해주고 끝을 냈다는 점.

 

위의 둘 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노리던 승부는 어떤것이었을까?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대통령은 집무실에 철모와 군복군화까지 준비시키라고 했다고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준비했었다는 애기이다.

 

나무 한그루때문에 벌어진 한국현대사 역사를 바꿀 뻔한 커다란 사건!!!.

그때 북한이 또다시 도발했다면? 박정희대통령은 김일성이 꼼짝 못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이번 천안함 사건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보면 대응방식에서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

천안함사건 이후 당하고도 상대방 눈치를 보자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천안함사건은 자작극이라는둥.........

 

그럼 북한과 전쟁하자는애기냐?

주가 떨어지면 안된다고 걱정하는 둥....

북한에 돈을 더 줘서 이런 짓 안하게 하자는 둥....

 

만약 천안함46명의 병사들 중 자기자식, 형 동생이 있었다면 그런 말을 감히 입에 담을수 있었을까?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한 가지 옛 명언을 애기해주고 싶다.

 

"전쟁을 두려워하는자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고.....피를 흘리지 않은 땅은 나의 조국이 아니라는것!!"

난 이번 천안함 사태를 보며 박정희대통령의 말이 참 명쾌하다 생각한다.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

 

 

↑유엔군 병사들과 작업자들이 가지치기를 시작하려고 하고 있는 장면.

 

↑트럭을 타고 북한군 병사들 10명이 다가 온다.

 

↑북한군과 애기를 나누고 있는 유엔군

 

↑유엔군이 북한군과 애기를 나누는 중 갑자기 북한군 박철 중위가 소매를 걷고 차고있던 손목시계를

호주머니에 넣으며 신호를 보내자 북한군은 일제히 소매를 걷었고, 박철 중위가. "죽어"라고 소리를

르자 북한군들은 트럭에 실고 온 둔기와 한국인 노무자들이  사용하던 도끼를 이용해 기습적으로

단 폭행을 가했다.

 

보니파스 대위가 북한군의 구타에 가장 먼저 쓰러졌고, 북한군 5명이 쓰러진 그에게 달려들어 도끼

머리를 찍어서 살해했다. 나므지 병사들도 유엔군 병사 1한명을 제외한 전원이 부상을 당했다.

 

↑갑자기 북한군30여명이 유엔군에게 달려들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은 싸움이 나자 피신하고 있고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다.

 

↑북한군이 손에 도끼를 들고 유엔군을 쫒고 있다.

 

 

 

↑멀리서 바라본 미루나무

 

↑도끼만행사건으로 숨진 미군장교의 유해가 본국으로 송환되고 있다.

 

 

 

 

 

 

 

 

 

 

 

 

 

↑사건에 쓰였던 도끼와 버드나무 증거품

 

1976년 북한이 저지른 8·18 도끼만행사건 때 우리군은 어떻게 대응했던가.

제1공수특전부대는 비밀작전을 벌였다.

 

북한군이 미군장교 2명을 도끼로 쳐 죽인데 대한 우리군의 대응작전은 전쟁을 불사한 행동이었다.

실제로 전쟁에 대비해 전방의 군병원 환자들을 모두 후방병원으로 이송했다.

 

6·25전쟁 이후 처음인 ‘데프콘 2’(공격준비태세) 상황에서 특전사 1공수여단 팀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 입구의 미루나무를 완전히 베어버림으로써 이 나무의 가지치기 작업을 시비 걸어 일을 저지른 북을 떨게 했다.

 

도끼만행 때 ‘전쟁 불사’로 北항복

 

이 작전은 당시 전두환 청와대경호실작전차장보 와, 박희도 제1공수여단의 개입아래 펼쳐졌다. 팀장 K씨(당시 소령· 예비역 준장)는 “대원 64명이 손톱과 발톱을 모두 깎아 부대에 보관하고 죽을 줄 알고 갔다”고 회고했다.

 

대원들은 미루나무를 베어내고도 분(憤)이 안 풀려 판문점주변 북한군 초소 몇 곳을 부수고 돌아왔다.

미군은 F4 F111, B52 등 수 십대의 폭격기와 7함대 항공모함 전단(戰團), 해병대 1800명을 미 본토와 일본 기지에서 한반도로 이동하고 함대는 동해의 북한해역으로 들어가 무력시위를 벌였다.

 

북도 ‘북풍 1호(준전시상태)’를 선포한 상태였다. 사건 발생 이틀 만에 박 대통령은 “미친개는 몽둥이가 필요하다”는 대(對)국민 연설을 했다. 그는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 또다시 불법적인 도발을 자행하면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즉각 응징 하겠다”고 강력 경고했다.

 

김일성은 다음날 ‘유감표명’으로 항복했다.

 

천안함을 북한이 침몰시킨 것으로 밝혀질 경우 군사적 조치를 취해야 할까.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1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을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준비 중인 조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국민과 언론이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는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테니 대비하라’고 미리 가르쳐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