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e Thompson(수 톰슨)
우리나라의 팝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곡, 「Sad Movies(Make Me Cry)」의 주인공인 미국의 컨 크리 팝 가수 「수 톰슨(본명: Eva Sue McKee)」은 미주리주의「네바다」 시(市)에서 한 농장의 관리자로 일하고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외동딸로, 1925년 7월 19일 태어났다.
당시 대공황의 시작으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농장에서 해고된 수 톰슨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일자리를 찾아「캘리포니아(California) 주」,「산타클라라 카운티(Santa Clara County)」의 「새너제이(San Jose)」라는 도시로 이주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수 톰슨」은 음악에 타고난 재능이 있어, 7세 때, 이미 무대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10대 시절엔 「새너제이(San Jose)」지역에서 방송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Hometown Hayride」에 출연하여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녀가 20살에 결혼하면서 가수 활동을 잠시 중단하게 되었지만. 남편과의 사이에서 딸 하나를 두었던 ‘수 톰슨’은 결혼 삼년 만에 이혼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남편과의 이혼 후 생계를 위하여 1949년 다시 마이크를 잡기로 결정하고, 「새너제이(San Jose)」지역의 나이트클럽을 무대로 가수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당시 ‘수 톰슨’은 나이트클럽에서 가수로 활동하며 탤런트 선발 대회에 참가하게 되어 뜻밖에도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되었다.
「수 톰슨」은 1950년 「San Francisco」에 있는 「KYA Radio와 KGO」 TV에서 〈두드 마틴쇼(Dude Martin Show)〉로, 쇼 비즈니스에서 처음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다. 〈두드 마틴 쇼〉는 1951년에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TV 스테이션인 KT TV로 옮겨간다.
이 시기에 그녀는 「Martin」과 두 번째 결혼을 하였다. 아울러 캘리포니아주의 TV 프로그램인 「Dude Martin's country television show」에도 정기적으로 출연을 하게 된다.
그리고 「Martin」과 함께 한 싱글 판 《If You Want Some Lovin》으로 「Mercury Records」사와 단독 계약을 하게 되는데, 그 당시 「Mercury」 레코드사와 계약을 했을 때에는 《If You Want Some Lovin》을 포함하여 《Tadpole》《You Belong To Me》와 같은 하위권 차트에 머무른 작품들을 내놓았을 뿐이었다.
1953년에는 「Martin」과 결혼 1년 만에 두 번째 이혼 후, 밴드에 새로 들어온 멤버인 「행크 페니(Hank Penny)」와 세 번째 결혼을 한다. 이후 두 사람은 1955년 「Decca」 레코드사의 상표를 달고 몇 개의 싱글을 발표하지만 그중 어떤 곡도 차트에 진입을 못하게 된다.
「수 톰슨」은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 있는 「팔라 미노 클럽(palomino Club)」에서 「두드(Dude)」와 함께 공연하기도 한다. 「수 톰슨」은 「두드마틴쇼(Dude martinshaw)」에서의 노력으로 1954년에 「에미상(Emmy Awards)」의 후보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나 막상 에미상의 본상에서는 「루실 볼(Lucille Ball)」이 차지하고 말았다.
이어서 1960년 「Grand Ole Opry」의 「Red Foley's portion」에서 노래를 하게 되고 운이 좋게도 컨트리 계열 회사인 「히코리(Hickory)」레코드사로 소속을 옮기게 된다. 여기에서 그녀는 6곡의 대 히트곡들을 발표하게 되었다.
「수 톰슨」이 처음으로 대박을 터뜨린 노래는 작곡가 「존 디 라우더밀크(John D. Loudermilk)」가 써준 눈물 어린 제목이 붙은 《Sad Movies (Always Make Me Cry)》가 1961년 10월 미국의 팝 차트에서 일약 5위를 기록하면서 밀리언셀러(millionseller)가 된다.
연이어 1962년 2월엔 《노르만(Norman)》이 미국의 팝 차트에 다시 3위로 진입하면서 또 다른 골드 앨범으로 밀리언셀러(millionseller)를 기록하게 된다. 이 노래는 전에 없던 대히트곡으로 대단한 노래였다.
1962년에는《노르만(Norman)》에 이어 다시 《Two Of A Kind》(4월 42위)가 히트하여 크게 성공하고, 「부델로(Boudleaux)」와 「펠리스 브라이언트(Felice Bryant)」가 같이 제작한 《해브 어 굿 타임(Have A Good Time)》은 미국 차트에서 또다시 히트(8월 31위)를 거두게 된다.
1963년 2월에는 《윌리 캔(Willie Can)》(78위)를 부르고, 1964년에는 1년간 공백기를 맞은 후, 1965년을 맞아 《라우더밀크(Loudermilk)》가 준 두 곡 《James (Hold The Ladder Steady)》(11월 17위)와 《페이프 타이거(Paper Tiger)》을 불러 크게 히트했다.
「수 톰슨」이 불러 크게 히트한 《Sad Movies Make Me Cry》《Norman》《James, Hold the Ladder Steady》《Paper Tiger》의 네 곡은 모두 「존 로더 밀크(John D. Laudermilk)」가 쓴 것이다.
「수 톰슨」이 불러 크게 히트한 《Sad Movies Make Me Cry》《Norman》《James, Hold the Ladder Steady》《Paper Tiger》의 네 곡은 모두 「존 로더 밀크(John D. Laudermilk)」가 쓴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이렇게 성공적인 음악활동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는 단지 두 곡만이 〈Top 50〉에 진입을 한다. 그녀는 운이 없는 가수였다. 「Loudermilk」가 만든 세곡 모두를 「캐럴 데너(Carol Deene)」이라는 가수가 리바이블(Revival)하여 크게 히트시켰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녀의 인기가 시들해지게 되자 1965년 그녀는 자신의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 《Big Mabel Murphy》《Candy & Roses》와 같은 자신이 직접 만든 몇 개의 곡들과 「Don Gibson」과 함께 듀엣으로 《The Two Of Us Together》《I Think They Call It Love》(1972년 컨츄리 차트 37위) 《Good Old Fashioned Country Love》(1974년 31위), 그리고 《Oh, How Love Changes》(1975년 컨츄리 차트 36위)와 같은 곡들을 발표해 미국 컨츄리 차트 상위권에 다시 진입하는 성공을 거둔다.
그녀의 마지막 컨츄리 성공작은 그녀의 나이 50인 1975년에 발표한 《Big Mabel Murphy》였다. 「수 톰슨」은 1991년에 〈West Coast Western Swing Hall of Fame〉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또한 골드 레코드 컨트리 장르에서도 《Big Mable Murphy》와 같은 대단한 곡도 불렀다.
Sue는 또한 70년대 초반에 「돈 깁슨(Don Gibson)」과 함께 세 장의 LP를 만들기도 한다. ㅅ그녀는 지금 아흔이 넘은 나이로 현재의 남편인 「테드(Tad)」와 함께 네바다(Nevada) 주의 「라스베이거스(Las Vegas)」에서 살고 있다.
아마도 그녀에 대한 이미지는 언제까지나 13살 소녀와 같은 앳된 목소리로 《Sad Movies Make Me Cry)》를 부르면서 우리들 팬의 귓가를 맴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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