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상설이 과거시험 볼 때, 작성한 답안지(科擧試券) 중 하나로 『대학(大學)』의 「지어지선(止於至
善)」에 대한논(論)이다. 이상설은 25세 때인 1894년 조선왕조 최후의 과거인 갑오문과(甲午文科)에 병과(丙
科)로 급제하였다.
그의 과거시권으로는 현재 <지어지선론(‘止於至善’論)>과 <의송군신하일하오색운견표(‘擬宋羣臣賀日下五色
雲見’表)>등 2매가 전한다.
■ 지어지선론(止於至善論)
李相卨
아래와 같이 논한다.
“하늘이 물(物)에 명(命)하는 조건은 반드시 한 번 정해지면 바꾸지 못하는 법칙이 있다. 때문에 사람이 사물(事物)에 응하는 조건에도 역시 한 번 정해지면 바꾸지 못하는 법칙이 있다. 어떤 사물이 있고, 그 법칙이 없는 것은 있지않으며 어떤 사물이 없는데 그 법칙이 있는 것도 있지않다.
지금 귀(耳)의 법칙은 소리가 있으면 듣는 것이 그(최선에) 그치는 것이며, 눈의 법칙은 색깔이 있으면 보는 것이 그(최선에) 그치는 것이며, 입의 법칙은 맛을 알아서 먹는 것이 그(최선에) 그치는 것이다. 마음의 법칙인들 지선(至善: 최선)에 그칠 곳을 유독 알지 못하랴?
지선이라는 것은 사물의 이치에 당연한 법칙이며 조작되지 않은 자연속에 있는 것이라서 처음부터 털끝만큼도 모자람이 없이 원만하며 처음부터 어느 한 곳으로도 기울어짐이 없는 정정당당한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효도하려는 마음이 나오고 임금에게는 충성하려는 마음이 나오는 것이다.
우물에 들어가려는 어린이를 보면 저절로 깜작 놀라고 측은한 마음이 생기며, 당하(堂下)에 지나가는 소1)를 보면 저절로 벌벌 떠는 모습에 차마 할 수 없는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마음의 지선(至善)이며 어떤 곳에서도 마음속에 보존되어 있으며 이 지선이 마음에 존재함은 어떤 때에도 차단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치(理)는 아무리 만물(萬物) 마다 산재(散在)하여 있어도 그 사실은 내 마음이 주관(主管)하며 마음이 아무리 만물의 이치를 주관하여도 그 사실은 마음 밖의 사물이 아닌 것이다.
마음은 지선(至善)에 그치기를 요구하고 지선으로 여겼으면 힘써 옮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본디 우리 인간이 근본적으로 소유한 이치기에 근원적으로는 범인(凡人)과 성인이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러나 타고난 기질(氣質)은 맑고 탁함(淸濁)의 구별이 없을 수 없으며 힘쓴 공부도 얕고 깊음(淺深)은 차이가 없을 수는 없다. 찾는 자는 얻고 찾지 않는 자는 잃으며 수양하는 자는 좋을 것(吉)이며 이치를 어기는 자는 흉할 것(凶)이다.
아! 자식이 되어 불효하고, 신하가 되어서 불충하며, 미친 마음으로 본성을 상실하고 무턱대고 행동하며 몰지각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심지어 예컨대 지선(至善)이 사물(事物)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로지 내면의 살핌(內照)에만 힘을 쏟는 것은 노장철학(老氏)과 불교(釋氏)의 실수이며, 지선이 나의 마음(吾心)에 근본 하였음을 알지 못하고 오로지 공리(功利)에만 힘을 쏟는다면 신불해ㆍ한비자(申不害ㆍ韓非子)의 과오이다.
때문에 명덕(明德)하고자 하면서 지선에 그치지 못하면 스스로 사적(私的)인 지혜를 쓰는 폐단이 생기고 신민(新民) 코 자 하면서, 지선에 그치지 못하면 형명술수(刑名術數)2)의 폐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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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齊나라 宣王이 堂上에 앉아서 堂下에 釁鐘(소를 잡아서 그 피로 새로 주조한 종의 틈에 바르는 것)에 쓰일 소가
지나감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일어나서 羊과 교환하라고 한 故事.(『孟子』)
2) 韓非子가 주장하는 形名學의 術策.
발생하여, 바로 귀에 소리가 들려도 그 듣는 법칙을 상실함과 같으며 맹인(盲目者)이 그 보는 법칙을 상실함과 같으며, 입맛을 잃은 자(爽口者)가 맛의 법칙을 상실함과 같을 것이니,그 불가능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선에 그치는 공부는 사실 후대 유생(後儒)들의 급선무이고 역시 공자문중(孔子門中)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깊은 의미이다.
격물(格物)하고 궁리(窮理)하며 지식을 끝까지 성취하여 사물의 극칙(極則: 남김이 없는 법칙)을 희구하면 내 마음의 지선의 위치를 밝힐 것이며 성의(誠意)하고 정심(正心)하며 그 자신을 수양하여 내 마음의 극칙(極則)을 이용하면 사물의 지선의 지점에 대응할 수 있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은 서로 본말(本末)이 되지만,3) 지선(至善)은 본말이 없고, 치지(致知)와 역행(力行)은 서로 종시(終始)가 되지만,4) 지선은 종시가 없다.
명덕과 신민을 떠나서 지선의 명목이 없으면 무정위(無定位: 일정한 위치가 없음)라고 하여도 될 것이며 차지와 역행을 합하여 지선의 공부가 있으면 통괄(統括: 한데로 모아서 뭉침, 총괄)이라고 하여도될 것이다. 분리하여 말하면 만물에는 각각 만 가지의 지선이 있고, 통합하여 말하면 만 가지의 일에서 단지 한 개의 지선을 찾는 것이다.
원초(元初)에 나아가서 논하면 지선의 법칙은 근본적으로 간단(間斷)이 없고 공부하는 것으로 논하면, 지선의 그침은 바로 극처(極處)인것이다.
아! 이것은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을 관통하는 증전(曾傳: 大學의 別稱)의 첫째 의미일 것이다.
나머지 미진한 의미는 대역(大易:주역)의 시사전(時思傳) 속에서 찾으면 거의 될 것이다.
아! 삼가 논(論)하노라.(飜譯: 盧相福/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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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덕은 내가 자신에게 있는 덕을 밝히는 것이고, 신민은 내가 수양한 덕으로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기에 명덕
이 본(本)이고민이 말(末)이다.
4) 치지는 지식을 끝까지 이루는 것이고, 역행은 알고 있는 지식을 힘써 행하는 것이기에 치지(致知)는 시(始)이고
역행(力行)은 종(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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