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역사이야기

병학지남(兵學指南)

야촌(1) 2014. 11. 12. 19:14

병학지남(兵學指南) 간행과 그 내용

 

1592년 일본침략군이 처음에 진격하여 왔을 때 조선군이 일시적으로 후퇴한 것은 그 원인이 봉건지배 계급의 해이성에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시 조선군대 편제의 불비와 그 무기의 졸렬에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1592년 이후 조총 기타 무기제조와 아울러 군대편제 및 기예단련에 많은 주의를 하게 되었다.

이때 영의정으로 있던 유성룡(柳成龍)은 군대강화에 관심을 가져 당시 조선에 내원한 명(明)장 이여송(李如松) 휘하에 있던 낙상지(駱尙志)의 권고를 받고 금군 70여 명을 선발하여 명군에게 보내어 무예를 배우게 하였다.

 

이보다 먼저 조선의 왕 선조(宣祖)는 명장 이여송을 평양에서 만났을 때 자기군대가 왜적에게 위력을 발휘한 것은 척계광(戚繼光)의 저서『기효신서(紀効新書)』에 있는 '어왜지법(禦倭之法)'을 적용한 까닭이란 말을 듣고 명군에게서 이『기효신서』를 얻어내어 이것을 조선에서 연구케 하였다.

 

유성룡은 종사관 이시발(李時發) 유생 한교(韓嘺) 등과 함께 이 병서를 연구검토하고 여기에 제시된 속오법(束伍法)을 1593년에 우리조선에 적용 실시케 하였다.

 

이 척계광의 『기효신서』는 종래의 병서가 원리원칙 문제를 취급한 데 비하여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즉 분수(分數), 조련(操練), 진법(陣法), 병기(兵器) 등 군대의 편제훈련 문제를 실전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취급한 데 그 특징과 의의가 있었다.

 

척계광은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군인 가정의 출생으로서 절강(浙江) 도사의 참장(參將)으로 남방 방비에 종사하였다.당시 이 지방은 일본 해적이 출몰하여 명나라는 많은 곤란을 겪고 있던 때이다. 

 

그는 1556년(嘉靖 35년) 1560년(嘉靖 39년)에 새로 군사를 훈련하고 새 진법을 사용하며 전함과 화기 등을 개조하여 왜적과의 전투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척계광은 이때의 경험을 기초로 하여 특히 그 중에서 가장 성과가 있었던 것을 선택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기효신서(紀効新書)』18권이다. 

 

각 권이 한 편으로 되어 있는데 그 편명은 다음과 같다.

속오(束伍), 조령(操令), 진명(陣名), 유병(諭兵), 법금(法禁), 비교(比較), 행영(行營), 조련(操練), 출정(出征), 장병(長兵), 패선(牌筅), 단병(短兵), 사법(射法), 권경(拳經), 제기(諸器), 정기(▩旗), 수초(守哨), 수병(水兵). 척계광은 그 후 등용되어 도독동지(都督同知)가 되어 계주(薊州), 창평(昌平), 보정(保定)의 북방 삼진에서 연병(演兵)을 총리하게 되었다. 이때 연병을 한 경험을 기초로 하여 저술한 것이 『연병실기(演兵實記)』 9권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오법(練伍法), 연담기(練膽氣), 연이목(練耳目), 연수족(練手足), 연영진(練營陣)(1권에서 4권), 연장의 9편, 잡집 6권, 제장통론(諸將通論) 상하권, 장관도임(將官到任), 등단구수(登壇口授), 군기제해(軍器制解), 차보기해(車步騎解)를 부록으로 붙이었다.

 

조선후기의 병학은 전기의 것을 계승하면서 군대편제의 변동에 따라 척계광의 『기효신서』와 『연병실기』의 연구에 주의를 돌렸다. 조선후기의 병서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병학지남(兵學指南)』이다. 이 책은 척계광의『기효신서』를 요령 있게 참고하여 조선실정과 조건에 적합하도록 만들어 병학 학습의 교본(敎本)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병학지남』에서 볼 수 있는 정식(程式)들이 조선 말기의 외래 자본주의 침략자들을 대항할 때까지 우리 조선군대의 전투와 행군의 기본이었다. 이『병학지남』의 편집 발간 시기를 따져 본다면 정조(즉위 1777) 이전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정조 초기에 편집한『병학통(兵學通)』이 『병학지남』에 의거한 점을 발견할 수 있으며 또 정조 11년에『병학지남』을 발간하는 데 있어 이 책 발행의 책임자인 이유경(李儒敬)은 국왕의 명령을 받아 『병학지남』 범례(凡例)에서 훈국구본(訓局舊本)이 이미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 『병학지남』이 훈국 본 외에 남한 본(南漢本), 해서 본(海西本)이 있고 언해(諺解)까지 1부 있었다는 것 등을 보아 최초의 책이 정조 11년의 발간 본 까지 벌써 상당한 시일이 경과하였다고 할 수 있어서 정조 시대에 편찬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정조가 병학을 열심히 연구하고 이 책에 많은 주의를 돌린 것은『병학지남』서문을 보아 잘 알 수 있다. 그는 장신(將臣)들에게 명령하여 종래의『병학지남』의 결함을 시정하고 이에 첨삭하여 정조 11년(1787년) 겨울에 발간한 것이 정미신간(丁未新刊) 장영장판본(壯營藏板本)이다. 이것이 평북 신의주 박물관 도서실에 남아있어 이번에 번역하게 되었다. 

 

이 서책은 이 원본 이외에 지방 병영에서도 발간되었다. 지금 세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평양 병영에서 발간한 것이 대부분이다. 

 

다음 『병학지남』 전5권의 내용을 보면 제1권은 기고정법(旗鼓定法), 기고총결(旗鼓總訣)에 대한 것이다.「기고정법」에는 호포(號砲), 호적(號笛), 나팔(喇叭), 소라(哱囉), 바라[纙], 북[鼓], 솔발(摔鈸), 징(鉦), 취타(吹打), 기화(起火), 종(鐘), 각종 기(旗), 등화(燈火) 등 신호 규정과 그 사용에 대한 것이 서술되어 있고「기고총결」에는 이상의 각종 신호를 종합적으로 사용하여 이에 대한 실지 행동을 취급하고 있다.

 

제2권에는「영진정구(營陣正彀)」가 취급되어 있다. 여기서는 대열의 편성과 호령에 의한 대열의 행동, 전투에 있어 진(陣)의 편성과 조직 및 각 대열의 행동 등을 주야로 나누어 취급하였다.

 

제3권의「영진총도(營陣總圖)」상(上)에는 총 52도가 그려져 있는데 대오법(隊伍法) 7, 기고법(旗鼓法) 2, 발방법(發放法) 5, 당보법(塘報法) 2, 행영법(行營法) 8, 전신법(轉身法) 3, 열진법(列陣法) 5, 작전법(作戰法) 9, 복병법(伏兵法) 3, 입표법(立表法) 3, 방영법(方營法) 5의 종별로 구분되어 있다. 영진에 대한 배열과 배치가 도시(圖示)되어 있다.

제4권은 「영진총도(營陣總圖)」 하(下)이다. 총 33도로 되어 있다.

 

일대겸수군화기법(一隊兼授軍火器法) 2

삼부위일영법(三部爲一營法) 8

일대이지사사방영법(一隊以至四司方營法) 7

마병수기법(馬兵授器法) 2

차병정편상법(車兵正偏廂法) 3

수초법(守哨法) 1

주사법(舟師法) 4

구군팔진육화재감통변법(九軍八陣六花裁減通變法) 4

제5권은 장조정식(場操程式), 야조정식(夜操程式), 성조정식(城操程式), 수조정식(水操程式) 등이다.

 

「장조정식」은 34항으로 나누어 조련의 준비, 대열 행진, 진형의 종류 조직 전투에서의 활동, 해산의 절차 등이 취급되고 「야조정식」은 9항으로 나누어 야간 신호 사용, 방영의 시설, 발방 야순, 전투 동작, 해산 절차 등을 취급하고 「분련정식」은 8항으로 나누어 1대가 양의진, 삼재진, 원앙진, 각 대의 순차의 조련 및 1초, 조총초 1사의 조련 등의 절차와 실제 동작을 취급하고 「성조정식」은 12항으로 나누어 한 영을 중심으로 준비 물품 파수 감시에 관한 것 또 1면 혹은 4면의 조련, 밤 조련과 해산 절차를 취급하고 「수조정식」은 25항으로 나누어 준비 및 개시 절차 발방 전투 때 동작 조련 완료 후 각종 사항에 대하여 취급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군대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항과 전투에서 상용하는 내용을 주로 취급하였다. 

종래의 병서가 원리 문제를 주로 취급한 데 비하여 여기에서는 실지 적용하고 있는 구체적 문제를 주로 서술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조선 군대의 조직과 그들이 전투 때 모든 동작과 활동 또는 그들이 사용한 무기 기타 전술 등을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 『병학지남』은 18세기 이후 19세기 거의 말엽까지의 조선 봉건사회의 군사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였음을 알 수 있다.

 

끝으로 언급하여 둘 것은 이 책의 번역 즉 언해(諺解)가 1권 2권까지 되어 있는데 이것은 조선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병학지남(兵學指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