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최두기(崔杜機)

야촌(1) 2014. 10. 12. 14:14

靑莊館全書>제33권> 淸脾錄 二/ 이덕무(李德懋) 著

 

●최두기(崔杜機)

 

두기 최성대(崔成大)의 자는 사집(士集)이요, 벼슬은 승지(承旨)에 이르렀는데, 詩를 짓는 데 있어 구성(構成)이 매우 선명(鮮明)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루한 습관을 잘 벗어났다.

 

그는 특히 고시(古詩)와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뛰어났는데, 청천(靑泉) 신유한 주백(申維翰周伯)은 두기의 산유화시(山有花詩)를 보고, 너무 기뻐 일어나 춤을 추고 이어 두기를 찾아가 만나보고는 제금(題襟)의 친구를 맺고, 서로가 막역(莫逆)의 사이로 여겨지기(知己)로 결탁하였다.

 

청천이 말하기를,

“사집(士集)의 시야말로, 망천[輞川-왕유(王維)를 가리킴]의 한적(閒寂)한 것과 양양[襄陽-맹호연(孟浩然)을 가리킴]의 담박한 것과 저위[儲韋-저광희(儲光羲)와 위응물(韋應物)을 가리킴]의 한아(閒雅)하고 유완(柔婉)한 것과 유백(劉白 유우석(劉禹錫)과 백거이(白居易)를 가리킴)의 풍부하고 섬세한 것과 원진(元稹)의 미려한 것과 두목(杜牧)의 호방(豪放)한 것 등 여러 가지 시체를 다양하게 갖추었는가 하면, 이남(二南)을 기초로 삼고 구소(九騷)로 도야하여, 육대(六代)의 것보다 미끈하고 아름다우며 삼당(三唐)의 것보다 우월해서, 마치 물 위로 살며시 솟아나온 연꽃 봉오리나 깊은 골짜기에서 은은히 향기를 풍기는 천궁과 같아, 천하에 일품이라 하겠다.”하였는데, 청천의 평은 역시 과장(誇張)에 가깝다.

 

두기의 詩는 모두 9백 70여 수(首)이다. 그가 일찍이 목멱산(木覓山: 지금의 서울 남산을 말함) 동록(東麓)에서 놀다가 앞에 내려다보이는 밭가의 인가(人家)가 역력히 자기 전신(前身 전세에 태어났던 몸)이 유희(遊嬉)하던 곳이라 여기고는 탄식하며 바라보다가 산장가(酸漿歌)를 지었는데, 노래가 매우 처량하다. 그 노래에,

 

푸르고 푸른 산장이 / 靑靑酸漿

저 들판에 났구나 / 生彼中野

내 가서 보려 하니 / 我行見之

두 줄기 눈물 앞을 가리네 / 涕流雙下

푸르고 푸른 산장이 / 靑靑酸漿

저 밭 가운데 있구나 / 爰在中田

내 좋은 집에 살건마는 / 我生華屋

눈물만 줄줄 흐르누나 / 泣涕漣漣

눈물만 흘려서 무엇하랴 / 漣漣維何

저걸 캐서 돌아가야지 / 採彼將歸

내 전생을 생각하니 / 我懷前世

너무나도 슬프구나 / 亦孔之悲

부산한 어린아이들 / 祈祈衆兒

저 물가에서 노누나 / 在彼河畔

저 마을 어떤 사람 / 里門有人

노래하고 탄식도 했다오 / 旣歌且歎

그 자취 따르려 해도 / 履其迹兮

아득하여 보이지 않네 / 窅窅不見

새 새끼가 나무라고 / 黃口謠啄

맹호가 의심하누나 / 猛虎狐疑

푸르고 푸른 산장이 / 靑靑酸漿

내 마음 슬프게 하네 / 使我心悲

하였고, 또 그의 ‘생조(生朝)’ 시에,

 

내 신년(辛年) 정월에 태어나서 / 我降于辛月建寅

즐거운 일 별로 없고 슬픈 일만 잦았다오 / 歡華苦少歎嗟頻

어릴 적에 산장(酸漿)을 캐어 석양에 비춰도 보았는데 / 幼齡輟弄視斜照

지금 캐어 오는 저 사람 혹 나의 후신(後身)이 아닌지 / 中野採歸疑此身

영고가 모두 덧없음을 알았으니 / 已悟榮枯皆夢幻

쇠잔한 몸이나마 세상 한번 바꿔 살아볼 만도 / 可將衰朽更風塵

입산하여 도 닦고 은자가 되려는데 / 入山訪道期幽子

어느 곳이 선도 먹는 옛 신선 마을인지 / 何處仙挑古洞春

하였다. 어떤이는 말하기를,

 

“신유한과 최성대는 전생의 부부로, 신청천은 남편이었고 최두기는 부인이었다.”하였다.

그의 ‘고잡곡(古雜曲)’ 및 ‘송경사(松京詞)’는 특히 일세에 찬송이 자자했던 것인데, 그 ‘잡곡’에,

 

규방(閨房)에 초생달 스며들 제 / 初月上中閨

소녀들 서로 손목 잡고 나서누나 / 女兒連袂出

고개 들고 별을 세노라니 / 擧頭數天星

별 일곱에 나도 일곱이라네 / 星七儂亦七

하였고, ‘송경사’에,

 

개성에 꽃같이 아리따운 젊은 여인 / 開城少婦貌如花

고운 단장에 얼굴 살며시 가리네 / 高髻紅粧半面遮

석양 아래 투초하며 텅 빈 궁궐 지나갈 제 / 向晩宮墟鬪草去

풀잎에 있던 나비 은비녀에 올라앉네 / 葉間蝴蝶上銀釵

고려 임금 옛 자취는 황량한 궁궐뿐인데 / 麗王舊迹秪荒臺

우거진 가시덤불 속에 들꽃이 피었구나 / 荊棘叢中野卉開

어느 곳이 원비가 단장하던 집인고 / 何處元妃洗粧閣

마치 춘경 같은 달이 동쪽에서 떠오르네 / 月如春鏡苑東來

하였고, 그의 ‘고염곡(古艶曲)’에,

 

어제 치마를 적시며 걸어가다가 / 昨日濺裙去

어둠 속에 가는 길 잠깐 지체했네 / 冒闇歸暫遲

당에 올라 등불 밝히니 / 上堂執華燈

님이 문득 의심을 내누나 / 郞遽已生疑

하였고, ‘오당추감(梧塘秋感)’ 시에,

 

한가히 지난 일 생각하며 촌변에 섰다가 / 閒思往事村邊立

외로이 석양 빛 맞으며 고허로 돌아가네 / 獨映斜光墟裏歸

쓸쓸한 가을 꽃 무어 그리 좋다고 / 寥落秋花有何好

풀벌레 작은 나비 함께 나누나 / 小虫細蜨共翻飛

하였고, ‘감상(感傷)’ 시에,

 

형이랑 숙부가 다 세상 떠났어라 / 從兄阿叔俱黃壤

담소는 들리는 듯하나 자취는 점점 아득하구려 / 笑語如聞跡漸漫

한없는 경치에 한없는 술 있건만 / 無限風光無限酒

내 혼자 남았으니 그 누구랑 즐길거나 / 獨留吾在共誰歡

하여, 모두 운치가 있다.

오율시(五律詩) 중 ‘처음 신주백을 만나서[初逢申周伯]’라는 시에,

 

영남에 훌륭한 선비 많기도 하지만 / 嶺南多好士

그대처럼 높은 명성 드물데그려 / 名盛似君稀

유랑하는 모습은 왕찬과 똑같고 / 漂泊同王粲

문장이야말로 육기가 무색하리 / 文章笑陸機

술잔 머금으니 봄풀이 나오고 / 含杯春草出

칼을 치니 조각 구름 나누나 / 彈劍片雲飛

내일 이 관문 나갈 적엔 / 明日關頭路

티끌이 옷에 묻을까 걱정일세 / 深悲塵滿衣

하였고, ‘부서(扶胥) 상고하건대 부서는 곧 부여(扶餘)이다.

사람들은 노래를 잘하는데, 곡조가 매우 애절하다.

[扶胥善謳調極哀怨]’ 라는 칠률시(七律詩)는 다음과 같다.

 

팥배나무 잎새 피고 들꽃 만발한데 / 棠梨齊葉野開花

수놓은 옷자락에 남녀 서로 노래를 주고받네 / 繡衩簪裙相應歌

먼 길에 소원의 슬픔 견디지 못하거니 / 長道不堪悲小苑

색시는 무슨 일로 공파만 원망하느뇨 / 女娘何事怨空波

남쪽 사람은 노래 불러 소리 우렁차건만 / 南人慣唱傳聲遠

북쪽 나그넨 처음 들으니 눈물 가누기 어렵구려 / 北客初聞掩淚多

부소산에 떠 있는 옛날 그 달빛만이 / 惟有扶蘇舊時月

봄이 오니 아직도 이 산하를 비춰주누나 / 春來猶自照山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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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제금(題襟)의 친구 : 제금은 당(唐) 나라 때 온정균(溫庭筠)ㆍ단성식(段成式)ㆍ여지고(余知古) 등이 서로 창화(唱和)한 시(詩)를 수집하여 만든 《한상제금집(漢上題襟集)》이라는 서명(書名)의 준말로, 절친한 친구 사이를 뜻하는 말이다.

 

[주02]이남(二南) : 《시경(詩經)》 국풍(國風)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가리키는데, 왕화(王化)의 기초가 되는 가장 아름다운 시풍(詩風)이라 하여 일컫는 말이다.

 

[주03]구소(九騷) : 《초사(楚辭)》 중에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경(離騷經)의 구장편(九章篇)을 가리키는데, 굴원이 조정으로부터 내침을 받은 후 나라와 임금을 생각하여 지은 것으로, 석송(惜誦)ㆍ섭강(涉江)ㆍ애영(哀郢)ㆍ추사(抽思)ㆍ회사(懷沙)ㆍ사미인(思美人)ㆍ석왕일(惜往日)ㆍ귤송(橘頌)ㆍ비회풍(悲回風) 등 9편으로 되어 있다.

 

[주04]육대(六代) : 진(晉)ㆍ송(宋)ㆍ후위(後魏)ㆍ북제(北齊)ㆍ후주(後周)ㆍ수(隋)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육조(六朝)와 같은 오(吳)ㆍ동진(東晉)ㆍ송(宋)ㆍ제(齊)ㆍ양(梁)ㆍ진(陳)을 가리킨다. 이때에 시인ㆍ문장가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주05]삼당(三唐) : 당(唐) 나라의 시(詩)를 초당(初唐)ㆍ중당(中唐)ㆍ만당(晩唐)의 3기(期)로 나누어 말한 데서 연유된 말이다.

[06]산장가(酸蔣歌) : 산장은 꽈리풀을 말한 것 같다.

 

[07]새새끼가 …… 의심하누나 : 《樂府詩集》 猛虎行에 “배고파도 맹호에게 붙여 먹지 않고 해 저물어도 참새에게 붙여 깃들이지 않는다.” 했는데, 자신의 청렴하지 못함을 이들도 싫어한다는 겸사로 인용한 듯하다.

 

[주08]투초(鬪草) : 풀싸움. 놀이의 한 가지로, 여러 가지 풀을 뜯어온 사람이 이긴다 한다.

 

[주09]춘경(春鏡) : 봄단장하는 거울, 즉 춘장경(春妝鏡)의 준말이다. 맹호연(孟浩然)의 춘정(春情) 시에 “청루의 주렴에 아침 햇살 비치니, 분 연지 봄단장에 거울을 재촉하네.[靑樓曉日珠簾映 紅粉春妝寶鏡催]” 하였다.

 

[주10]유랑하는 …… 똑같고 : 왕찬(王粲)은 삼국(三國) 시대 위(魏)의 고평(高平) 사람으로 박람다식(博覽多識)하였고, 건안칠자(建安七子: 한말(漢末) 건안(建安) 연간에 문학으로 이름을 떨쳤던 공융(孔融)ㆍ진림(陳琳)ㆍ왕찬(王粲)ㆍ서간(徐幹)ㆍ완우(阮瑀)ㆍ응탕(應瑒)ㆍ유정(劉楨))의 한 사람이기도 했는데, 일찍이 난리를 피하여 유표(劉表)에게 의탁해 있는 등 유랑생활을 하였다.

 

[주11]문장이야말로 …… 무색하리 : 문장(文章)에 뛰어남을 칭찬하는 말이다. 육기는 진(晉) 나라 오군(吳郡) 사람으로 문장이 당세(當世)에 으뜸이었다. 《晉書 卷54 陸機傳》

 

[주12]먼 길에 …… 원망하느뇨 : 백제(百濟) 때 계백(階伯)의 비장함과 낙화암(落花巖)의 처절한 고사를 이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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