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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용(全提用) 선장과 베트남 난민 이야기”

야촌(1) 2014. 8. 26. 21:51

“전제용(65·全提用) 선장과 베트남 난민 이야기

 

전제용 선장이 이끄는 참치 원양어선 "광영 87호"는 1년 동안의 조업을 마치고 부산항을 돌아오고 있었다.

1985년 11월 14일 오후 5시경 남중국해를 지날 무렵 전제용 선장은 SOS를 외치는 조그만 난파선을 발했다.

그들은 "베트남 보트피플" 이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국제미아, 보트피플을 만난 전 선장은 "관여치 마라"는 회사의 지침과 양심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 사이!

 

멀어져가는 전 선장의 배를 보고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보트피플!!

바로 그때, 전제용 선장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뱃머리를 돌렸다.

 

파도에 금방이라도 부서질 덧 한 작은 보트 안에서 사흘을 굶은 채로 엉겨 붙어 있었던 96명의 베트남 난민들!!

 

"모든 책임은 선장인 내가 진다"는 각오로 96명의 구조 소식을 회사에 알리고 전 선장은 "부산항까지 열흘"을 다 같이 버티기로 한다.

 

보트피플의 대표, 피터 누엔이 평생 잊지 못하는 전재용 선장과 보낸 열흘!

우선 전재용 선장은 여성과 아이들에게 선원들의 침실을 내주고, 노인과 환자는 선장실로 모셔와 치료하고 보살핀 한국선원들!

 

선원 25명의 열흘 식량과 생수로 96명의 베트남인과 나눠 먹고선 식량이 떨어지자 선장은 "우리가 잡은 침치가 많으니 안심하세요. 여러분은 안전합니다."라고 보트피플을 필사적으로 안심시켰다. 그리고 피터 누엔이 가족생각에 슬퍼할 때마다 전 선장은 극진히 그를 위로했다. 드디어 부산항에 도착한 이들은 난민소에서 1년 반을 지낸다.

 

그 후 전 선장의 기억만 간직한 채 미국으로 건너가 간호사가 된 피터 누엔!

그는 미국으로 건너온 가족과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무렵, 평생의 은인 전제용 선장을 찾기 시작한다.

 

무려 16년 동안 수소문한 끝에 연락이 닿게 된 전제용 선장!,

전 선장의 첫 답장을 받은 감격의 순간, 그러나 편지에는 뜻밖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부산항에 도착한 즉시 전 선장은 회사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었고, 난민구출 이유로 당국에 불려가 조사까지 받았던 것이었다.

 

그 일로 여러 선박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으나 단한 군데도 취업연락을 받지 못했던 그는 그 후 고향인 통영으로 내려와 멍게 양식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제용 선장 편지의 마지막 내용은 더욱 뜻밖이었다.

 

"보트피플을 구조할 때 저의 미래와 경력까지 희생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96명의 생명을 살린 저의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2004년 8월 8일 LA 공항!

그들은 19년 만에 이루어진 극적인 재회가 이루어졌다.

 

베트남 난민들이 직접 UN 난센상에 전 선장을 추천하자 전 선장은 내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들을 구했었을 것이라며 소감을 밝혔지만, 보트피플들은 그날 25척의 배로부터 외면당했고 26번째인 전 선장의 "광명 87호"에 의해 구조를 받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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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장의 선택은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 하겠지만 실상 실행에 옮기기란 참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