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동종계서(慶州李氏同宗禊序).
白沙 李恒福(1556(명종 11) - 1618(광해군 10).
요(堯) 임금 때에, 옥사(獄事) 다스리는 관리를 이관(理官)이라 하였는데, 직무를 잘 수행한 이가 있어 관(官)으로 성(姓)을 삼아 주었던바, 소리가 서로 가까움을 인하여 마침내 이씨(李氏)가 되었다고도 하고, 또 주(周) 나라 말기에 수장사(守臧史) 노담(老聃)이 모태(母胎)에서 70년을 있다가 막 태어나면서 손가락으로 오얏나무[李]를 가리켰으므로 또한 성을 이(李)라고 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너무 요원한 일이라, 아득하여 이 두 가지 설(說)을 자세히 구명하기가 어렵다.
이로부터 이후로 뿌리가 배양되고 가지가 창달하여 가지와 잎이 멀리 퍼졌다. 그리하여 우리 동방(東方)에 이르러서는 실로 우리 조(祖)가 사는 곳에 촌락(村落)을 이루어 뭇 사람들이 추대하여 장(長)으로 삼았으니, 세상에서 이 분을 사량대인(沙梁大人-及梁大人의 잘못표기임)이라고 하였다.
이 분이 한[漢 나라 지절(地節 : 한 선제(漢宣帝) 때의 연호) 원년에 육부(六部)의 인민들을 규합하여 거느리고 신라 시조(新羅始祖)를 도와서 추대하여 왕업의 기반을 세움으로써, 위아래로 1700여 년 동안에 걸쳐 장덕 대인(長德大人)이 보첩(譜牒)에 끊이지 않았으니,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의 기록을 그 누가 우리와 견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영구히 썩지 않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세록(世祿)이 일컬어지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세가(世家)와 편호(編戶)가 이렇듯 서로 경중(輕重)의 차이가 없단 말인가. 그러나 맹자가 이르기를, “이른바 고국(故國)이란 세신(世臣)이 있음을 이른 말이다.” 하였으니, 만일 성(姓)을 보전하여 떨어뜨리지 않고 나라의 거실(巨室)이 되어 나라와 휴척(休戚)을 같이 한다면 종족(宗族)을 높이는 논의를 또 어찌 하찮게 여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직 친연(親緣)이 이미 다하고 지분파별(支分派別)이 되어, 복(服)은 위에서 다하고 친함은 아래에서 다하여, 기쁜 일이 있어도 서로 경하하지 않고 슬픈 일이 있어도 서로 위문하지 않는 데에 이르러서는, 길 위에서 서로 만나 말 채찍을 비껴들고 한 번 읍(揖)하는 것도 또한 거의 드물게 된다.
일찍이 듣건대,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동성(同姓)의 친족은 대종(大宗)이나 소종(小宗)을 중심으로 종족들을 수합한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조(祖)를 높이기 때문에 종자(宗子)를 공경하고, 종자를 공경하기 때문에 종족을 수합한다.” 하였으니, 군자가 돈목(敦睦)을 인하여 종족을 수합하면, 여기에서 종족끼리 연회(宴會)하는 예(禮)가 일어나므로, 마침내 이것을 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종족 이광양 종언보(李光陽宗彦甫)가 말이 여기에 미치자 매우 마음 아프게 여기어, 여러 자손들에게 제의하여 옛날의 합족(合族)의 예를 모방해서 계사(禊事)를 닦고, 마침내 나에게 서문 지어주기를 요구하였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쓰는 바이다.
영춘(靈椿)이 잎을 피워서 사방으로 통하는 네거리에 널리 그늘을 내려도 그 근본은 한 뿌리의 싹이요, 대성(大姓)이 경복(慶福)을 길러서 종족이 천하에 두루 퍼져도 그 처음은 한 사람의 몸일 뿐이다.
그러나 일(一)에서 삼(三)이 되고, 삼에서 오(五)가 되고, 오에서 구(九)가 되며, 하쇄(下殺)하고 방쇄(旁殺)하여 친연(親緣)이 이에 다하게 된다. 그러므로 구맹(句萌)에서 움이 자라 이슬을 먹고 커서 꽃이 피며 맥(脈)은 뿌리에 연한 것이 가지가 멀리 뻗어 남북에 퍼지고, 슬하(膝下)에서 나와 천식(喘息)하고 호흡(呼吸)하면서 기(氣)가 친(親)에 통하던 것이 끝내 자손은 길 가는 사람처럼 서로 멀어지기에 이르니, 또한 슬프지 않은가.
또한 내가 일설(一說)을 더하여 제군(諸君)을 위해 권면하겠다. 진(晉) 나라 때의 사씨(謝氏)와 당(唐) 나라 때의 최씨(崔氏)는 비록 귀족으로 일컬어졌으나, 한 대가 지난 뒤에는 후손들이 천인(賤人)을 면치 못하였으니, 그것은 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직 어룡씨(御龍氏)ㆍ시위씨(豕韋氏)ㆍ당두씨(唐杜氏) 및 범씨(范氏) 만이 삼대(三代)를 죽 내려오면서 더욱 크게 되었으니, 그것은 대대로 덕을 닦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종족은 떨치지 못한지 오래이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네 조부를 생각하지 않으랴, 항상 그 덕을 닦아야 하리[無念爾祖 聿修厥德].”라고 하였으니, 이제 조상을 생각하여 덕을 닦는 일을 오직 제군들에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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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요(堯) 임금 …… 하고 : 요임금 때에 고요(臯陶)가 대리관(代理官)이 되어 관(官)으로 성(姓)을 삼아 이씨(理氏)가 되었는데, 상(商)나라 때에 그의 후손인 이징(理徴)이 이씨(李氏)로 성을 고쳤다는 데서 온 말이다. 《通志 氏族略》
[주-02]우리 …… 이루어 : 덕망(德望)이 있었음을 뜻한다. 순(舜)임금이 사는 곳이 1년에 촌락(村落)을 이루고, 2년에 읍(邑)을 이루고, 3년에 도(都)를 이루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주-03]영구히 …… 앉았으니 : 춘추시대 노(魯)나라 대부(大夫) 숙손표(叔孫豹)가 진(晉)나라에 가니, 진나라 대부 범선자(范宣子)가 그에게 묻기를 “옛 사람의 말에 죽어도 썩지 않는다는 말이 있으니 무슨 말입니까?” 하고는, 또 이어서 말하기를 “옛날 우리 조(祖)는 우순(虞舜) 이상 시대에는 도당씨(陶唐氏)였고, 하(夏)나라 때에는 어룡씨(御龍氏)가 되었으며, 상(商)나라 때에는 시위씨(豕韋氏)가 되었고, 주(周)나라 때에는 당두씨(唐杜氏)가 되었으며, 우리 진나라가 중원(中原)의 맹주(盟主)가 되어서는 범씨(范氏)가 되었으니, 이렇게 관작(官爵)이 오래 이어지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자 숙손표가 대답하기를,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이것은 세록(世祿)이라 하는 것이지, 썩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
나는 들으니, 가장 상등인은 덕을 세운 것이 있고, 그 다음은 공을 세운 것이 있고, 그 다음은 훌륭한 말을 남긴 것이 있는데[太上有立德 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 덕과 공과 말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버려지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영구히 썩지 않는 것이라고 이르는 것입니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左傳 襄公 24年》
[주-04]영춘(靈椿) : 매우 장생(長生)한다는 나무 이름이다.
[주-05]일(一)에서 …… 된다 : 일(一)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삼(三)은 자신과 부모(父母)와 자식과의 삼연(三緣)을 말하며, 오(五)는 삼연에 조부모(祖父母)와 손자를 더한 오연(五緣)을 말하고, 구(九)는 오연에 증조부모(曾祖父母)ㆍ고조부모(高祖父母)와 증손(曾孫)ㆍ현손(玄孫)을 더한 구연(九緣)을 말하며, 하쇄(下殺)는 자식으로부터 아래로 친연이 점차 멀어지는 것을 말하고, 방쇄(旁殺)는 형제(兄弟)로부터 옆으로 친연이 점차 멀어지는 것을 말한다. 《禮記 喪服小記》
[주-06]구맹(句萌) : 초목(草木)이 처음 싹트는 형용을 이른다. 굽어져서 트는 싹을 구(句)라 하고, 곧게 트는 싹을 맹(萌)이라 한다.
[주-07]어룡씨(御龍氏) …… 범씨(范氏) :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대부(大夫)인 범 선자(范宣子)의 선대(先代)가 계속 변성(變姓)되어 온 과정을 말한 것이다.
白沙先生集卷之二> 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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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慶州李氏同宗禊序
當堯之時。治獄之吏。謂之理官。有能擧職者。以官授姓。因聲相近。遂爲李氏。周末。守藏史老聃。托胎七十年。指李而生。故亦姓李。逖矣二說杳難悉究。自是以降。根培條暢。柯葉遠布。至我東方。寔維我祖所居成聚。衆推爲長。世謂之沙梁大人。以漢地節元年。糾率六部。翊戴羅祖。肇基王業。上下千有七百年間。鉅人長德。譜不絶書。三韓壁記。孰與高下。不朽有三。世祿不稱焉。則世家編戶。若是乎無輕重哉。然孟子曰。所謂故國者。有世臣之謂也。若保姓不墜。爲國巨室。與同休戚。則誇宗尊族之論。又豈可少之哉。唯是親屬旣竭。支分派別。服窮於上。戚單於下。以至於喜不慶憂不弔。路上相逢。一揖馬鞭者。亦幾希矣。甞聞禮曰。同姓從宗。合族屬。又曰。尊祖故敬宗。敬宗故收族。君子因睦以合族。於是族食之禮興。而遂以是爲重。吾宗李光陽宗彦甫。興言及此。怵然傷之。倡議子姓。倣古合族之禮。以脩禊事。遂徵序於余。余曰。靈椿敷葉。蔭于通衢。而其本。一根之萌也。大姓毓慶。遍于天下。而其初一人之身也。一而爲三。三而爲五。五而爲九。下殺旁殺而親乃畢矣。枿於句萌。沾潤菩[난-01]蕾。脉連於根者。遠揚至於南北。生之膝下。喘息呼吸。氣通於親者。子孫至於途人。不亦悲哉。抑余有一說。爲諸君勖之。晉謝唐崔。雖稱華胄。一世之後。後孫不免廝役。無德故也。唯御龍豕韋唐杜及范。歷三代而益大者。世修其德故也。吾宗不振久矣。詩曰無念爾祖。聿修厥德。今念祖脩德。其惟望于諸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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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沙先生集卷之二> 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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