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선조유적. 유물

초려 이유태 선생 묘(草廬 李惟泰先生墓)

야촌(1) 2014. 5. 10. 16:06

 

 

 

세종 시 도시계획건설과 관련하여 2006년 건설교통부 외청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발족되면서 관내에 소재하는 초려이유태 선생의 묘역이 이전하도록 공시되면서 도시건설공사가 착공되면서 일방적으로 초려선생의 신도비가 침수 훼손 되는 귀신도 놀랄 일들이 벌어졌다.

이에 충청지역 유림들과 후손들이 청와대와 관계부서에 진정 및 탄원서를 제출해 놓고 묘역수호에 수년간 거세게 투쟁해오던 차, 2014년에야 주변에 역사공원을 조성하기로 매듭 짖게 되었다. 이름 하여 '초려역사공원'이다.

 

그 역사적인 시작을 알리는 '초려역사공원' 기공식이 2014년 2월 28일 현지에서 초려선생의 후손들과 공주대학교 이해준 교수, 세종시의 기관단체장들과 정무부시장, 다수의 일반시민들까지 참석한가운데, 열렸다.

 

 

원형 파괴 전의 신도비 전면(2001년 촬영)

 

↑세종시가 조성되면서 건설청에서 선생의 묘지이장을 촉구하였는바 후손들이 절대로 이장할 수 없

다며 대립하게 되자 세종시의 건설청에서 신도비 주변을 복토를 하면서 상대적으로 신도비가 낮아

수몰상태로 방치 되여 있었다.

 

 

사전 치밀한 계획없이 무작하게 세종시 개발에 따라 수장된 조선의 거유 초려 이유태선생

  신도비

 

↑초려 선생 묘소(후)와 손자(이단몽)의 묘소(전) 전경-상복을 입으신 분은 역사유적을 지키고자 애

  쓰시는 이성우 교수이다.

 

 

초려선생의 장자 이옹(李顒)선생 묘-초려선생 묘의 뒤에 있다.

 

초려선생의 장자 이옹(李顒)선생 묘 뒤에서 바라본 전경

 

 

 

 

 

↑선현의 유적을 지키고자 홀로 애쓰는 초려 12대손 이성우(공주대 객원교수) 교수가 초려선생의 묘

  소 앞에 천막을 치고 문화재를 지켜내고자 고군분투 하는 모습에 존경해 마지 앉는다.

 

아당 이성우(峨堂 李性雨교수-그의 선비정신과 높은 기개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초려선생의 손자되시는 이단몽(李端蒙)선생 묘소(측면에서) 

 

초려선생의 손자 이단몽(李端蒙)선생 묘(전면에서)

 

 

원래 선생의 묘역은 고즈넉한 언덕위에 자리하여 적어도 개발이 되기 전까지는 평화로웠다. 그러나

도시개발이 시작되면서 마을은 이미 이주되었고 사방은 모두 파 헤쳐져 본래의 모습은 온데간대 없

어져 버렸다.

 

우리의 대유학자 그리고 그분의 학문과 사상,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보전해 주어야 할 정부 당국이

하는 일이 이러하니 그저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길게 한숨 쉬고 짧게 탄식하게 하는 안타까움만

남았을 뿐이었다. 

 

↑초려역사공원 부지 밀마루타워전망대 남쪽 500미터 지점의성남예술고등학교와 미르초등학교

  뒤편 입니다.

 

 

↑신도비와 묘역을 잇는 구름다리가 생겼습니다. 주변 아파트 입주민들에게는 경관이 좋은 조용한

  산책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초려 이유태 선생 묘(草廬 李惟泰先生墓)이고 뒤에보이는 묘가 장자 이옹(李顒)선생 묘입니다.

 

↑신도비와 연결된 구름 다리위에서 바라본 묘역 전경입니다. 가운데가 초려선생의 묘이고, 북쪽으론

  장자, 남쪽으론 손자의 묘입니다.

 

 

 

기공식 행사 전 후손들이 초려선생 묘에 고유제를 올리는 모습. 

 

↑기공식 식전 세종시의 정무부시장, 이해준공주대 교수, 이성우 공주대 객원교수. 그리고 후손들이

  반가운 축하 담소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초려 역사공원기공식에 참석하신 분들로 부터 커다란 한지에 방명록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도 초려

  유물관에 전시될 듯 싶습니다.   /  사진 ⓒ세종시공식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