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處士慶州李公 諱 道佑 墓碣銘(幷序)
지은이 : 영천선비[소방공무원]
公의 諱는 도우(道佑) 字는 유언(惟彦) 姓은 李氏로 系統은 慶州이다. 公의 學識과 치덕(齒德)은 대단히 높았어도 後世에 傳해지지 아니함은 平素 회명염적(晦名斂跡)하여 自修를 志向하고 입신양명(立身揚名)에는 초연(超然)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궁거(窮居)에 樂道하고 우유(優游)에 律身하여 곤궁(困窮)할수록 더욱 뜻이 견고(堅固)하고 늙을수록 더욱 건장(健壯)하였다. 始祖는 新羅開國佐命功臣으로 아찬(阿餐)과 각간평장사(角干 平章事)를 지낸 알평(謁平)이며 8代祖는 諱가 옥삼(玉三)으로 근위장군행용역위부호군(折衝將軍 行 龍驤衛副護軍)을 歷任하고 尙州로부터 신년현(新寧縣) 화동(花洞)으로 이거(移居)하였다.
5代祖의 諱는 植으로 奉正大夫 行 司憲府監察과 정략장군 수 사도진수군첨절제사(定略將軍 守 蛇渡鎭水軍僉節制使)를 지냈다. 高祖의 諱는 온수(蘊秀) 號는 가은(稼隱)으로 壬辰倭亂을 當하여 從弟 및 花山君 권응수(權應銖) 等과 더불어 倡義하여 永川城收復을비롯 많은 戰功으로 선무원종공신이등훈(宣武原從功臣二等勳)으로 녹훈(錄勳)되고 어모장군훈련원정(禦侮將軍 訓練院正)으로 제수(除授)되었다.
曾祖의 諱는 時孫으로 通訓大夫 軍資監正을 歷任하고 祖父의 諱는 막배(莫培) 字는 내본(乃本) 號는 華溪로 通政大夫이며 易理에 통효(通曉)하여 太極集說 源流集說 各1卷을 지었다.
아버지의 諱는 萬憲 字는 應百이요 어머니는 義城金氏 奎鎭의 따님이다. 公은 朝鮮 孝宗朝 辛丑에 花村의 옛집에서 태어나 景宗二年 壬寅에 卒하여 享年 六十二年이요 當時 花村 能德洞 杏嶺 乾坐之原으로 葬禮하였으나 戊子年에 교곡(橋谷) 右便 亥坐로 천묘(遷墓)하였으니 즉 配位이신 仁同張氏와 雙墳이다.
配位는 仁同張氏 思黙의 따님으로 庚戌年 十月 五日에 卒하였다. 아들 두분이 있으니 실휘(實輝)와 선휘(善輝)이다. 實輝의 子는 載臣 舜臣이며 載臣의 子는 潤億 潤宗이다. 舜臣의 子는 潤岳이며 潤億의 子는 濟龍이다.
潤宗의 子는 箕雨 斗雨 瀞龍 灝龍이요. 潤岳의 子는 溵龍 淑龍이다. 善輝의 子는 雲臣이며 雲臣의 子는 潤益 潤基 潤天 潤永 潤祿 相福이다. 潤益의 子는 一龍 見龍 乙龍이며 潤基는 出系하였고 潤天의 系子는 奇龍이요 潤永의 子는 相得이요. 潤祿의 子는 淵龍이요. 相福은 無后하며 以下는 많아서 記錄하지 않는다.
오호(嗚呼)라! 公은 유서(由緖)깊은 해동벌열(海東閥閱)의 후예(後裔)요. 詩禮의 家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天性이 영오(穎悟)하고 기개(氣槪)가 척당(倜儻)하여 兩親이 심애지(甚愛之)하였다.
父親에게서 家學과 庭訓을 修習하여 文藝를 夙成하였으며, 爲己의 學問과 聖學의 旨訣을 듣고서 사장(詞章)의 익힘보다는 修己養德에 專念하였다. 科擧로 榮達하려는 뜻을 일찍 접고, 금서(琴書)로 자오(自娛)하고 궁경어초(躬耕漁樵)로 家政에 充實하여 끝내 林泉에서 늙어 갔다.
事親의 道가 극진(極盡)하여 風雨에도 定省을 불폐(不廢)하고 환우(患憂)에는 시측(侍側)을 떠나지 않고 단지(斷指)도 불사(不辭)하니 린리(隣里)가 칭송(稱頌)하고 족척(族戚)이 간언(間言)치 못하였다.
兄弟에도 友愛가 심독(甚篤)하여 련금련상(連衾連床)하며 다과(多寡)를 共有하며 慶弔에 동환우(同歡憂)하니 內外가 진신(盡信)이요. 師友가 추중(推重)하였다. 公의 시종사적(始終事迹)이 적지는 않았을 테지만, 병선(兵燹)을 여러 번 겪고 점진하세(漸進下世)에 진적(陳跡)이 皆滅하여 片言隻紙도 遺傳치 않음은 대단히 哀惜한 일이다.
그러나 鄕中父老들이 傳言하고 운잉(雲仍)들이 그 德을 구전(口傳)하니 이 또한 유덕(幽德)을 徵驗함이 아니겠는가?
이제 公이 가신지 거금(距今) 근 삼백성상(近 三百星霜)에 어진 後孫들의 誠金으로 벌석(伐石) 현각(顯刻)하여 隱德을 천양(闡揚)하고 그 선도(羨道)를 表하고자하니 追遠報本의 마음이 어찌 그리도 아름답단 말인가?
그리하여 己丑(2009) 正月에 公의 八世孫인 태호보(台鎬甫)와 九世孫인 제환씨(濟桓氏)가 家牒과 行狀을 지니고 門內洞 나의 우소(寓所)를 찾아와 銘文을 請하는데 돌아보면 박학비재(薄學菲才)한데다 經綸마저 얕아 敢히 그 일을 勘當하지 못하기에 屢次 辭讓하였지만 그러나 두 분 精誠의 至極함이 言外에 나타나기에 종내(終乃) 고사(固辭)치 못하고 傳言과 行狀 等을 根據하여 오른쪽과 같이 略述하고 이어서 銘하노니
교곡지원(橋谷之原)에 유숭부당(有崇斧堂)하니
전대석인(前代碩人)의 의리유장(衣履攸藏)이라
적인군자(積仁君子)여 필유여영(必有餘榮)이니
아천유덕(我闡幽德)하여 정민이창(貞珉以彰)하노라
[출처]묘갈명(墓碣銘)-처사 이도우 l 작성자 > 영천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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