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이재정(李在禎)

왜곡과 매도의 정치가 진실을 죽이고 있다.

야촌(1) 2013. 6. 27. 12:53

[특별기고]왜곡과 매도의 정치가 진실을 죽이고 있다.

경향신문|이재정 | 성공회대 석좌교수·전 통일부 장관

입력 13.06.26 21:53 (수정 13.06.26 22:43)

--------------------------------------------------------------------------------------------------------------------------------------

 

터무니없는 모함과 왜곡의 정치가 판을 치면서 요즘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국가정보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일반문서로 분류하여 세상에 공개해버렸다. 외교역사상 전대미문의 '정변(政變)'이 일어난 것이다. 도대체 어느 나라가 정상회담 내용을 이렇게 세상에 공개하는가.

 

대통령지정기록물은 법에 의하여 15~30년간 열어볼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고 다만 국가적인 안보정책 수립이나 남북관계 국정운영에 긴급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경우 헌법 개정의 수준인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 제한적으로 열람을 허용할 수 있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동안 남북회담의 준비과정에서부터 이를 공개하는 것도 서로 합의하여 동시에 같은 방법으로 이행하였는데 우리 정부가 이런 원칙을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깨뜨리고 말았다. 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반역의 대통령" "국민의 낯에 먹칠을 한 대통령"이라고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 

 

전직 대통령을 "반역"으로까지 먹칠하며 막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가 과연 정상적인 국가인가 하는 분노에 치가 떨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몇 번 죽여야 성이 찬다는 것인가.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오히려 정문헌 의원을 비롯하여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에서 줄기차게 주장했던 노무현의 NLL 포기발언은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국가정보원이 발표한, 2008년 1월3일에 최초로 작성했다는 정상회담 회의록(이것은 아마도 인수위원회를 위하여 국정원이 새롭게 만든 자료인 것처럼 보인다)을 보면 그 어디에도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든가 영토를 포기한다는 말이 없다.

 

여권에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위원장하고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NLL은 바꿔야 합니다"라고 노 전 대통령이 말하고 있으니 NLL을 바꾸겠다는 말이 아니냐고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문장의 앞뒤를 볼 때 인식을 같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남북관계에서 NLL이 제일 큰 문제임에는 틀림없다는 인식을 같이한 것이고, 바꾸자는 것은 다음 문장에 자세히 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경제 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NLL을 평화적 방법으로 평화를 지키는 평화선으로 유지하자는 제안이었다. 분명한 것은 이 문서 어디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정일 위원장의 말 가운데 NLL을 변경한다든가 폐기한다는 말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여권에서 주장하는 허무맹랑한 것 가운데 또 하나는 우리가 저자세, 굴욕적인 회담을 했다는 주장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한반도 평화정책을 세 차례에 걸쳐 아주 길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김 위원장의 동의를 받아냈다. 그런데 비판하는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고"를 하면서 저자세를 취했다는 것이다.

 

여권의 주장을 보면 이것은 김계관 부상이 6자회담 결과를 양 정상 앞에서 보고하였을 때 이 보고를 받고 그 보고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한 것을 가지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입장을 대변하였다거나 "대변인"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북한을 두둔했다는 뜻으로만 읽으면 안된다.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과 동의 특히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북한의 입장과 우리 정부의 입장을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었는가. 이것이 저자세라는 말인가.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국민들의 마음속에 이미 "영토선"으로 굳어 있는 NLL을 손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뒤 2007년 10월6일 군 지휘부와 만나 "NLL 얘기, 누구 말이 옳고 그르든 간에 우리 국민들 그거 건드리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된다, 

 

결국 안 되니까 덮어버리자, 기존 질서 위에 새로운 질서를 덮어서 새로운 질서에 필요한 만큼 바다를 이용하고, 그것 깨지면… 그것 깨져서 질서가 돌아가면 옛날 질서로 돌아가는 거다"라고 말한 바 있다.

 

또 그해 10월11일 남북정상회담 관련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NLL) 문제는 성격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 국민들로서는 대단히 민감한 문제이다. 우리 국민들 중에는 이걸 영토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것 지금 우리 의제에 넣으면 한 발짝도 못 나간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NLL에 관한 한 국민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상을 전제하면서 정상회담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왜곡을 넘어 영토를 포기한 대통령으로 매도하면서 '사약'을 내리고 있다. 이것이 과연 국민에게 희망과 미래를 만들어 주고 남북 간에 신뢰를 만들려는 정치인가.

 

이제 국민들이 외쳐야 한다. 국정 책임자들에게 준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법이 정한 본연의 책무를 저버린 국정원은 폐지해야 한다.

 

 

↑이재정 | 성공회대 석좌교수·전 통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