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世 이익만(李翼萬)
[요약내용]
◈출생지 : 경상남도 울산(蔚山).
◈자 : 사붕(士鵬)
◈호 : 국포(菊圃)
◈생졸년 : 1795(정조 19)~1870(고종 7)
◈향년 : 76세
◈본관 : 경주(慶州)
◈활동분야 : 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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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정조 19) 2월∼1870년(고종 7) 5월 16일. 조선 후기 유학자. 자는 사붕(士鵬)이고, 호는 국포(菊圃),본관은 경주(慶州), 임진왜란때 의병장 이석종(李碩宗)의 7대손으로 오늘날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양천리 출생이다.
증조는 이태문(李泰文)이고, 조부는 이춘선(李春善)이다. 부친은 이우하(李友夏)이고, 생부 이우성(李友晟)과 생모 손언두(孫彦斗)의 딸 밀양손씨(密陽孫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민점로(閔漸魯)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6세에 부친에게서 19사를 배웠고, 18세 때 매제(妹弟) 이찬견(李鑽堅)과 함께 비곡(匪谷) 이석호(李錫琥)의 문하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죽오(竹塢) 이근오(李勤吾)와 향리의 윤빈묵(尹璸默)‧박희영(朴羲永)‧권찬환(權瓚煥) 등과 산사(山寺)에 모여서 학문과 과업(課業)을 갈고 닦으며 교유하였다.
1836년(헌종 2) 향시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였고, 연이어 중하과(中夏科) 복시(覆試)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860년(철종 11) 향리의 사림들이 행의(行誼)로써 천거하였으나 부끄럽게 여기고 나아가지 않았다.
만년에 서실을 지어 ‘국포(菊圃)’라 편액하고, 시작(詩作)에 몰두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한편 주자서(朱子書)를 읽으며, 초사(楚辭) 및 당송팔대가의 문장규범을 관찰하고 연구하였다. 향년 7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주효(李疇孝)이다. 저서로 『국포일고(菊圃逸稿)』가 있다.
자료>국포일고(菊圃逸稿)
국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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