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 이우의 묵란도(墨蘭圖)
↑옥산 이우의 묵포도(墨葡萄)
↑옥산 이우의 국화도(菊花圖), 강릉오죽헌-강원도유형문화재 제12호
이 그림은 가로 26.5cm x 세로 30cm 크기의 종이에 그린 묵화로, 국화 한줄기가 화면에
솟아오른 단순한 구도이면서도 만발한 국화를 보는 듯 담백한 여운을 풍긴다. 옥산의 누님
인 매창의 월매도(梅窓 月梅圖)와 함께 후손인 이장희 가에 소장되어 오던 것을 1965년
에 2개로 나누어 오죽헌 기념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옥산 이우의 초충도(草蟲圖=고추와 여치)/크기 : 28.7×20.5cm/종이에 수묵담채
↑옥산 이우의 초충도(草蟲圖=수박과 들쥐)/크기 : 28.7×20.5cm/종이에 수묵담채
■ 이우(李瑀)
[생졸년] : 1542년(중종 37)∼1609년(광해군 1).
왕대밭에 왕대난다. 그는 “형” 이이(李珥)의 명성에 가려진 당대의 천재였다.
조선 중기의 서화가. 본관은 덕수(德水). 이름은 우(瑀).또는 후(珝). 자(字)는 계헌(季獻), 호(號)는 옥산(玉山)· 죽와(竹窩)· 기와(寄窩). 원수(元秀)의 아들이며, 이이(李珥)의 막내 동생으로, 어머니는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이다.
1567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비안현감(比安縣監)과 괴산·고부군수(古阜郡守)를 거쳐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이르렀다.시(詩)· 서(書)· 화(畵)· 금(琴)을 다 잘하여 4절(四絶)이라 불렸다. 그림은 초충(草蟲)· 사군자· 포도 등을 다 잘 그렸는데, 어머니의 화풍을 따랐다.
그가 초충을 그려 길에 던지면 닭이 와서 쪼았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화훼초충(花卉草蟲)을 잘 그렸다고 전한다.
아들 경절(景節) 또한 가법(家法)을 이어 서· 화· 금에 능하여 3절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25세때 산후(産後)로 요절(夭折)한 그의 딸 벽오부인(碧梧夫人)도 재행(才行)이 아름답기로 이름 났으며, 율곡선생에 비견할 정도로 학문의 깊이와 재주를 가져, 시, 서화, 금. 바둑에 능했다, 또한 외가 덕산황씨 낙양군(洛陽君)의 묘지명을 지어 회자되기도 했다.
옥산(玉山)의 묵매화(墨梅畵)는 주로 횡관식구도(橫貫式構圖)로 힘차게 묘사하였다. 유작으로는 《설중매죽도 雪中梅竹圖》(개인 소장)·《노매도 老梅圖》.《수과초충도 水瓜草蟲圖》(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포도도 葡萄圖》 등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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