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역대 대통령 자료

초대 이승만 대통령 취임사

야촌(1) 2006. 1. 13. 03:10

[취임식 개요]

 

초대 이승만대통령은 1948년 7월 20일 국회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948년 7월 24일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대통령 취임식은 개식, 애국가제창 및 국기에 대한 경례, 취임선서, 대통령 취임사, 부통령 취임사, 축사 및 축전 낭독, 만세삼창, 폐회 등의 식순으로 진행되었다.

--------------------------------------------------------------------------------------------------------------------------------------

 

■ 초대 이승만 대통령 취임사(1948년 7월 24일 토요일)

 

여러번 죽었던 이 몸이 하느님 은혜와 동포들의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에 이와 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는 나로서는 일변 감격한 마음과 일변 감당키 어려운 책임을 지고 두려운 생각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기쁨이 克(극)하면 웃음이 변하여 눈물이 된다는 것을 글에서 보고 말로 들었던 것입니다. 요즘 나에게 치하하러 오는 남녀동포가 모두 눈물을 씻으며 고개를 돌립니다. 각처에서 축전 오는 것을 보면 모두 눈물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본래 나의 감상(感想)으로 남에게 촉감될 말을 하지 않기로 매양 힘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목석간장(木石肝腸)이 아닌 만치 나도 뼈에 사무치는 눈물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40년 전에 잃었던 나라를 다시 찾은 것이요, 죽었던 민족이 다시 사는 것이 오늘에야 표명(表明)되는 까닭입니다.

 

오늘 대통령으로서 선서하는 이 자리에 하느님과 동포 앞에서 나의 직책을 다하기로 한층 더 결심하며 맹서합니다.

따라서 여러 동포들도 오늘 한층더 분발해서 각각 자기의 몸을 잊어버리고 민족 전체의 행복을 위하여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시민으로서 영광스럽고 신성한 직책을 다하도록 마음으로 맹서 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맡기는 직책은 누구나 한 사람의 힘으로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중대한 책임을 내가 감히 부담할 때에 내 기능이나 지혜를 믿고 나서는 것이 결 코 아니며 오직 전국 애국남여(愛國男女)의 합심 합력으로써만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바입니다.

 

이번 우리 총선거의 대성공을 모든 우방(友邦)들이 축하하기에 이른 것은 우리 애국남여(愛國男女)가 단단한 애국성심(愛國誠心)으로 각각의 책임을 다한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국회(國會) 성립 또한 완전무결한 민주제도로 조직 되어 2, 3 정당(政黨)이 그 안에 대표가 되고 무소속과 좌익 색채로 지목 받는 대의원이 또 한 여럿이 있게된 것입니다. 기왕의 경험으로 추측하면 이 많은 국회의원 중에서 사상(思想) 충돌로 분쟁 분열을 염려한 사람들이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극렬한 쟁론(爭論)이 있다가도 필경 표결(表決)될 때에는 다 공정한 자유 의견을 표시하여 순리적으로 진행하게 되므로 헌법과 정부조직법을 다 민의(民意)대로 종다수로 통과된 후에는 아무 이의 없이 다 일심(一心)으로 복종하게 되므로 이 중대한 일을 조속한 한도 내에 원만히 해결하여 오늘 이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니 국회의원 일동과 전문위원 여러분의 애국성심(愛國誠心)을 우리가 다 감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입니다.

 

나는 국회의장(國會議長)의 책임을 이에 사면(辭免)하고 국회에서 다시 의장을 선거할 것인데 만일 국회의원 중에서 정부 부처장으로 임명될 분이 있게 되면 그 후임자는 각기 소관 투표구역에서 재선(再選,) 보결(補缺)하게 될 것이니 원만히 보결된 후에 의장을 선거하게 될듯하며 그동안은 부의장 두분이 사무를 대임(代任)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의장 두분이 그동안 의장을 보좌해서 각 방면으로 도와 협조 진행케 하신 것을 또한 감사히 생각합니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조직에 대해서 그동안 여러 가지로 낭설이 유포되었으나 이는 다 추측적(推測的) 언론에 불과하며 며칠안으로 결정 공포될 때에는 여론상 추측과 크 게 다를 것이니 부언낭설(浮言浪說)에 현혹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부를 조직하는데 제일 중대히 주의할 바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일할수 있는 기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기관이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사회적 명망(名望)이나 정당단체의 세력이나 간에 오직 국회에서 정하는 법률을 민의(民意)대로 준행해 나갈 기능 있는 사람끼리 모이는 기관이 되어야 할 것이니 우리는 그런 분들을 물색 하는 중입니다.

 

어떤 분은 인격이 너무 커서 작은 자리에 채울 수 없는 이도 있고 혹은 작아서 큰 자리에 채울 수 없는 이도 있 으나 참으로 큰 사람은 큰 자리에도 채울 수 있고 작은 자리에도 채울 수 있을뿐 아니라 작은 자리 차지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참 큰 인물들이 있어 무슨 책임을 맡기든지 大小와 高下를 구별치 않고 적은 데서 성공해서 차차 큰 자리에 오르기를 도모하는 분들이 많아야 우리의 목적이 속히 도달될 것입니다. 이런 인격들이 함께 책임을 분담하고 일해 나가면 우리 정부 일이 좋은 시계(時計) 속처럼 잘 돌아가는 중에서 이재(理財)를 많이 나타낼 것이요,

 

세계의 신망과 동정이 날로 증진될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수립하는 정부는 어떤 부분적이나 어떤 지역을 한하지 않고 전 민족의 뜻대로 전국(全國)을 대표하는 정부가 될것입니다.

 

기왕에도 말한 바이지만 민주정부(民主政府)는 백성이 주장하지 않으면 그 정권이 필경 정객과 파당의 손에 떨어져서 전국이 위험한데 빠지는 법이니 일반국민은 다 각각 제 직책을 행해서 먼저 우리 정부를 사랑하며 보호야 될 것입니다.

 

내 집을 내가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으면 필경은 남이 주인노릇을 하게 됩니다.

과거 40년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의(義)로운 자를 보호하고 불의(不義)한 자를 물리쳐서 의(義)가 서고 사(邪)가 물러가야 할 것입니다. 전에는 임금이 소인(小人)을 가까이 하고 현인(賢人)을 멀리하면 나라가 위태하다 하였으나 지금은 백성이 주장이므로 민중(民衆)이 의(義)로운 사람과 불의(不義)한 사람을 명백히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승인(承認) 문제에 대하여는 그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가 판단 할수는 없으나 우리의 순서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모든 우방(友邦)의 호의(好意)로 속히 승인(承認)을 얻을 줄로 믿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시하는 바는 승인(承認)을 얻는데 있지 않고 먼저 국위(國威)를 공고히 세우는데 있나니 모든 우방(友邦)이 기대하는 바를 저버리지 아니하고 우리가 잘만 해 나가면 우리의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후원할 것이니 이것도 또한 우리가 일 잘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9월에 파리에서 개회하는 유엔 총회에 파견할 우리 대표단은 특별히 긴급한 책임을 가지니 만치 가장 외교상 적합한 인물을 택하 여 파견할 터인데 아직 공포는 아니하였으나 몇몇 고명(高名)한 인격으로 대략 내정되고 있으니 정부 조직 후에 조만간 완정(完定) 공포될 것입니다.

 

우리의 대표로 레이크 석세스에 가서 많은 성적(成績)을 내고 있는 임영신(任永信) 여사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 고맙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재정후원(財政後援)도 못하고 통신상으로 밀접히 후원(後援)도 못하는 중에 중대한 책임을 그만치 진취시킨 것을 우리는 다 영구히 기념하게 될 것입니다.

 

이북(以北) 동포중 공산주의자들에게 권고 하노니 우리 조국을 남의 나라에 부속(附屬)하자는 불충한 사상(思想)을 가지고 공산당(共産黨)을 빙자하여 국권(國權)을 파괴하려는 자들은 우리 전민족이 원수로 대우하지 않을 수 없나니 남의 선동을 받아 제 나라를 결단내고 남의 도움을 받으려는 반역(反逆)의 행동을 버리고 남북(南北)의 정신통일로 우리강토를 회복해 서 조상의 유업(遺業)을 완전히 보호하여 우리끼리 합하여 공산(共産)이나 무엇이나 민의(民意)를 따라 행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기왕에도 누누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공산당(共産黨)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共産黨)의 매국주의(賣國主義)를 반대하는 것이므로 이북(以北)의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들은 이것을 절실히 깨닫고 일제히 회심해서 우리와 같이 같은 보조를 취하여 하루 바삐 평화적으로 남북을 통일 해서 정치와 경제상 모든 복리를 다같이 누리게 하기를 바라며 부탁합니다.

 

대외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와 다 친린(親隣)해서 평화를 증진하여 외교 통상에 균평한 이익을 같이 누리기를 절대 도모할 것입니다. 만일 교제상(交際上). 친소(親疎)에 구별이 있다면 이 구별은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타동적(他動的)으로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느 나라든지 우리에게 친선(親善)히 한 나라는 우리가 친선(親善)히 대우 할 것이요, 친선(親善)치 않게 우리를 대우하는 나라는 우리가 친선히 대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 40년간 우리가 국제상(國際上) 상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은 세계 모든 나라가 우리와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까닭 입니다.

 

일본인(日本人)들의 선전만을 듣고 우리를 판단해 왔었지만 지금부터는 우리 우방들의 도움으 로 우리가 우리 자리를 찾게 되었은즉 우리가 우리말을 할 수 있고 우리 일도 할 수 있나니 세계 모든 나라들은 남의 말을 들어 우리를 판단하지 말고 우리가 하는 일을 보아서 우리의 가치를 우리의 습관대로만 정해 주는 것을 우리가 요청하는 바입니다 .

 

우리 정부와 민중은 외국의 선전을 중요히 여겨서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각국 남녀(男女)로 하여금 우리의 실정을 알려 주어서 피차에 양해를 얻어야 정의(正義)가 상통하여 교제가 친밀할 것이니 이것이 우리의 권리만 구함이 아니요, 세계 평화를 보증하는 방법입 니다. 새 나라를 건설하는 데는 새로운 헌법과 새로운 정부가 다 필요하지만 새 백성이 아니 고서는 결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부패한 백성으로 신성한 국가를 이루지 못하나니 , 이런 민족이 날로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행동으로 구습(舊習)을 버리고 새 길을 찾아서 날로 분발 개진하여야 지나간 40년 동안 잃어버린 세월을 다시 회복해서 세계 문명국에 경쟁할 것이니, 나의 사랑하는 삼천만 남여(男女)는 이날부터 더욱 분투용진(奮鬪勇進) 해서 날로 새로운 백성을 이룸으로써 새로운 국가를 만년반석(萬年盤石) 위에 세우기로 결심합시다.

 

1948년 7월 24일

통령 이승만(李承晩)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 및 광복절 기념행사

 

↑장소 : 구 중앙청 건물 정면(오늘날 경복궁 내)

 

↑국회에서 헌법이 제정된후 헌법기초위원들의 기념촬영(1948. 07. 12)

 

1948년 7월 24일 취임한 이승만대통령은 초대 내각으로 국무총리에 이범석. 외무장관에 장택상. 내무장관에 윤치영. 문교부장관에 안호상. 등으로 구성하였다. 내각 구성에 이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수립이 선포되었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3년간의 미 군정기간을 거쳐 비록 통일 독립국가를 수립하지 못하고, 많은 갈등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였다.

 

그 후 1949년 제3차 유엔 총회에서 한국정부를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내용의 결의안이 통과돼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국제적으로 승인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