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조선시대 인물

최창대(崔昌大) - 전주인(全州人).

야촌(1) 2012. 7. 16. 02:34

■ 최창대(崔昌大)

 

   [생졸년] 1669년(현종 10)∼1720년(숙종 46).

   [문과] 숙종(肅宗) 20년(1694) 갑술(甲戌) 별시(別試) 병과(丙科) 3위(7/26)/26세

   [진사시] 숙종(肅宗) 13년(1687)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 [식년진사] 1등(一等) 3위/19세(3/100)

   [생원시] 숙종(肅宗) 13년(1687)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 [식년생원] 3등(三等) 56위(8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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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졸년]1669년(현종 10)∼1720년(숙종 46). 조선중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자는 효백(孝伯), 호는 곤륜(昆侖). 영의정 최명길(崔鳴吉)의 증손으로,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의 아들이며, 모친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좌의정 화곡 이경억(華谷 李慶億)의 딸이다.

 

1687년(숙종 13) 생원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169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검열(檢閱-正九品) ‧ 설서(說書-正七品)‧ 부수찬(副修撰-從六品)을 거쳐 1698년 암행어사(暗行御史-堂下官)가 되었다.

 

이어 교리(校理-從五品)‧ 이조좌랑(吏曹佐郞-正六品)‧ 헌납(獻納-正五品)‧ 응교(應敎-正四品)를 거쳐 1704년 사서(司書-正六品)‧ 이조정랑(吏曹正郞-正五品)을 지냈고, 1706년 사간(司諫-從三品) 등을 지낸 뒤 1711년 대사성(大司成-正三品)에 승진하였으며, 그 뒤 이조참의(吏曹參議-正三品)‧ 부제학(副提學-正三品)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에 뛰어나 박세채(朴世采)‧ 김창협(金昌協)에 비교되었고, 제자백가(諸子百家)와 경서에 밝아 당시 사림에게 추앙을 받았으며, 글씨에도 능하였다. 암행어사로 있을 때 함경도 일대의 관폐를 엄명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고, 또한 전라도에 어사로 나가서는 진소어(眞蘇魚)의 수세(收稅)에 따른 폐단과 각 고을 승려에게 부과하는 지공(紙貢)에 따른 폐단, 연해제읍(諸邑)의 수령을 무신만으로 임명하는 데 따른 문제점 등에 대한 서계(書啓)를 올렸다.

 

저술도 많이 있으나 대부분 산일(散佚)되고, 《곤륜집》 20권 10책만이 전하여지고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昆侖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