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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과 그 많던 친이는 어디로 갔을까

야촌(1) 2011. 12. 13. 05:41

이 대통령과 그 많던 친이는 어디로 갔을까

조병철 언론인 (2011.12.12 15:50:45)

 

<칼럼>헌법기관 공격받고 집권여당 지리멸렬인데 대통령 존재감 실종
집권 말기 권력누수라기 보다 정국 운영 수수방관으로밖에 안비쳐져

 

 

↑이명박 대통령이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2년 경제정책방향 보고회에 참석, 스마트기기로 안건보고 내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을 찾습니다. 찾는 사람: 대통령. 이 사람을 보신 분은 아래로 연락주시면 후사하겠음. 연락처: 대한민국 국민’

변괴치고는 으뜸가는 변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세밑을 앞두고 한 나라의 대통령을 찾는 심인 광고가 국민의 이름으로 게시되다니. 언제나 국민과 함께 있고, 같이 호흡해야 할 국정 최고 책임자의 정치적 실종 상태가 장기화 돼 급기야는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대통령의 부재 상태는 물리적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TV 뉴스 등에 간간이 동정이 보도되는 것을 보면 대통령의 건재는 확인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대통령의 존재감이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정치판에서 대통령의 숨결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그것도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이렇게 있어도 있는 것 같지 않은, 달리 말하면 없어도 그만인 것으로 각인된다면 개인은 물론 국가에도 비극적 상황이다.

 

벌써부터 레임덕이 본격화된 것일까. 꼭 4대강의 보를 연상시킨다. 보에 균열이 생겨 물이 새듯 대통령의 권력의 보도 무너지거나 터져 권력이 줄줄 새는 것일까. 5년 단임제에서 올 연말부터 대통령의 권한이 약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권력의 속성이라고 전제하자.

 

다만 이 대통령의 최근 정치적 부재는 권력 누수 현상이라기보다는 본인이 국정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게 한다. 최근의 정치 상황은 이 대통령으로서도 불가항력적 측면이 강하다. 10.26 재보선을 전후해 이 땅에는 강도 7.4 이상의 정치 지진이 덮쳐 정치지형의 대대적 변화를 초래했다.

 

진원지는 안철수라는 정치 신인. 그의 돌연한 출현은 기성정치권을 거의 초토화시켰다. 그의 정치권에 보내는 야유와 냉소는 많은 국민에게 정치적 청량감과 신선함을 폭포수처럼 퍼부었다. 정치권은 꾸중을 듣는 학동마냥, 아니 교주와 신도의 관계처럼 풀죽은 채 그의 입에 따라 깨춤을 추었다. 여당은 숨 넘어 가기 직전의 처절한 몸부림을 쳤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던가.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운전기사 등이 행한 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은 가뜩이나 체력이 허약해진 한나라당으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심판이었다. 기식이 엄엄한 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이 밤을 못 넘기는 게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당에서는 제 한 목숨 살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가관이다. 난파선의 생쥐도 이보다는 호들갑을 떨지 않았을 것이다. 탈당, 재창당, 당 해체, 헤쳐 모여 등 모두가 우울하고 슬픈 소식들만 터져 나온다. 종당에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우우 몰려가 우리의 구원투수가 돼 달라, 우리의 여신이 돼 달라며 소매 끝, 치마 단을 붙들고 읍소를 한다. 얼굴은 온통 땀과 눈물로 범벅이 돼 있다.


사실 그 자리에는 누구보다 먼저 대통령이 임재해야 한다. 대통령이 홍해를 가르는 지팡이를 들고 나름의 갈 길을 제시하는 게 순리다. 더구나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있지 않는가. 대통령의 마지막 인선이요, 권력을 휘두르는 호기가 아닌가. 그런데 대통령은 지금 그 권력이 박탈당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 권력을 방기했다. 취임초기 그 많던 친이(親李)는 어디로 갔을까.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도 불거져 나온다. 대통령의 형이자 이 정권에서 상왕으로 군림했던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호주머니에서 수억 원의 뭉칫돈이 삐져나왔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의원은 대국민사과와 함께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과거의 예로 미루어 사건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알려주는 것 같다. 대통령의 사촌 처남도 저축은행 비리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앞에 불려갔다.


한마디로 여권의 총체적 위기다. 여권 총수 대통령의 등장을 기다리건만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은 어디로 갔을까.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레임덕이 시작한다지만 스스로 절름발이 오리가 되려한다. 식물 대통령이 되었을까. 의문은 끝이 없다. 눈치가 비상하고 약삭빠른 이들은 어느새 새로운 권력자의 품안으로 잽싸게 파고든다. 세상 인심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도 1년 이상이 남아 있다. 긴 세월이다. 취임초기만 못해도 먹을 게 많이 남아 있다. 대통령의 권력 난로는 아직도 열기가 뜨거워 이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기에는 충분하다.


사정이 그렇건만 대통령은 남은 권력을 포기한 채 달팽이 집안으로 숨기에만 급급하다. 정치는 나와는 상관없다는 양 방관자, 국외자처럼 숨어서 문틈으로 정치판을 엿본다.


이 대통령의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널리 알려져 있다. 취임 초부터 정치에 발을 담그려 하지 않는다.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한다. 개발독재 시절 몸에 밴 지시와 명령의 의사소통 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해 설득과 절차가 중시되는 민주 정치에 부적응한 것도 정치소외를 부채질했을 것으로 유추된다.


이 대통령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정치는 외면한다고 해서 외면되는 것도, 일방적 의사소통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여권 전체가 안철수라는 무명 신인 한명에게 초토화되고, 그가 힘없는 야당에게 생명수가 되어 생기를 되찾도록 만든 장본인이 대통령이라면 믿을 지. 믿기 싫어도 이 땅의 정치를 불모, 붙임 정치를 만든 당사자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박근혜 전대표가 정치 전면에 나서기를 꺼려했던 것도 대통령의 존재가 거북한 것도 한 요인으로 짐작된다. 예상보다 빨리 박 전 대표를 한나라호의 선장으로 옹립케 한 것도 이 대통령의 정치 포기임을 유의해야 한다. 유력한 대권 주자후보의 한 명에서 대권주자 후보로 등기를 하게 된 셈이다.


권위주의적이고 전근대적인 표현이지만 통속적이고 이해가 편해 그대로 쓰자면 하늘에 두개의 태양이 떠있는 셈이다. 두 태양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은 무대 뒷전으로 사라지거나 인공호흡기로 잔명을 보존하는 상태로 돌입케 되었다.

이는 결단코 환영할 만한 일은 되지 못한다. 금전적, 경제적 손실만 손실이 아니다. 대통령이 제 자리에 있지 못하고 주어진 역할과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이만저만한 국력의 낭비가 아니다.

대통령은 언제까지 청와대 안방에서 숨어서 지낼 것인가.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현재만 지나가기를 목 빼고 기다릴 것인가. 뒷산에 올라 ‘반 한미FTA’의 촛불 시위를 지켜보며 ‘아침 이슬’을 부르기엔 날씨가 너무 차다.

"No Pains, No Gains." 땀 흘리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대통령이라고 이 철칙에서 예외일순 없다. 위기 국면이 지난 연후에 슬며시 고개를 내밀어서야 권위와 무게가 사라진다. 어떤 말을 해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힘주어 말해도 국민은 또 하는가 보다 심드렁하게 듣고는 사라진다. 이러니 영이 설리가 만무하다.

지금 한나라당은 공중분해 직전의 지리멸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박 전 대표에게 우황이나 사향같은 비상약을 기대하고 있다. 천막 당사 시절의 신통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상황은 그 시절보다 훨씬 어렵다.

대통령의 등장을 요청하고 있다. 겁쟁이 마냥 청와대에 숨어 담 너머로 광화문 광장을 구경하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 (경복궁과 민속박물관이 가로 막고 있어 광화문 광장이 보이지는 않겠지만.) 한나라당의 미래와 명운에 가장 책임이 큰 최대 주주가 대통령이다. 내 몰라라하고 내팽개친다고 정치적으로 면책되지 않는다.

낯설고, 피해가고만 싶은 국정의 주도권을 장악하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붙들고 있는 용기와 담력이 요청된다.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고 늪에 깊게 빠진 한나라당을 견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차마 이런 낯 뜨겁고 남우세스런 광고가 전봇대마다 나붙어서는 희망이 없다.
“대통령님 빨리 집으로 돌아오세요. 과거는 묻지 않겠습니다. 국민이 위독합니다.”

글/조병철 언론인·전 세계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