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2011년 10월 18일 20시 42분
한국을 여러번 다녀왔지만 2008년 10월, 동양일보가 주최한 포석 조명희문학제와 명사시랑송회 중국동포참가단 일원으로 충청북도의 12개 군과 시를 돌면서 그 문화의 향연에 취하던 일처럼 감동받은 적은 아직 없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뛴다. 그건 물론 조명희, 홍명희, 정지용, 리무영, 박연, 이흡, 권태응, 조벽암 등 근, 현대의 한국을 빛내인 문화의 위인들이 밟던 땅을 지금 내가 밟고 있구나 하는 감동 때문이였다.
위인들의 생가, 기념비와 문학비는 저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하였고 우러러 숙연히 머리 숙이게 하였다. 충청북도를 보면 한국의 문화를 다 본거나 다를바 없다는 지인들의 말씀을 그때 너무도 깊이 실감했다.
그러나 내가 각별한 인상으로 오늘까지 내내 감동을 삭일수 없는 것은 충북의 진천군을 방문한 일이었다.
충청북도 진천군은 한국근대문학사의 큰 별인 포석 조명희선생과 반일 애국지사 이상설선생이 태어나 곳이기 때문이다. 연변은 이상설선생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이상설선생은 을사조약이 반포되자 일제침략을 반대하는 민족항쟁에 뛰여 들었으며 1906년 국권회복을 결심하고 이동년, 정순만 등과 같이 망명하여 용정에 도착, 사재를 털어 ‘서전서숙(瑞甸書塾)’을 꾸렸다. 서전서숙은 연변 최초의 근대학교였다.
연변의 역사학자들인 최홍빈, 김철수, 김춘선, 안화춘 등은 많은 론문을 써서 서전서숙은 “조선족 근대교육의 효시로서의 모든 조건이 구비된 학교”(최홍빈의 론문 “중국조선족 근대교육 문제에 관하여”)이며, “서전서숙의 창립은 연변조선족들의 항일투쟁서막을 열어 놓았다”(김철수 “서전서숙과 연변조선족들의 항일투쟁”)고 역설하고 있다.
용정의 지명인사들은 서전서숙자리인 용정시험소학교에 ‘서전서숙’이라고 새겨진 석비를 세웠다.
지금도 그 자리 옆에는 정자를 세워 ‘이상설정’(李相卨亭)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있다. 이상설이라는 이름 석자는 이처럼 연변 조선족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있다. 그러니 이런 위인의 위대한 사상의 뿌리가 처음으로 뻗기 시작한 진천의 고향집을 찾는 마음 왜 격동되지 않으랴.
2008년 10월 21일, 너무도 청쾌한 날이였다. 파랗고 높은 하늘에는 해볕만 쨍쨍했다. 이상설 님의 넋과 만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후둑거렸다. 그런데 좁은 길을 에돌아 도착한 리상설생가는 으리으리한 팔간기와집이 아니었다.
싸리로 엮은 작은 문 두 개가 달린 개바자 너머에 삭은 벼짚 이영을 인 자그마한 세칸짜리 초가집이 키 낮추어 맞아주었다. 그것이 오히려 나를 더 격동시켰을 것이다. 이렇게 수수한 집에서 그처럼 위대한 분이 탄생하였다고 생각하니 사립문을 냉큼 넘어 설 수가 없었다. 걸음이 저절로 주춤거려졌다.
이상설이 창설한 용정의 서전서숙은 일제의 갖은 획책으로 1년여만의 짧은 역사로 끝나고 말았지만 연변지역의 첫번째 조선족학교로서 조선족근대교육은 물론이고 항일운동사에 있어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서전서숙이 폐교된 이후에도 그 운영자 및 교사들은 명동학교 등의 여러 학교에서 책임자 및 교사로서 일하면서 민족주의교육을 실천하였고 또한 그 곳에서 배출된 많은 민족지사들은 각지에서 그 정신을 계승하여 민족교육과 항일운동에 중요한 역활을 하였다.
그 맥이 오늘에까지 이르러 깊은 뿌리가 있는 나무로 큰것이 아니겠는가. 내 고향 연변의 뿌리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머문다. 이같은 감동을 느끼게 해 준 동양일보의 초청이 오늘에 더욱 새삼스러운 것은 동양일보가 2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부디 이같은 민족의 자각을 깨우치는 일들에 더욱 신경을 써 주었으면 고맙겠다. 동양일보의 이같은 행사들은 그 어떤 투자보다 가치있는 일이라 여겨지므로. 2011.9.
● 약력
△1951년 중국 길림성 용정시 출생
△연변대학 졸업
△연변인민방송국 문학부 편집
△연변일보 론설부 문화부 편집 기자 주임
△중국조선족중학생신문 부주필 역임
△연변작가협회 이사 ·동시인
△연변조선족자치주《진달래》문예상작품상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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