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김호기의 대화](24) 명진 스님
명진 “지금 한국사회가 편안하고 건강합니까? 도덕적입니까?”
경향신문 | 입력 2011.08.09 21:34|수정 2011.08.09. 22:10|
명진 스님은 '색안경'을 쓴다. 그가 색안경을 쓰고 사물을 바라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는 실제 선글라스 비슷한 안경을 쓴다. 이 안경은 햇볕 아래에서는 검게 변했다가 실내로 들어가면 다시 무색투명하게 바뀐다. "왜 그런 안경을 쓰십니까?" "누가 사 줘서 그냥 쓰고 다닙니다.
인터넷에서 이것에 대해 뒷말이 있었는데, 누군가 썼더군요. 스님은 그런 말이 있으면 더 벗지 않을 거라고." 세간의 오해에 명진 스님은 "구름이 흩어지면 달은 절로 드러난다."고 한다.
지난 5일 중앙대 이상돈 교수와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24번째 '대화'에서 현 시대 가장 '뜨거운' 종교 지도자 명진 스님을 만났다. 봉은사를 떠나 충북 제천 신륵사 보광암에 머물고 있는 명진 스님은 '이웃과 함께하는 100일 기도'를 진행 중이다.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는 암자를 찾아오는 300여명의 신자들과 법회를 연다. 신륵사에서 30여분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하는 월악산 기슭의 흙집 두 채에는 뱀들도 가끔 찾아와 스님의 교화를 받고 방생된다.
보광암에서 진행된 이날 대화는 지난해 '봉은사 사태'부터 최근 '민족21 사건'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웠다. 이 교수는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를 보고 5공보다도 심각한 보수의 도덕적 위기를 개탄했고, 김 교수는 물질적 양극화와 정신적 황폐화에 대처하는 종교의 역할을 물었다.
명진 스님은 의식주 걱정 없이 삶과 존재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사회를 이루는 게 불교에 부여된 사회적 과제라고 말하고, 정직함과 진정성을 차기 정치 지도자의 최고 덕목으로 꼽았다. 어떤 문제든 느끼고 생각하는 그대로 걸림 없이 말하는 명진 스님은 진정한 '자유인'이라 불릴 만했다.
지난 5일 명진 스님이 칩거 중인 충북 제천 월악산 기슭의 보광암을 찾은 이상돈 중앙
대 교수(오른쪽)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왼쪽)가 명진 스님의 거침없는 입담에 파안대
소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양극화·정신적 황폐화 속 종교에 부여된 역할은 사회개혁에 기여하는 것…김호기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최근 '왕재산 사건'과 관련해 스님이 발행인으로 있는 '민족21'이 압수수색을 받았습니다. 명진 스님(이하 명진)=전형적인 공안사건 만들기입니다. 공안당국에서 슬쩍 흘리고 언론이 키우고, 언론보도를 다시 공안당국이 받아쓰는 식이죠. 정권 말기에 공안정국을 만드는 것은 아주 못된 버릇입니다.
4대강 사업, 물가와 전세 폭등, 대학등록금 문제 등으로 민심이 수상한 때에, 정권이 재벌 때려잡기 아니면 공안사건 만들기에 나설 거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아니나다를까 삼성그룹에 세무조사가 들어갔고, 왕재산 사건이 나왔습니다. 틀에 박힌 거지요.
김호기=임제 스님이 수처작주(隨處作主)라고 말씀하셨 듯, 대처든 산중이든 그곳이 삶과 구도의 살아 있는 현장입니다. 산중에서도 바삐 지내시는 것이 스님의 운명인 듯합니다.
명진=말씀 그대로, '문재인의 운명'처럼 '명진의 운명'이지요.(웃음)
이상돈 중앙대 교수(이하 이상돈)=명진 스님도, 화계사의 수경 스님도 절을 떠났습니다. 돌이켜보면 두 분은 그런 큰 절에 어울리는 분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처음 봉은사 주지로 부임했을 때 어땠습니까.
명진=강남은 보수적인 곳이지만 특히 불교 신도들은 더 보수적입니다. 제가 '좌파운동권'으로 찍힌 사람인데 처음에 얼마나 냉랭했겠습니까. 신도들이 마주쳐도 합장도 안 하고, 곁눈으로 보고 지나갔어요.
저는 항상 사회운동 하는 스님들에게 불교적 방법·사상·수행을 통해 불자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만이 변혁을 얘기하고 잘못을 지적할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천 번의 절을 천일 동안 올리는 기도를 시작했는데, 200~300일이 지나도 신도들의 마음은 안 움직였어요. 500일 지나서야 신도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내가 이렇게 왔고, 내가 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분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내 기도가 여러분들의 기도이고, 여러분들의 기도가 나의 기도였다." 그러면서 신도들에게 세 번 절했더니,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명진 스님이 됐죠.
이상돈=여전히 그 후에도 정부를 비판하는 현수막도 걸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하셨지요. 유난히 정부에 쓴 소리를 많이 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이 쌓여 결국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논란으로 번진 것 아닙니까.
명진=천일기도 903일째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습니다. 추모사를 부탁받고, 97일만 하면 천일이라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던진 비극이어서 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 이후부터 현 정권하고도 더 급격히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사실 대선 시절부터 이상득의원이 당시 자승 중앙종회 의장(현 총무원장)과 함께 와서 정월 초하루날 봉은사를 방문하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나는 "살면서 좋은 사람 보기도 바쁜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보기 싫으니 오지 말라"고 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쫓겨난 것이 당연한 거죠.
김호기=이명박 정부도 이제 1년 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촛불집회부터 희망버스까지 긴 시간이기도 했고, 결국 4대강 사업과 기득권 계층 옹호로 일관한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명진=도대체 이 사람들이 한국사회를 편안하게 만들었습니까, 건강하게 만들었습니까, 도덕적으로 만들었습니까. 무엇하나 칭찬할 게 없어요. 논어에는 국가가 가져야 할 것을 경제와 국방과 신뢰라고 말하는데, 이 중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를 봤습니다.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작성, 탈세, 병역면제, 이런 것들은 이제 음식점의 기본반찬 세트 같습니다. 거기에 추가로 다른 범죄사실이 나오는 식이에요. 그런 사람이 검찰총장이 되면 위장전입을 처벌한다고 할 것이니 코미디가 아닐 수 없죠.
이상돈=위장전입도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에 문제제기해 불거진 것 아닙니까. 5공 시절 집권자들도 부끄러운 것은 알았는데, 이 정권 들어와선 부끄러움조차 없어진 것 같아요.
명진='파렴치', '몰염치', '후안무치'가 겹친 '삼치' 정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김호기=스님은 불교계 지도자이시지만, 사회운동에 몸담고 계시기도 합니다. 내년 선거를 맞아 진보개혁 진영에서도 여러 인물이 거론되고 있습니다만, 차기 대통령 후보가 갖춰야할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명진=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이 당에서 저 당으로 가고, 한, 미 자유무역협정을 찬성했다가 반대로 돌아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장의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입장을 쉽게 바꾸는 것은 정치 모리배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기 위해 대통령도 하고 국회의원도 하는 길을 가야지, 대통령·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 소위 얘기하는 공약(空約),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간 길이 많은 감동을 주고, 그 사람의 생애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국민들의 지지와 동의를 얻어내야 합니다. 5공 시절 집권자들도 부끄러움 알았는데 현 정권선 그런 것 없어…이상돈
이상돈=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누차 하셨습니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명진=출가한 수도자로서 저는 누구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박 전 대표에게 큰 부담은 4대강 문제라고 봅니다. 이런 국가적 대사업에 대해서 소신을 표명한 적이 없는데, 정치인이라면 표나 여론을 의식해서 입장을 유보한다든가, 가는 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역사 속에서 심판받겠다고 가야 합니다. 당대에 인정받아 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못 돼도 그런 길을 갔다는 것만으로도 당당해야 합니다. 그런 부분이 아쉽습니다.
김호기=우리 사회에서 종교에 부여된 역할은 존재에 대한 실존적 각성과 사회개혁에의 적극적 기여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양극화가 보여주듯이 다수의 시민들이 물질적으로 빈곤해지는 동시에, 검색하기" alt="">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경쟁의 논리로 인해 정신적으로도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미래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명진=한국사회는 처절한, 서바이벌 게임과 같은 경쟁사회입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물질적으로 행복을 얻으려 하는 끝없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무도함 또한 부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 빚어낸 비극이죠. 지금 한국사회의 경제적 부는 골고루만 분배된다면 다들 어지간히 먹고 살 수준입니다.
일정 부분 물질이 충족되면 삶의 성찰을 통해서 지혜를 얻어 나가야 합니다. 그 지혜란 물질이나 존재의 허망함을 깨닫고 완전한 비움의 상태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비움을 위해 수행을 하려면 의식주 걱정이 없어야 합니다. 배고파 죽겠는데, 산다는 건 뭘까 하는 철학적 물음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의식주 걱정 없이 자기 존재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북유럽의 나라들을 좋아합니다.
이상돈=이런 상황을 타파하기에 불교계도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법륜 스님은 불교개혁은 원천적으로 어렵고, 사회개혁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조계종 밖에서 불교운동을 하고 계십니다. 한국 불교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명진=불교개혁이 곧 사회개혁이요, 사회개혁이 곧 불교개혁입니다. 한국사회의 물질 중심적 사유가 절집 안에도 똑같이 왔습니다. 80년대까지는 주지를 하라고 하면 욕스럽게 생각했어요. 시키면 짐 싸서 몰래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본사 주지 하려면 10억원 이상, 종회원 하려면 2억~3억원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돈과 힘의 관계에 따라 자리들이 오가는, 가장 안 좋은 형태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이상돈=스님이 봉은사 주지를 맡은 것은 거의 부처님의 뜻인 듯합니다.
명진=누가 그럽디다. 돈 한 푼 안 쓰고 봉은사 주지 들어간 사람이 4년 하면 됐지 뭘 더 하려 하느냐고.(웃음) 물질적 풍조가 팽배한 절집을 바꾸겠다고 들어간 것이 봉은사에서의 4년입니다.
김호기=스님의 철학과 행동에 공감하는 시민들에게, 반대하는 시민들까지를 포함해 화두를 하나 말씀해 주시지요.
명진='이단이 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단'은 관습·전통에 대한 배반입니다. 고정관념, 불교에서 말하는 '업'의 안경을 벗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일입니다.
지금 갖고 있는 나의 삶의 편안함과 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구도이고 수행입니다. 벗어나고 나서도 벗어났다는 그 틀에 매여 있으면 안 됩니다. 영구혁명처럼 끝없는 이단을 향해 도전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신을 볼 수 있고, 그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선과 악을 모두 버리라는 '불사선불사악'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왜 선도 버려야 하는가. 쇠사슬에 꽁꽁 묶인 것이 악이라면, 부드러운 명주실로 묶인 것이 선이라는 겁니다.
좋은 관념이든 나쁜 관념이든 완전히 벗어던지는, 해탈인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끊임없는 부정만이 참긍정, 대긍정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 기타 > 시사 · 시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 넘긴 아들, 내가 대선 출마 말린다고 될 일 아니다” (0) | 2011.09.09 |
---|---|
"노 전 대통령 '日 탐사선 독도오면 부숴라' 지시" (0) | 2011.08.19 |
김영삼 "박정희는 군사쿠데타 원흉" 시민단체 발끈... (0) | 2011.06.28 |
장지연 등 친일 독립유공자 19명 서훈 취소 (0) | 2011.04.05 |
현정부는...... (0) | 2011.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