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書. 간찰. 시(詩)

학남 이회경 간찰(鶴南 李晦慶 簡札)

야촌(1) 2011. 7. 24. 04:04

■ 학남 이회경 간찰(鶴南 李晦慶 簡札)

     [생졸년] 1784년(정조 8) - 1866년(고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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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원문

劍鋒六印塵間貴 麥嶺萬

緡紫府高 誰復心行天一周

中宵空使夢魂勞

感吟一絶 藏之肺腑 年數

如右字數矣 惟

城主 可以淵然深思 不以雷門

弊鼓見却耶 瓊琚之報

非敢望 而但無猥越之

誅 則千萬幸甚

化民 李晦慶 再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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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봉] 

本府

政閣 侍下人開坼

己酉五月二十四日化民謹封

  

나. 국역  

칼끝에 육인은 티클 세상에서 귀하고                劍鋒六印塵間貴

보릿고개에 만 꾸러미 돈은 관아에서 높네.        麥嶺萬緡紫府高

누가 다시 마음으로 하늘을 한 번 순행하여        誰復心行天一周

한밤에 헛되이 꿈속에 혼만 수고롭게 하는가?     中宵空使夢魂勞

  

느낌이 있어 시 한 구절을 읊조려 폐부(肺腑)에 간직한 것이 햇수가 마치 아래 글자 수와 같습니다. 

오직 성주(城主)께서는 연못처럼 깊이 생각해 주십시오. 뇌문(雷門)에 걸린 해진 북으로 내침을 당하지는 않겠습니까?

 

아름다운 옥[瓊琚]으로 보답 하는 것은 감히 바라지 않지만, 다만 외람되이 주제넘다[猥越]는 꾸지람만 없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화민(化民) 이회경(李晦慶)이 삼가 올립니다.

 

다. 해 제

이 간찰은 1849년(헌종15) 5월 24일 이회경(李晦慶, 1784년(정조 8) - 1866년(고종 3) 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은 없고 자봉으로 처리되었다. 

 

수신자가 명확하진 않지만 ,이회경이 경주 사람이라는 것과 이원조가 1849년 5월에 경주부윤으로 부임한 사실, 그리고 성주에게 올린다는 내용을 근거로 봤을 때 수신자는 이원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회경은 이원조가 경주부윤으로 부임한 사실을 알고 느끼는 바가 있어 시를 지어 보냈다. 

그리고 주제넘다는 꾸지람만을 말아달라고 짐짓 겸손하였다. 시는 앞의 두 구는 이원조가 경주부윤으로 부임하는 것을 읊었고 뒤의 두 구는 자신의 소회를 읊었다.

  

[용어]

육인(六印) : 전국 시대 낙양(洛陽) 사람 소진(蘇秦)이 합종설(合縱說)을 가지고 연(燕)ㆍ제(齊)ㆍ초(楚)ㆍ조(趙)ㆍ위(魏)ㆍ한(韓) 여섯 나라의 임금들을 차례로 설득하여 언약을 얻고 이어 자신이 종약장(縱約長)이 됨과 동시에 여섯 나라의 상인(相印)을 한 몸에 차서 부귀가 극에 달하였다. 「自詠」,『牧隱詩藁』

  

뇌문(雷門) : 감히 어른에게 당치 않게도 변변찮은 말을 개진하였다는 뜻이다. 

뇌문은 뇌문고(雷門鼓)의 준말로, 그 소리가 백리 밖에 까지 들렸다는 월나라 회계성문(會稽城門)의 큰 북이고, 포고(布告)는 포목으로 만들어 아예 소리도 나지 않는 북을 말한다. 「王尊傳」,『漢書』.

  

경거(瓊琚) : 경거는 아름다운 옥이다. 남에게 보답하는 좋은 물건에 비유한 말이다. 

시경에 “내게 모과를 던져주면, 경거로 보답하리다.”하였다. 「衛風 木瓜」, 『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