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고려시대 인물

안축(安軸)

야촌(1) 2011. 7. 17. 19:51

안축(安軸)

[생몰년]  1287년(충렬왕 13) - 1348년(충목왕 4)

[고려문과] 충선왕(忠宣王) 5년(1313) 계축(癸丑) 충선왕 5년 계축방(癸丑榜)/합격연령 27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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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아버지는 석(碩)이다.
고향 순흥의 죽계(竹溪: 지금의 豊基)에서 세력기반을 가지고 중앙에 진출한 신흥유학자층의 한 사람으로, 탁월한 재질로 학문에 힘써서 글을 잘하였다.


문과에 급제하여 금주사록(金州司錄)·사헌규정(司憲糾正)·단양부주부(丹陽府注簿)를 지내고, 1324년(충숙왕 11) 원나라 제과(制科)에도 급제하여, 그곳 요양로(遼陽路) 개주판관(蓋州判官)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고려에 돌아와서 성균학정(成均學正)·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를 거쳐, 충혜왕 때 왕명으로 강원도존무사(江原道存撫使)로 파견되었다.


이때 《관동와주(關東瓦注)》라는 문집을 남겼는데, 거기에는 충군애민(忠君愛民)의 뜻이 담겨 있다.
1332년(충숙왕 복위 1)에 판전교지전법사(判典校知典法事)에서 파면당하였다가 전법판서(典法判書)로 복직되었으나, 내시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충혜왕이 복위하자 다시 전법판서·감찰대부(監察大夫) 등에 등용되고, 이어 교검교평리(校檢校評理)로서 상주목사를 지내고, 1344년(충목왕 즉위)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와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를 차례로 지내고 1347년에 판정치도감사(判整治都監事)가 되어, 양전(量田)행정에 참여하였다.


그뒤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가 되어 민지(閔漬)가 지은 《편년강목(編年綱目)》을 이제현(李齊賢) 등과 개찬하였고, 또 충렬· 충선· 충숙 3조(朝)의 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한편, 경기체가인 〈관동별곡 關東別曲〉과 〈죽계별곡 竹溪別曲〉을 지어 문명이 높았다. 흥녕군(興寧君)에 봉하여진 뒤 죽었다. 순흥의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 《근재집(謹齋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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