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학/고궁,정려,서원

경주 유적의 옛 모습

야촌(1) 2011. 5. 25. 18:48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 1910년대
   복원하기 전 청운교 백운교의 돌계단이 어스러진 상태. 뒤로 다보탑, 석가탑이 보인다.

 

↑첨성대(1920년대) / 첨성대 뒷길을 오고가는 사람들...

 

↑포석정(1910년대) / 포석정에 바지 저고리 입은 아이의 모습

 

↑성덕대왕신종(에밀레 종) 이전 - 1915년대

  봉황대에 있던 종을 경주고적보존회 (현 경주문화원)로 옮기고 있다.

 

↑봉황대의 오솔길 - 1950년대
   노동. 노서동 일대의 전경. 봉황대에는 오솔길이 나 있다.

 

↑태종 무열왕릉비 / 비석은 사라지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귀부(龜趺)의 길이 약 3.33미터, 폭 2.54미터, 이수(螭首)의 높이 약 1.1미터이다. 비신(碑身)은 현재 없고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는데 화강석으로 되었으며, 귀부는 장방형의 기석(基石) 위에 얹혀 있다. 이수는 6룡(龍)이 서로 능을 향해 구부리고 있는 모습으로 윤곽을 이루는데, 웅장한 구 자세는 당시 석조 예술의 뛰어난 솜씨를 잘 보여준다. 이수 중앙에는 김인문(金仁問)의 글씨로 전하는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이 전서(篆書)로 양각되어 있다.

 

↑삼존불(1930년대)
   남산 삼불사에 있는 불상으로 지금은 보호각을 설치했다.

 

↑석조약사여래좌상 - 연대미상


  경주의 남산 용장계곡에 있던 불상으로 지금은 머리와 광배가

  복원 되어 국립 경주박물관에 있다.

 

↑석조여래입상 - 1920년대

 

   왕정곡 제2사지 석조여래입상으로 하반신이 땅에 묻혀 있다.

   지금은 경주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감은사(1950년대) /북동쪽에서 바라본 모습.

 

↑안압지 - 1950년대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뒷산은 소금강산. 일제때 세운 임해정은 1977년에

  황성공원으로 옮겼으며, 지금의 호림정이다.

 

↑황남동 고분 - 1920년대. /갓 쓰고 한복 입고 나귀 몰고 간다.

 

↑황남동 고분 - 1920년대.

   죽은 아이를 넣은 옹기를 지게에 지고 묻으러 가는데 일본 순사가 검문한다.

 

↑삼 릉 : 아이들이 지게 지고 나무하러 가다가 삼릉에서

 

↑집경전지(集慶殿址)

 

↑경주 집경전 비각 - 1922년대.

 

↑경주 집경전 - 1922년대.

조선 태조의 영정을 모셨던 곳으로 1960년대 초까지 건물 일부가 남아

있었다. 사진은 지병전의 비각으로 추정되며 현재 경주여중 의 교정 동편에는

집경전 옛터라는 비석만이 서있다.

 

 

↑솥전(1910년대). / 경주 읍성 밖에 장이 열리고 솥 가게에 손님이 많다.

 

↑경주 중심가 - 1930년대. / 지금의 중앙로에서 대릉원 쪽으로 바라본 모습

 

↑경주 기생 - 1914년 4월

   경주 고적보존회(현 경주문화원)의 온고각 앞에서 기념촬영

 

↑스웨덴 쿠스타프 황태자 - 1926년대.

 

서봉총 발굴 현장을 찾은 스웨덴 황태자 쿠스타프(왼쪽에 안경 쓰고 무릎 꿇은 사람)와 일행. 스웨덴의 한문 표기인 서전(瑞典)과 출토된 금관에 새겨진 봉황(鳳凰)에서 한 자씩 따서 서봉총(瑞鳳塚)이란 이름이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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