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강재 상량문(龜岡齋 上樑文)
재목(材木)을 찾아 먹줄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 문학계의 큰 선비들이 전임(專任)하는 것이고, 거문고와 책을 책상에 쌓아둔 것은 오늘날 후손을 깨우쳐 주고자 함이야. 밝으신 영영을 우러르니 음성이 들린 듯 모습이 보인듯하여 계절 따라 선조님이 그립고, 좋은 터를 닦아 건물을 세우니 명언(名言)이 이곳에 담겨있네.
삼가 선조를 위한 정성을 바쳐, 감히 제각을 지어야 하는 뜻을 편 것이다.엎드려 생각하니 구강(龜岡)의 자락은 선조 두 분의 유해를 모신 언덕이다. 5대조의 아름다운 효우정신은 일찍이 가정교훈을 통하여 들었고, 증조할아버지께서 남기신 문학은 온 고을에 전파되어 있다오.
신통한 스님에게 진결(眞訣)을 얻었으니 묘역이 더욱 좋고, 옛날 예법을 근거로 하여 봉분을 쌓았다네. 호암(虎巖)이 높고 높았으니 문명(文明)의 기운이 쌓여 있는 듯 하고, 별전(鱉田) 평편한 곳에 신령한 터 꽉 감추어 두었구나.
곤좌(坤坐) 간향(艮向)으로 되었으니 오고 가며 도와주고 호응하는 형세가 모여 있고, 진득(辰得) 계파(癸破)로 되었으니 머금고 뱉으며 나가고 들어오는 형상이 겸비되었다. 월출산에 구정(九井)이 모여 있으니 기린과 봉황이 깃을 편 형상이요,
덕호(德湖)에 5절(五節)이 연이었으니 교룡(蛟龍)이 머리와 꼬리를 맺어놓은 듯 해. 평편한 땅에 숨어 있다가 5궁(五宮=金木水火土) 낙서(洛書)의 가운데 뭉쳐있고, 진흙 속에 묻혀 있다가 천 년간 연잎의 위에 떠 있구나.
삶도 순탄했고 죽음도 편안하였으니 더욱 기쁜 건 할아버지와 손자가 벌 안이 같다는 것이고, 윗사람은 사랑하고 아랫사람은 효도했는데 더구나 대대로 살아온 고향과 인접함일세. 체백이 안녕하시니 이 자손도 편안하고 저 영혼도 편안하는 이치가 있고, 계산(溪山)이 밝고 아름다우니 부귀가 가깝다 멀다 하는 의론이 있구나.
이 묘역을 바라보니 고향을 공경하는 마음이 더 극심하고, 저 비와 이슬을 밟으니 봄과 가을에 마음 아픈 느낌이 매양 많았어. 회백(檜栢)이 울창하니 세월이 오래 되었다는 것을 이미 알았고, 언덕이 둥글고 두터우니 묘지명을 지어 갈아둘만 하누나.
수직사(守直舍)를 곁에 둔 것은 초동목수들의 침범을 완고히 금지하려는 것이고, 강장(康莊=큰 길을 말함) 한쪽에 둔 것은 오가는 길손들의 손짓을 항시 보여주기 위함이야. 존경하는 모습을 마주 대해 보는 듯 하니 아득하여 오늘이 옛날 같고, 골짜기에 제사 모실 곳을 선택하여 이에 경영하였어.
목공을 불러 재목을 운반하니 어떤 것이 기둥이고 어떤 것이 들보인가.자제들을 시켜 터를 닦으니 너는 산태 미를 들고 너는 삽을 들고 오너라. 날 자를 결정하고 시기를 두어 대장 괘(大壯卦=大壯과 同人은 周易 64卦의 하나)에 알맞은 건물을 빨리 세웠고, 터를 닦고 길을 개통하여 동대 괘(同大卦) 처럼 정원을 깨끗이 청소했네.가시 덤 풀을 제거하니 소나무에 생생이 감돌고, 샘 찌꺼기를 없애버리니 샘물이 꿀꿀 솟아나누나.
왼쪽 오른쪽에 대청을 만들었으니 읍(揖)하고 사양하며 오르고 내려오는 예절을 익힐 만하고, 동쪽 서쪽에 방이 있으니 화목을 다지며 잠을 자기 마땅하다. 선조 사적을 서술하여 정성을 편 것은 사정(思亭=甄씨의 정자를 말함)의 옛일을 본받을 듯 하고, 재물을 거출하여 건물을 세우는 것은 범씨(范氏) 의장(義庄)의 가르침에서 말미암은 것일세.
완성을 아뢰는 이 밤을 당하여, 감히 옷깃을 여미며 축사를 엮었네.들보를 동쪽으로 밀어보세, 형제봉 머리에 아침햇살 붉었구나, 계산(溪山)의 정채가 온 누리에 가득하니, 영귀(靈龜)가 머리를 금교(金橋)속에서 내밀어. 들보를 서쪽으로 밀어보세,
호수 빛은 푸르고 바다구름 나직하다, 머리를 돌려 우러르며 주저하다가 서있으니, 한마디 작은 정성 못난 내가 부끄러워. 들보를 남쪽으로 밀어보세, 추교(楸橋)에 밭은 넓은데 물은 모아 못 이로세,
물가에 모란이요 전답에는 오곡백과, 제사 음식 깨끗이 준비해 올릴 만 해. 들보를 북쪽으로 밀어보세, 벌려있는 별들이 북극성을 둘렀구나, 저 소나무 휘어잡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니, 문 앞에 번 질한 긴 화살같이 곧구려. 들보를 위쪽으로 밀어보세,
의관을 바로하고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았네, 모습을 뵙기도 어렵고 음성을 듣기도 어려운건 천 만길 높은 곳에 별과 달과 함께 있기 때문일세. 들보를 아래쪽으로 밀어보세, 허리띠를 묶고 창문 열고서 평야(平野)를 내려 다 보았네.
시초(蓍草) 줄기 깊은 곳에 엎드려 있으니, 누구 가 알랴. 속안(俗眼=얕은 식견. 속인이 보는 눈)이 장육(藏六=거북이를 말함)이 있는 것을 엎드려 바라노니 들보를 올린 뒤 창문 난간은 공고할 것이요 집안이 대대로 번창할 것이다.
시와 예(禮)에 노력을 하고 효도와 우애를 다져, 남긴 얼 대대로 막힘이 없기를 바라고, 제사를 받들고 문호(門戶)를 받드는 일이 계속되어 산수(山水)와 더불어 함께하였으면 하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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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재(龜岡齋) 낙성식 회포
취운 이원우(翠雲 李元雨) 撰[생몰년] : 1891, 08. 07~1958)곁에 쌓은 추성(楸城)이 곧 바로 남쪽을 향했으니,지명(地名)을 인용하여 구강재(龜岡齋)라 이름 주었네. 정채가 더 빛난 건 송백(松柏)이 둘러있기 때문, 이슬과 서리 밟으니 느낌이 더욱 많구나.
화목을 다지려고 평상시 자리를 설치했고,아침마다 성묘하고 분향도 하였다오. 문밖 오이 넝쿨에 열매가 맺는다는 걸,경계하노니 내 후손들아 잊지 않으렷다.
2010년 봄
영암 역리에 모셔진 희(熙,炯) 항렬로부터 7대선조 휘(諱) 경달(慶達) 공과 5대 선조 사물제공(四勿齊公) 휘 진황(鎭璜)공의 산소를 군청 운동장 일부 수용으로 부득히 영암 망호리 선산으로 이장하였다.
따라서 구강재도 함께 이전 개축하여야 옳음에도, 몇 분의 어른들은 수용비(보상비)를 세 문중에 분담해 보관중이거나 소비했다. 선조들과 후손들에게 나쁜 선례를 남기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선조의 음덕을 받은 후손으로서의 도리를 지켜 나가야 한다. 보상비를 회수하고, 후손들의 십시일반으로 선조의 유물을 유용하도록 영구보존하여야 한다.
오오 통제라 슬프도다!
취운 원우공의 글이 무색해진다.
淸江 이현희
▼ 폐가가 되어가는 재각
현판은 큰댁(월평 철희) 창고에 방치
↑구강재(龜岡齋) 정문(正門)
↑산소와 시제답 전경
↑2011.4월 3일 촬영
사진출처>영암읍 망호리 마을(http://cafe.daum.net/jnyamangho) ㅣ 글쓴이>청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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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강재(龜岡齋) 표지석
淸江 이현희 거북이 기웃거린 아늑한 춘추 성(賰楸城)에선조님 음덕가득 가지와 잎 무성해져귀한 임 받드는 정성 꽃피고 열매 맺는다.(춘추 성=노나무 우거진 넉넉한 정원이 있는 땅)
淸江 이현희 경달 처사 공(慶達處士公)과 사물(四勿) 시인 진황 공(鎭璜公)의 체백(體魄)을 모셨던 곳으로, 두 분의 체 혼(體魂)이 편안하도록 후손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1943癸未年 상량준공(上樑 竣工)해 본 채, 대문 채, 수 직사(守直舍)가 있었으나 30여년 이상 관리소홀로 폐가(廢家)로 있었다.
2010년 산소 토지(山所 土地) 일부가 영암군(靈岩郡)에 수용(收用)되어 체백을 망호 선산(望湖 先山)으로 옮겼다.
이에 재각(齋閣)은 선조(先祖)의 얼을 이어가기 위해 보수(補修)했다. 향사(享祀)를 모시고 또한 서당(書堂)과 후손(後孫)의 친목도모(親睦圖謀)를 위한 사랑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숙식을 위한 부속시설도 설치하였다. 금희(錦熙)회장의 적극적 찬조와 많은 종친의 협조, 전희(田熙) 성찬(成燦), 명환(明煥), 정훈(政勳) 등의 헌신적 노력이 지대(至大)하였다. 종친(宗親)들은 문중(門中)의 유지계승(維持繼承)과 자산증식(資産增殖)에 주력(注力)하고 종재산(宗財産)의 영구보존(永久保存)에 협조 있기 바란다.
2017년 4월 2일
경주이씨 익재공파 아산종중 全國 宗親 一同協贊 名單[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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